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展 / SHINJINHO / 申珍浩 / painting   2009_0420 ▶︎ 2009_0619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 바니쉬, 거울_62×62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제9회 신진호 초대개인展

신한 여의도PB센터

박제(剝製)된 과거와의 소통 - 신진호의 두 개의 시선 ● 신진호의 화면은 세심하게 계획된 화면이다. 입체성을 배제한 물체가 주는 느낌은 박제된 추억에 대한 회상이다. 과거의 한편에서 떠난 지 이미 오래된 물체들은 실존이면서 그림자를 갖지 않는 형태로 화면에 존재한다. 물체의 질감이나 형상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면서도 단순형체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대상이 갖는 주제를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화면에서 창조되는 조형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와는 달리 작가에 의해서 창조되기 때문에 명암을 갖지 않으면서 화면에서 보여주는 색면에 의한 대비는 작가의 감정과 연계된다. ● 단순한 형태들을 사용한 화면에서 보여지는 오브제(Object)들은 과거의 한때에서 떠나와 순수하게 장식적 기능으로 놓여 있다. 또한 복잡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배열로 공간을 확보하고, 고가구와 동질감을 이루면서 대체로 어두운 갈색기조의 화면으로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추지않고 시선을 공유해 나가고 있다. 묘사적이나 서술적이지 않게 자신의 규칙에 의해 전체화면을 주도하고 있다.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 바니쉬_45.5×38cm_2009

신진호가 주로 사용하는 화면의 배치는 수평으로 화면 하단으로부터 1/3지점까지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가구가 놓여있는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으로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2/3지점에 시선을 집중하여 잡아두고자 한 작가의 의도에 따른 분석으로 보인다. 이렇게 유도된 시선의 벽면들엔 시간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투사된다. ● 낙서처럼 긁고 간 자리, 겹겹이 붙였다 떼어 낸 흔적처럼 남아 있는 한자들, 그 위를 새로 단장한 벽지들··· 여기서 작가가 사용한 기법은 전사(轉寫)된 화면의 활용이다. 놓여진 물체들은 과거에서 돌아와 화면을 점유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본질을 잃어버린 현실에서는 이미 박제(剝製)된 모습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소재의 본질에서 어린시절의 정(情)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림의 소재는 작가의 마음에 과거와 현실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정감있는 물체들이고 마음의 고향을 찾는 한 부분이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소재를 통하여 주제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물이라면 흔히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생각하게 되고 꽃이나 과일과 함께 화려한 부드러움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신진호의 경우엔 기하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기물들로 화려함보다는 차분하며 무거움을 준다. 마치 늦가을이 주는 계절의 침묵에 비유될 수 있다.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 바니쉬_74×74cm_2009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_70×56cm_2009

신진호의 초기 작업들은 구상작업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었다. 교단의 일상이나 추억의 사진들을 작업하면서 긋고 뜯어 붙이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배어나온 흔적을 보며 사진을 크게 복사하여 캔버스에 전사하는 작업을 고안하였다. 이로서 그의 화면은 배경에 물감을 칠하기보다 프린팅하듯 복사하는 작업을 병행해오고 있다. ● 1993년에 있었던 첫 개인전에서 작가는 『잃어버린 꿈』이라는 테마로 칠판, 연주자 없는 기타 그리고 주사위와 다트 등을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시계와 함께 그려 넣었다. 이것은 작가가 처한 현실에서 세상에 고(告)한 내면의 울림이었다. ● 『회상』이라는 주제로 열었던 2회전이나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로 열렸던 3회 전시 모두 회상을 통한 현재에서 과거로의 여행이다. 가족 사진이나 옛날 기생을 그린 그림들은 전사된 기법으로 이 시기에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시계 위에 전사된 가족 사진은 시간의 역사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3,4회전의 작품에는 고가구 위에 놓여진 도자기나 바구니, 등잔같은 추억 속의 소재들을 화면에 넣고 그 위에 나비가 날고 돌멩이가 떠 있으며 종이비행기가 날아들기도 하는, 그런가하면 좌선을 하고 있는 부처머리위로 빨간 사과가 강렬하게 떠 있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것은 현실을 일탈한 낯설음의 표현으로 '더 페이즈망(d'epaysement)'의 기법과 일련의 연관성이 있다. 이러한 가상공간 위에 날아든 낯익은 물체의 낯설음은 네 번째 전시까지 계속된다. 이것은 작가가 현실 일탈을 꿈꾸며 화면에 던진 화두라 할 수 있다.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_80×59.5cm_2009

영원한 것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마 작가가 살아있는 동안 평생 갖고 살아야할 문제일 것이다. 신진호가 마주쳤던 과거의 기억들은 작가에게 강인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6,7회전에서 보여주는 정물 연작은 시골집 사랑방 한 벽면을 옮겨 놓은 듯, 전사된 벽지 앞에 문갑이나 뒤주를 그려내고 그 위에 토기와 바구니 호롱불을 놓고 있는데 그 물체들은 자신의 존재를 그림자를 통해서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번 8회전 작품에서 작가는 허상의 그림자를 배제하고 평면성을 추구하고 있다. 기존에 보여지던 소재를 확장하여 전통적 사군자에도 관심을 보이며 원반형의 찻상 위에 국화와 대나무를 그려 넣었다. 그런데 이 화면을 자세히 보면 붓으로 선을 긋는 대신 테이핑기법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아크릴(Acrylic)을 바르고 바니쉬(Varnish)를 입혀 화면에 윤기를 주고 입체감을 주어 마치 나전칠기 같은 느낌을 살리고 있다. 이렇듯 신진호의 화면에서 주는 매체의 질감은 감상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캔버스에 나무결을 살려 가구를 만들고, 쇠다리미를 만들고, 토기나 바구니를 만드는 그의 묘사력은 특이 할만하다. 입체성을 주기위해 칠을 수없이 반복하고 결을 만들고 홈을 파서 깊이를 만들면 화면 위에는 고가구 하나가 놓이게 된다. 이 모든 오브제(Object)들은 그가 말하고자하는 이야기들이다.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 바니쉬, 거울_97×162cm_2009
신진호_情_캔버스에 벽지전사, 아크릴_50×60cm_2009

과거에 대한 회상은 작가가 처한 현실에 대한 또 다른 반향(反響)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제까지 즐겨썼던 제목들로 보아도 처음부터 이번 전시까지 한가지 맥을 이루고 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박제가 된 과거의 흔적들을 오늘로 불러내어 본질을 떠난 이 개체들에 작가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 자개장 위에 놓여 있는 소라나 꿩은 실상(實像)같은 박제된 허상이지만 이 대상들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의 실체를 돌아보게 된다. 즉, 현실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조차 지나온 시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작은 화면이지만 건물 지붕을 그린 두 작품에서도 읽혀진다. 이것은 작가 신진호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시선이다. 화면가득 머리를 맞대고 있는 지붕들은 예스러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철거'라고 갈겨 쓴 붉은 글씨가 건물 사이에서 공포스러움을 준다. 이는 존재하는 것의 덧없음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 교단에서 일상을 보내는 작가가 이처럼 지속적으로 작품을 한다는 것은 본인의 강한 의지없이는 힘든 싸움이다. 앞으로도 지속 될 그의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 黃孝順

* 평론은(8회개인전 평론-박제된 과거와의 소통)은 8회 도록에 실린 평론입니다.

Vol.20090420c | 신진호展 / SHINJINHO / 申珍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