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綠樹林 상록수림

한영애展 / HANYOUNGAE / 韓榮愛 / painting   2009_0901 ▶︎ 2009_0910 / 월요일 휴관

한영애_Other side of the world 430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72×9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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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901_화요일_06:00pm

자인제노 기획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자인제노_GALLERY ZEINXENO 서울 종로구 창성동 130-5번지 Tel. +82.2.737.5751 zeinxeno.mbillust.co.kr

한영애 회화의 '자유로운 유희' - 시뮬라크럼의 독특한 풍경을 산책하다 ● 1. 20세기 후기 현대미술에서 커다란 혁명적 변화를 맞게 된 이후, 그것은 미니멀주의로 완성된 모더니즘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탄생을 말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모더니즘은 무엇이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사의 변화와 맞물려 해석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일찍이 근대미술이라는, 소위 한복 바지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서양식 의복인 양복을 입듯이 근대미술로 갈아입는 한국 미술은 서양미술 500년사 동안의 양식적 변천을 한꺼번에 해치운다. 모더니즘이 유럽식 양복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식 양복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은 모더니즘의 경우와 유사한 방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속에 빨려들기 시작한다. 이렇듯이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서구 문화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저항도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인다. 서구 열강의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 정신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이 이 땅에 들어온 이상 그것은 외면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 미술 속에서 「외연의 모방」에 그치느냐 「내포의 심화」로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문화가 비교적 빠르게 우리 풍토에서 발아 될 수 있는 데는 작금 우리사회의 문화적 형태와 무관할 수 없다. 첨단 문화로서의 컴퓨터, 전자 등 사이버과학의 발달, 젊은 층을 매료시키는 패스트푸드 문화, 여성시대를 상징하는 페미니즘의 확산 등 등 포스트모던 문화를 상징하는 사회적 현상들이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빠른 속도로 한국 현대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현대미술은 60~70년대의 교육과정을 거친 50~60대와 90년대의 교육과정도 마친 30~40대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모더니즘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 확연하게 양극적 현상으로 구분되어져 있다.

한영애_Other side of the world 5010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50×72cm_2009
한영애_상록수림(Indeciduous forest)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65×100cm_2009
한영애_Breath - Pink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31×40cm_2009

2. 서양화가 한영애의 회화는 처음부터 모더니즘을 체험하지 못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토양에서 발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회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사상은 '해체deconstruction'에 있다. 여기서 해체라는 것은 현존성을 제거시킴으로서 오히려 '시각적 사고visual thinking'를 초래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데리다의 해체주의의 근본 사상이다.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다분히 다다이즘의 성격이 짙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말하는 해체주의의 전략 개념은 '差異diff?rance'와 '痕迹trace'에 있으며, 이것은 모더니즘의 근본주의인 '자율성'과 '동일성'에 대한 대응적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영애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차용의 논리'와 '불확실성의 논리'를 자신의 회화의 관념과 상황을 표현하는데 근본원리로 적용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영애_Breath - Blue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31×40cm_2009
한영애_S - mindscape 01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31×40cm_2009

3. 한영애의 회화는 기법적으로 볼 때, 최근 몇 년 동안 일관되게 캔버스 위에 파스텔, 아크릴칼라, 바니쉬 등의 혼합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재료는 속성상 정밀한 표현보다는 화면위에 부유하는 듯 불확실한 형태를 만들기 적합한 재료들이다. 이러한 재료를 선호하는 것은 그의 작품의 시각적 특징인 불확실한 세계를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상호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자아의 공간과 심리적 풍경은 불분명한 형태이지만, 분명한 존재감이 느껴지도록 표현하고자 한다."는 그의 매우 애매한 말처럼(그러나 사실 작가의 의도는 분명히 내포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화면의 이미지들은 매우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현대미술은 자유와 이상을 자신 가운데서 무한히 증대시킬 수 있기 위해 '자유로운 유희freeplay'를 바탕으로 미완의 틈새와 여백을 만들어낸다."는 클레르의 말처럼 한영애의 작품은 감상자에게 무한한 자유로운 상상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감상자의 퍼스펙티브가 바닥에서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 속에서 허공이라는 상상의 세계를 보듯이 무중력 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의 구조적 특징은 산수화에서 인간을 매우 미미하게 처리한 것처럼 사슴, 기린과 같은 동물들을 매우 작게, 보이지 않을 만큼 화면 속에 잠겨 있듯이 처리되어 있다. 따라서 한영애의 화면의 빈공간은 동양화의 산수화에서 여백이 단순한 빈공간이 아니라 우주의 기(氣)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원천이듯이 그의 화면에서 시공과 자연과 사물을 만들어내는 기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영애_S - mindscape 02_캔버스에 파스텔, 아크릴채색_31×40cm_2009

"나는 캔버스 공간을 '환환상대지(喚幻想大地)'로 바라본다. 지나간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현실에 없지만 있을 것 같은 심리적 풍경을 캔버스에 담는다. 화면에는 일정한 시간 속의 상황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들이 공존하며 때로는 낮과 밤이 함께 공존하기도 한다. 자연과 주변의 사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를 내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페인팅을 통해 재구성 된다." 이러한 한영애의 진술은 그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초현실주의적 사고를 읽을 수 있으면서, '은유metapher'에 의해 묘사된 관념과 상황 그리고 자신이 꿈꾸고 생각하던 심리적 풍경들을 화면 위에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상idea'의 저면에 깔려 있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해석하려는 의지로서 포스트모더니즘 그 이전의 동양철학의 주요한 원리를 인식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화면 위에 부유하고 있는 'fog'와 보일 듯 말 듯 한 이미지 기호들과의 결합은 동양화와 서양화, 즉 동양과 서양의 미학적 전통을 종합한 표현 양식같이 동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서양의 형식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영애 자신의 심미적 관점에 근거하여 독자적인 행위와 유희적 속성을 즐기면서 그 자신만의 현실과 꿈 사이의 독특한 풍경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시뮬라크럼simulacrum' 같은 허상과 가상의 세계일 것이다. ■ 김재관

Vol.20090903g | 한영애展 / HANYOUNGAE / 韓榮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