5인의 寓話展

Apologue of Five-artists   2009_0415 ▶︎ 2009_0615 / 일요일 휴관

금중기_숲_F.R.P 위에 우레탄 도색_150×110×34cm_2008

초대일시_2009_0415_수요일_05:00pm

기획_김신혜

참여작가 김경민_김소연_금중기_노준_변대용

주최_두산 아트 스퀘어   주관_가양갤러리 협찬_미술월간지_㈜두산 건설홍보 월간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주)두산건설 아트스퀘어 서울 강남구 도곡동 174-3번지 Tel. +82.2.501.4004 www.weveapt.co.kr/artsquare

5인의 寓話展우화(寓話)의 사전적 의미 (a fable; an allegory; an apologue)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說話). 이번전시는 현실을 그 특유의 우화(寓話)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5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기획展입니다. ● 우화 속에는 인생과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예민한 시각이 스며들어있으며, 대중적인 어법 이지만 삶의 결을 횡단하는 촌철의 조형언어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엄숙주의 조각 계에 활력소이자 무언가 달라진 조각의 환경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작가들의 감각적인 구성을 엿 볼 수 있으며,우리 동 시대의 어떤 작가도 흉내 내기 힘든 미의식의 표현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이다.

금중기_Stop_F.R.P 위에 우레탄 도색 오브제_왼쪽 93×135×38cm / 오른쪽 39×20×20cm_2008

금중기는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면서도, 우화적인 어법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 유머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이다. 문명이 가지고 있는 이면과 그 속에서 살을 대며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엿보게 한다.

김경민_쉿!_브론즈에 아크릴채색_30×20×20cm_2008
김경민_커피든남자_브론즈에 아크릴채색_60×72×20cm_2008

김경민의 작품은 삽화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경쾌하고 산뜻한 장면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물론 코믹한 형상을 통해 발랄한 젊은 감각의 조각을 선보인 것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특히, 작품 속에 표현되고 있는 인물들이 주로 작가의 가족인 경우가 많다. 평범한 가족사를 소재로 하여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내용들을 해학적이면서도 풍자적인 구성과, 섬세하고 여성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절제와 조절로서 구성과 디테일로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김소연_네가 있어 슬프다- 안개빛 슬픔_FRP, 아트 드라이 플라워_102×37×30cm_2009
김소연_백색의 어린광대_FRP, 레진_120×65×50cm_2007

김소연은 비록 우화적인 표현이라고 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유년기의 기억과 상처 그리고 그 치유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정신분석학과 미술치료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어린광대를 통해 자의식과 현실사이에 놓여있는 현대인의 심리적 상황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

노준_Air Haedaru_car paint on plastic, plaster, korean ink_103×157×147cm_2007
노준_Comfy Chair with Milk Clo_milk paint on plastic, plaster, korean ink_103×53×51cm_2007

노준은 한동안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여하면서, 캐릭터와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켜왔던 작가이다. 작가의 작업은 미술에 있어 소통의 문제와 내러티브의 복원을 가장 기본적인 어법에서 출발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캐릭터들을 가지고 현대미술에서 사라진 문학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예술 감상 시각의 확장과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만들어주는 자연스런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강아지와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을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기르며 그들의 습성과 행동을 관찰해오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관찰에서 지금의 작품들이 탄생하였으며 그들의 행동 특성과 작가가 상상하고 희망하는 우리의 삶이 작품 속에 은유적으로 함축되어 일상의 평범한 주제가 대중적으로 친숙한 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변대용_장화신은 두루미 A Crane in Boots_FRP, 레진_200×110×58cm_2008

변대용은 우화를 만들어 내는 데에 능숙하다. '인간화와 동물화'라는 두 가지 형상화의 원리를 통해 이 세계가 처한 문제를 관객들이 직면하도록 만들고 있다. 즉, 이 전시에서 변대용은'동물'이 문명화된 '옷/도구'를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끌고 옴으로써 이 세계가 절멸시키고 있는 '자연'을 역설적이지만 도리어 문명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게 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곰'이나 '장화신은 두루미' 등은 위기에 처한 '생태'와 '환경'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있으며, 또한, 뜨거운 아이스크림'과 같은 작품에서 보듯 그가 제안한 문제를 구체적인 경험에까지 이르도록 만듦으로써 풍부한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 김신혜

변대용_아이스크림 먹는 백곰 Ⅳ a Polar Bear Eating Ice Cream Ⅳ_FRP, 레진_45×20×40cm_2008

S#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 작년 12월 MBC는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 하나를 선보였다. 「북극의 눈물」이란 다큐멘터리 3부작인데, 환경파괴로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의 모습을 근접 촬영하여 보여줌으로써 환경 위기에 처한 지구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주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22년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눅」도 퀘벡주의 허드슨 만에 살던 나눅이란 이누이트족을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 장르를 좋아한다. 카메라가 시대를 말하고 묘사하는 일종의 붓과 펜이 된다는 걸 상기 시켜주기 때문이다. 대학 3년 '다큐멘터리 영화론'수업 시간에 이 「북극의 나눅」을 처음 봤다. 로버트 플래허티가 연출한 이 작품은 1920년대에 촬영된 작품이라고 보기엔, 밀도 깊고 생생한 묘사로 이누이트 족의 삶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준 작품이다. ● 그 당시 플레허티가 미지의 원시사회와 격리된 북극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의도는, 오늘날의 영화제작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생존을 위해 척박한 북극의 자연 환경과 싸우는 에스키모인들의 특이한 생활모습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고픈 충동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단 이번 MBC의 「북극의 눈물」과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인간의 투쟁을 다룬 반면, 후자는 자연 파괴 속에 생존을 건 투쟁을 하는 동물들을 주로 담았다. 플레허티는 다큐멘터리를 "발견과 폭로의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일종의 탐사다"라고 정의하면서 다큐멘터리가 가진 장르적 장점들을 그대로 토해냈다. 원래 다큐멘터리(documentary)는 라틴어(docere)에서 나온 것인데, 그 뜻은 교육한다, 훈계 한다. 란 의미를 갖는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만 보통 극영화와는 수준이 다르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공영방송과 같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할 기관에선 이런 다큐멘터리 제작을 내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서 「북극의 눈물」을 제작한 MBC의 결정이 고맙다. ● 지구의 환경오염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엔 인류의 윤리적 소비 수준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세계대통령을 세운다면 40년 정도의 세월을 뒤로 돌리는 건 문제도 아닐 텐데)북극의 눈물을 본 시청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왜 이전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던 이들이 어부로 전업을 하고, 바다코끼리는 얼음이 녹아 쉴 자리가 없게 되는지, 왜 곰의 사냥감이 자꾸 줄어드는지 말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지금 다큐멘터리에서 보여 지는 현실이 왜 우리 자시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지를 깨달아야 하는 문제다. ●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시간관이 도전을 받는 것도 동일한 이유다. 알파와 오메가에만 젖어 있다 보니, 아름다운 지구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의 생존을 담보하며 연결된 존재임을 자꾸 망각한다. 여기엔 여전히 발전을 위해 지구를 파헤치고 난 개발하는 인간 중심주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더 슬픈 건, 이런 개발논리를 윤리적으로 보장해주는 집단이 바로 기독교 세력이란 데 있다. ● 그들에게 있어 청지기윤리란 거의,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임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행복을 위해, 낮고 힘없는 자들을 침탈하고 지배하고 주입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변대용의 설치작품을 보면 우화 같은 장면이 나타난다. 우화란 것이 뭔가 말 그대로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인간의 약점과 나약함,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각가 변대용은 동물-인간의 형상을 일종의 사회적 풍경의 일환으로 가져와서 우리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가 조형한 작품들의 세계 속엔 자본의 힘과 폭력 속에 파괴된 자연이, 문명에 종속되는 현실이 그려져 있다. 더위를 잊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핥고 더위로 인해 변색한 자신의 피부털을 감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흰색을 바르는 곰의 형상이 작품 속에 나타난다.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 때문에 왜 고릴라들이 힘겨워하는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영방송 MBC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과 같은 한편의 작품이 고맙다. 다큐멘터리의 본유적인 기능인 훈계를, 가르침을,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경제성의 논리를 갖다 대면 어떻게 될까? 돈이 안되는 다큐멘터리를 없애고, 잘 나가는 연예인들로 빵빵하게 채운 화려한 버라이어티 쇼를 구성하면 많은 광고수익을 내겠지만, 우리는 그만큼, 우리의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카메라의 힘과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방송이 가진 저널리즘의 역할론을 이야기 함에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조중동이 주장하는 것처럼, 방송의 민영화 문제와 재벌과 언론족벌체제의 방송겸업이 왜 문제인지는 이런 관점에서 살펴봐도 좋을 듯하다. ● 자연환경을 개발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은 환경 보호론의 주장을 일축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지구 온난화 현상을 일종의 좌파의 음모론이라고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부시 행정부만큼 전 지구적인 환경보호 노력과 역행한 정권도 없다. 쿄토 정서엔 여전히 조인하지 않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산화탄소를 내뿜는 국가는, 자신의 군사력에 의거, 약소국에만 환경윤리를 지키라는 이중적 잣대와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이명박 대통령 또한 '녹색성장'을 표방한다고 하면서 결국 아르헨티나에 나무 심어주고 그만큼 이산화 탄소 배출권을 얻어내면 된다고 주장하니, 이 정부에게 환경에 대한 윤리나 기본적인 지침을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어렵다.변대용의 조각을 보면 끝이 씁쓸하다. 그속에는우화 속 주인공의 처지가, 조각품의 운명이 아닌 우리 모두의 운명이 될 것 같아서다. 제발 말로만 녹색 성장을 이야기 하지 말고 초록빛 계획과 실행, 이에 대한 정확한 감사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민들에게 호소해주기바란다. 할말없으면'소통부재'를 운운하며 아고라나 다니며 헛발질을 할 시간에 머리를 짜라. ■ 김홍기

Vol.20090415c | 5인의 寓話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