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 the Texture

백승아展 / PAIKSEUNGAH / 白勝雅 / painting   2009_0429 ▶︎ 2009_0505

백승아_閔_캔버스에 안료_99×90cm_2009

초대일시_2009_042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_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 www.noamgallery.com

근본적인 본질에의 추구-인격의 신체에서 개체로서의 신체로 ●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가 무너진 것은 오래되었지만, 이것은 최근에 와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굳이 동양화냐, 서양화냐 따져 부를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제도나 사고가 아직 이에 따라가지 못한 면이 있어, 여전히 구습에 얽매여 그렇게 고민 없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미술현장의 실천은 제도나 관습을 훨씬 앞서가 있다. 이 실천에는 적극적인 자기표현을 위해 다양한 방법과 매체에게 열려있는 듯하다. 설령 사용하는 표현방식이 전통적인 것에 가깝다고 할지라도, 이는 다양한 현대미술에서 자신을 위한 표현의 하나로 다루고 있는 것이지 전통적인 방식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현대화 그 자체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 백승아 작품도 이와 같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동양화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 작품을 동양화로 바라보는 잘못을 범하기 쉽지만, 어디까지나 동양화라기보다 현대화이다. 화면 바탕으로 광목을 사용하고 있어도 전통적인 아교대신 까파롤을 사용하고, 석채 대신에 서양화 안료 가루인 피그먼트를 사용한다. 또한 전통적인 모필보다 평필이나 수채화 붓을 즐겨 사용한다. 때문에 언뜻 보면 동양화 같지만 세부적으로는 서양화에 가깝고, 서양화라고 생각하다 보면 전체적으로 동양화적인 분위기가 다가온다. 이는 백승아의 개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승아_躍_캔버스에 안료_175×110cm_2008

이번 개인전은 백승아에게 의미 있는 출발이다. 지금까지 여러 단체전이나 기획전에 출품한 것을 바탕으로 개인전을 처음 연 것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작품에 대한 태도와 열정이 어느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교에서 백승아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때 인상은 자신감이 넘치고 호기심이 많은 나머지, 재주가 분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졸업 후 외국으로 패션을 공부하러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작품 앞에 서고 개인전을 한다고 하니, 나로선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도 부풀어 있었다. 이번 개인전 작품은 걱정보다도 기대에 크게 부합하였다. 작품을 다루는 태도는 진지해졌고 문제의식 역시 투철해졌다. 무엇보다 재주가 한 곳에 집중하여 작품에 대한 벽(癖)을 이룰 정도이니, 너무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지 않은가. ● 백승아의 작품은 크게 「다리」 시리즈와 「Body, the Texture」시리즈로 이루어졌다. '다리' 시리즈는 자신의 근본적 존재에 대한 물음이고, 「Body, the Texture」 시리즈는 나를 넘어 신체와 사회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이 관계는 여러 감정을 수반한 다양한 신체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신체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이처럼 상당히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아마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서양에서 신체의 표현을 통해 시대의 이념을 표현해 왔고,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개체는 사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사회는 개체의 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두 시리즈는 동시적으로 작업되었다. 다만 두 시리즈는 문제의식의 관점에서 선후관계를 가지면서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Body, the Texture」는 「다리」작품의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백승아_恬_캔버스에 안료_50×120cm_2008

「다리' 작품을 보면, 먼저 「논어」의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 생각한다. 切問而近思"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는 바로 예술가들이 갖는 궁극적인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상응되는 것이다. 백승아는 동양의 인물화에서 허구하게 들었던 '인격'이나 신사(神似)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자신의 물 자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는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절실한 물음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으로 다가가게 하였다. 그러나 주위에서 나에 대한 존재는 외물을 이용한 간접적인 것으로 넘쳐있었다. 복제이미지이나 거울을 통해 본다던가, 관념을 통해 생각한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자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응시하고 있지만 무심코 자신의 존재로서 지나쳐 버렸던 팔과 다리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시선이 집중하다 보니 존재의 본질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시간을 느꼈고 변화의 흔적을 발견하였으며 내면적 생명의 외현을 목격하였다.

백승아_適_캔버스에 안료_105×120cm_2009

이 결과, 백승아는 개체가 인격에 의해 규정된 것이 아니라 세월과 그것이 환경에 의해 노출되면서 이루어진 흔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몸의 살결, 발바닥의 갈라진 부분, 지문, 튼 살, 몸의 구석구석의 얼룩과 땀구멍" 등 "피부의 표피-texture에 집중하면서", 이를 "하나하나 표현함으로써 인간이라는 개체"의 표현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표피는 한 개체를 다른 개체와 구분 지어 줄 수 있는 그 개체의 역사의 기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백승아는 신체 표피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하고 있다. 생명의 외현, 시간의 반응, 변화의 흔적 등은 표현 방식을 결정한다. 작품에서 살결과 얼룩, 지문, 틈 등의 색감이 미묘하면서 밀도의 차이가 나고, 필치의 속도와 힘의 강약 및 간격과 폭 등이 차이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은 서로 예술적 변주를 일으키면서 생동한다.

백승아_迷_캔버스에 안료_120×160cm_2009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은 「Body, the Texture」 시리즈에 집중되어 있는데, 다만 각 작품마다 「傷」 「愁」 「憂」 「適」 등과 같이 감정을 제목으로 붙였다. 이 작품들은 이번에 출품되지 않았던 「다리」 작품과 서로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서로의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신체의 표피에 대한 세세한 표현은 여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문제의식이 나의 존재를 넘어 개체와 사회의 관계, 감정과 신체의 변화로 확장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형적인 표현이 복잡해지고 있다. ● 먼저 가장 부각되는 것은 화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백승아에게는 사각형의 화면 형태는 더 이상 세상을 보는 창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인 틀인 것이다. 이 틀은 나에게 가해지는 구속이면서 나의 자연적 본성을 사회적인 것으로 이끌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모순된 요소가 긴장하고 있는 사회적 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백승아는 자신의 작업일지에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여러 가지 규제나 틀 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가두고 살아간다."고 하면서 이를 '자발적 감금'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백승아의 작품에서 개체와 사회의 관계에 상응하는 화면과 신체 형상의 상호작용을 주시해 보자. 사각형 틀은 화면과 그리는 대상을 제한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신체를 화면에 꽉 차게 그렸다. 이것은 불안전하고 어색하면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그와 달리 "자발적"인 독립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체는 화면의 틀과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대화를 나눈다. 화면이 구속된 틀로서 느껴지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백승아_傷_캔버스에 안료_99×90cm_2009

다음으로 감정을 수반한 다양한 신체 형상이다. 「예기」 '악기'편에 감정은 외부의 영향으로 마음에서 일어나고, 이는 손과 발, 몸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로 보면 외부에 노출된 신체에는 항상 감성이 수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승아는 다양한 신체 형상에서 감정과의 상호관계를 고찰하고 이를 사회적 틀과의 관계로 확장하여 표현한 것이다. 조형적으로 화면의 틀과 신체 형상, 감정은 구체적인 일관성으로 가지고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서 얼굴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얼굴은 신체 전체에서 그 의미가 최소한으로 축소되고 있다. 많은 인물화에서 얼굴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전통 초상화에서도 얼굴은 매우 중요하고, 이를 묘사할 때 세밀한 살결이나 터럭 한 올까지 묘사하여 그 인물의 개성과 정신을 표현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백승아는 얼굴은 그 개체의 개성과 관련이 있지만, 오늘날에는 얼굴에 많은 관심을 집중하여 여기에는 과식과 거짓이 넘쳐버려서 오히려 본질과 거리가 멀게 되었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작품에서 최대한 얼굴을 배제하였다. 얼굴을 화면의 구석에 그리거나, 사지나 머리에 의해 가려져 있도록 시각을 고정시킨 채 그린 것이다.

백승아_愁_캔버스에 안료_ 110×110cm_2009

결과적으로, 백승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인간 몸의 담론이다. 얼굴의 비중이 축소된 신체는 익명성에 가까운 것이지만, 백승아는 이것을 통해 개체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다리' 시리즈와 연결되는 문제의식이다. 생명의 본질은 끝없이 변화하여 외현된다. 이것은 환경과 시간의 흐름을 만나 그만의 개체를 형성한다. 백승아에게 지금 이 순간의 몸의 표피는 내면적 생명의 외화에 시간의 흐름을 통해 각인된 본질인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신체 표피의 세밀한 묘사와 표현이 이전의 작품보다 놀라울 만치 발전되었다. 그런데 예견치 못한 상황이 작품에 나타났다. 백승아는 신체를 공산물처럼 하나의 개체로 생각하였지만, 신체와 공산물과의 '동일성'에서 신체의 '차이'로서 생명이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즉 내면의 생명의 외현되는 표피의 색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색채를 여러 번 칠하여 밀도를 높여가면서 피하층에 있는 정맥이나 실핏줄을 하나하나 그려나감으로써 점차적으로 내면으로 집중하게 된 나머지, 서로 유기적으로 드러나는 생명의 메커니즘 적 표현에 이르게 되었다. 개체의 신체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 필자는 지금 백승아 작품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작품을 나 스스로 그려본다. 많은 가능성으로 충만한 공간에서 진지하고 묵묵히 내걷는 힘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 조송식

Vol.20090429c | 백승아展 / PAIKSEUNGAH / 白勝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