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신展 / KIMCHUNGSHIN / 金靑信 / painting.installation   2009_0417 ▶︎ 2009_0501 / 월요일 휴관

김청신_붉은 계단 : 원뿔, 원기둥_캔버스 천에 아크릴채색, 목탄_2009

초대일시_2009_0417_금요일_06:00pm

관림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역사와 이미지의 기이한 만남 ● 사물의 '존재'와 그것이 직면한 '사건'에 대한 관심을 드로잉과 종이작업으로 풀어냈던 김청신은 이번 전시에서 상징―이미지로 가득 찬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그녀가 상정한 「바람의 땅」은 인간의 역사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조형언어로 풀어낸 작업으로, 구체적인 현실은 어느 정도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상징체계로 진입했지만, 구체적인 현실 대신 인간, 시간, 역사, 바람, 땅과 같은 보편적인 개념으로 접근한 이번 작업은 '사물'들의 어떤 상태를 가시적으로 드러냈던 이전 작업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김청신_2009_벽에 파스텔_2009

그렇지만 그녀의 '사물' 드로잉 및 종이 작업과 같은 이전 작업들 또한 구체적인 의미를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 개념을 도출하여 결론에 도달하기 보다는 그것이 놓인 '상황'을 제시하는 것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가정해 본다면, 어쩌면 이번 전시에서도 구체적인 의미보다는 '인간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역사'를 어떤 형식―이미지로 풀어낼 것인가에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전히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그녀의 작업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가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라는 문제적인 주제를 선정했지만, 정치적인 의식은 배제하고 선, 색채와 같은 이미지의 차원으로 모든 것을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김청신_바람의 땅 : 깃발_레드카펫, 종이에 드로잉, 파스텔, 보드지에 파스텔_가변설치_2009
김청신_바람의 땅 : 깃발_레드카펫, 종이에 드로잉, 파스텔, 보드지에 파스텔_가변설치_2009(부분)

벽면을 가득 메운 A4종이 드로잉은 역사를 추상화한 대표적인 예이다. 1년 단위로 쓰여진 숫자들, 즉 얇은 종이에는 의미화 되지 못한 년도들이 빽빽하게 써있고, 이런 숫자들이 전시장 벽면을 에워싸고 있다. 표면적이고 구체적인 사건들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나열된 숫자들을 통해 개별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람소리, 록음악, 영화음악 등의 변화를 통해 공간의 이미지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 가능성은 오로지 관객들의 반응과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록음악이 흘러나올 때, 붉은 바닥과 깃발은 선동적인 이미지를 생산하기도 하며, 혹은 역사라는 광활한 대지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이렇듯 이번 작업에서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상징은 모두 이미지로 환원되었으며, 구체적 현실이라는 지면은 소진되어 있다.

김청신_바람의 땅 : 깃발_레드카펫, 종이에 드로잉, 파스텔, 보드지에 파스텔_가변설치_2009

그럼에도 붉은 바닥, 붉은 계단과 같은 강렬한 색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정치적인 역사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역사의 칼바람, 피의 사건과 같은 과거의 시간들이 우리의 무의식에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환기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의식에 섬광처럼 부딪히는 순간에만 흐릿하게나마 그러한 사건들과 대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더군다나 승리의 상징인 깃발들. 승리를 확신하는 'BIG, BIGGER, BIGGERST'라고 적힌 깃발의 앞쪽 면에는 ×라는 기호가 적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지배적 역사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역사가 지배의 역사임을 상기해 본다면, 그리고 '역사'라는 것이 그러한 반복을 통해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의 인식은 그것으로부터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을 만큼 과거의 모든 시간 아래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청신_방명록 프로젝트_2009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럼에도 상징―이미지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녀가 의식적으로 포착한 역사(과거의 시간들)는 벽면을 가득 채운 종이 드로잉에서 푸른색으로 선명하게 그려졌지만 공허하고, 드로잉 작업에서 지워졌지만 흔적을 남긴 숫자들만큼이나 어떤 면에서는 모호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역사에 대한 상징―이미지는 여전히 미술 언어 내부에 안착해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상징이나 강렬한 이미지의 제시도 필요하겠지만 구체적인 현실의 상황이나 사건을 가시화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현실과 맞닥뜨릴 수 있는 예술가의 '응시'가 필요한 지금, 이러한 문제의식이 더 구체적이고 날카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 신양희

Vol.20090419g | 김청신展 / KIMCHUNGSHIN / 金靑信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