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무뢰한_Dancing bandits

노순택_채승우展 / photography   2009_0415 ▶︎ 2009_0503 / 월요일 휴관

채승우_2007년 5월, 광화문, 종묘제례 어가행렬_Procession of royal carriage. 2007. 5

초대일시_2009_0415_수요일_06:00pm

기획_서원석

후원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_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karts.ac.kr/gallery175

보도사진의 목표는 찰나의 이미지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의 사건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있다. 바라보는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을 재정의 하게도 만든다. 이제는 너무도 널리 알려졌다시피, 기록과 현상 또는 사건(타자)들 사이의 행위에는 항상 카메라를 든 인간(주관)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이라는 단어는 기록이 아니라 주관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 사건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주관의 개입은 필연적이다. 이것은 보도사진뿐만 아니라 '사실적'이란 표현을 내세우고 있는 모든 매체에 적용될 수 있다. 마치 우리에게 사실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순전히 가상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존재를 인정하고 가정하며 살아간다.

채승우_2007년 6월, 현충원, 현충일 행사 준비_National Cemetery at the Memorial Day. 2007. 6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것의 위치이다. 이때 주관의 개입은 '사실'과 분리되어 독자적 위치를 가진다. 타자에 대하여 어떤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기록 방법과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시선을 좀 더 확장시켜 보자. 세상엔 사진으로 담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 여기에서의 시선 또는 주관의 위치 선정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한 사건에 대한 그것의 위치만큼이나 중요하다. '피사체, 또는 사건이나 현상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주관이 개입'하게 된다. 즉, 이것은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채승우_2008년 3월, 숭례문, 삼일절 퍼포먼스_Performance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2008. 3

사진 또는 미디어의 형태를 띤 예술작품의 경우 이러한 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타자에 대한 주관의 개입, 주관의 자세, 접근방법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위치가 설정된다. 예술에 있어 '사실적 기록'이라는 커다란 범주 속에서 교차하는 범위가 너무도 크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노순택_배후설, 메가바이트산성의 비밀_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08

노순택과 채승우는 모두 영향력 있는 언론에서 보도사진가로 일한 경험이 있거나 현재 일을 하고 있다. 노순택과 채승우는 모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찍어내고 있다. 가장 객관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사진은 언론의 바깥에서도 보도사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다. 만약 보도사진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둘 다 같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위치만 조금씩 다를 뿐 똑같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진들은 비슷한 듯 묘하게 모두 다르다. 중요한 건 그들은 보고 싶은 걸 보고 그 속에 숨은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는 것이다. 한 사건에 대한 위치 설정뿐만 아니라'어떤'사건을 보려 하느냐도 다르다.

노순택_소장님의 교시_피그먼트 프린트_100×100cm_2004
노순택_좋은, 살인_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08

노순택은 사건(事件)에 깊숙이 침투하려 한다. 사건이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뜻한다. 그는 미선이, 효순이를 보고 FTA를 보고 SOFA 협상을 보고, 태극기를 보고, 노근리를 보고, 대추리를 보고, 촛불을 본다. 채승우는 현상(現狀)을 분석하려 한다. 현상이란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백화점을 보고, 월드컵과 이후 박지성 붐을 보고, 태극기를 보고, APEC을 보고, 정조 행렬 재연행사를 보고, 홍보행사를 본다. 나열된 사건과 현상이 그들의 모든 작품들을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의 사회적 파급효과들이 두 작가의 이념을 결정짓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둘은 그 이면의 속살을 계속해서 벗기려 든다는 공통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단지 드러내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의 형식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보고자 하는 것과 그것을 담아내는 방법에서도 묘한 차이들이 쉼 없이 교차하고 있다. ■ 서원석

Vol.20090415f | 춤추는 무뢰한-노순택_채승우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