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Le Papillon

문수만展 / MOONSOOMAN / 文水萬 / painting   2009_0905 ▶︎ 2009_0918

문수만_Le Papillon-61(Ornithoptera goli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5×65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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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모리스 갤러리_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번지 Tel. +82.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열린 구조 속 이탈로써의 '박제된 자유'-정적 재현의 방식에서 동적 개념으로의 진화 ● 1. 작가 문수만은 2009년 초에 열렸던 5번째 개인전인 '박제된 자유'전을 통해 지연 상태에 놓여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채집된 표본형태로 표현했다. 나비의 생태적 측면을 화두로 해체와 집약, 의식과 무의식을 근간으로 한 실제와 허구의 융합을 펼쳐보였다. 물론 가시적으로 확연했던 것은 일정한 고착성을 갖춘 나비 자체의 형상성과 디테일함이었다. 그러나 흰 바탕에 심어진 여백 또한 도외시 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대상의 리얼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향했던 역설적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심리적 위식(違式)으로 작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는 작가의 '예술적 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느 방향에 조타를 맞추고 있는지 가늠케 하는 단초였다. 이번 대전 '모리스 갤러리' 초대전에 선보이는 작품들 또한 기본적인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인의 그것과 비교해 처지지 않을 만큼 혹독한 인내와 세심함, 치밀함을 요구하는 묘사 대상의 주체가 대동소이하며, 그 리얼리티를 증좌 하는 요소들인 형태와 색감까지도 여전히 풍족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각적으로 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가는 선, 그 선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면의 치밀한 조우(遭遇), 극한의 정교함에 보는 이들을 놀라움과 감탄에 젖게 하는 것까지 닮아 있다. ● 이뿐 아니라 사실적인 재현을 거쳐 '채움'을 강조하되, 형상성을 가미한 조화(遭禍)를 새롭게 추구함으로써 되레 비움의 역설을 은유하는 방식 역시 변하지 않은 특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 실존과 허구 사이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나비에 의한 시각적 환영, 사진보다 더욱 사진 같은 기술적인 세련미와 같은 문수만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온 특질도 여전하다. 특히 '박제된 자유' 전 당시 비평에서 언급했던 다소 추상적인 관념과 사실주의의 공존, 가감(加減)의 보류(保留)라는 방식 또한 큰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스펙트럼을 넓힌 관점에서 볼 때 작금의 신작들도 2009년 초에 열렸던 '박제된 자유'전 당시의 경향이 동일하게 기능한다.

문수만_Le Papillon-62(Heliconius doris, Heliconius melpomene)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5×65cm_2009
문수만_Le Papillon-65(Oeneis walkyria, Anthocharis scolymus, Lycaena dispar)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51cm_2009
문수만_Le Papillon-57(Ornithoptera meridionali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지름 39cm_2009

2. 그렇다고 이전과 다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적으로 피력해야할 것은 기존 미묘하게 존재했던 것의 제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비의 역동성을 옥죄던(사물의 박제화를 직접적으로 대체하던) '핀'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특정한 형상의 몸통을 가로지르던 핀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한 묘사의 그침이 아니라 그동안 직접적으로 구속하던(핀으로 고정되어 있던) 대상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준 셈이요, 길을 열었다함은 '그리다'라는 고착화 된 행위에서 이탈해 동화된 스스로의 감정이입을 염두에 둔 채 점차 개념화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 또 하나의 다른 점은 과거 일부 작품에서 보이던 것과는 달리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배경구성이 전면부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작가는 화면 중심에 나비를 앉힌 후 그 주변에 바탕이 되는 띠를 둘렀는데, 일정한 면을 차지하는 그 띠에는 비규칙적인, 그러나 다분히 점증적인 패턴을 앉혀 놓았다. 이 패턴들은 근본적으로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면서도 일정한 규칙성과 규율의 미를 함의하고 있던 이전의 나비와 같은 형식을 취한다. 네모, 원, 직사각형이라는 캔버스를 무대로 하나 또는 무리지어 있는 병렬식 구성에서도 일정한 궤는 유지된다. 하지만 흡사 '벽지'처럼 단순해 보이는 이것의 내부에 작가 개인의 내레이션이 이입되어 있음은 익숙한 것과의 구분을 제안한다. 그 띠가 단지 시각적 이미지자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 전에는 이입되지 않았던 스토리가 구체적으로 발현되어 있다는 것을 숙지토록 한다. ● 그렇다면 띠와 관련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 내용을 짧게 기술하면 이렇다. 작가는 어느 날 한 시골마을의 허름한 식당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지극히 평범한 그림을 애지중지하던 주인장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인 빛바랜 벽지 위에 걸려있던 그림을 소중하게 다루는 그 모습을 마주하며 문득 그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감상하고 있을 사람이나 이 남루한 장소에 걸려있는 별 특성 없는 저 그림을 대하는 주인장 간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곤 "비록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지만 내 그림도 어쩌면 훗날 좋은 주인을 만나 저것처럼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를 떠올린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명작과 평작의 차이나 그 작품을 구입하는 계층에 있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자신이 겪은 작은 일화를 일종의 희망이요, 바램으로, 또한 그림을 하게 된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긍정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임을 넘어 자신의 작업으로 치환했다는 것에 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오늘날 그의 작품에 등장하게 된 역동적인 테두리, 즉 띠를 전면으로 부각시키게 된 이유이다. 비평적 관점에서 그의 단상은 정신성의 반영이다. 그 단상들은 이제 문수만의 작업이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보단 진일보한 모색의 단계에 접어들음을 예고함은 물론 진보적인 결과를 예상케 하는 힌트로써 작동한다. 속박을 함의하던 핀의 제거, 율동이 감지되는 띠의 확대, 군무에 가까운 나비들의 형상은 그러한 예고를 이미 가늠토록 한다는 것이다. 여러 작품들 중 13마리의 검은색 나비가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Le Papillon-62」라는 그림은 이러한 설명을 실체화하는 대표작이다.

문수만_Le Papillon-64(Papilio macha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3×53cm_2009
문수만_Le Papillon-71 (Troides cuneifer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8×28cm_2009
문수만_Le Papillon-69 (Papilio palinur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8×28cm_2009

3. 나비가 날카로운 금속성 물체에 의해 인위적, 정적인 적막한 상태에 갇힘으로써 어떤 미동도 허락지 않았던 이전 작업들에 반해, 「Le Papillon-62」에선 부각된 배경으로 인한 동적인 비율에 균형을 맞추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4월 개인전에 비해 훨씬 비워졌고 공간은 그만큼 채워졌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이 지닌 중요한 점은 실질적으론 다음 전시를 예고하는 상징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묘사의 치중도가 여타 작품들에 비해 단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운동감이 크다는 것에서 형식상의 차별점을 읽을 수 있도록 하지만 이번 전시작들을 통해 작업의 전개방식을 스스로에게 열람하고 보다 넓은 영역에서 활발한 전개를 예견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데 보다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 이번 작품만 놓고 보자면 현재 작가는 재현의 방식에서 논리의 방식으로, 정적인 상황에서 동적인 상황으로 변모시키며 작업방식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박제된 자유가 아닌 능동적 자유, 닫힌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의 지향이 실천적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내면에 안주된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드러냄과 숨겨놓음을 화면 속에서 교차시키는 방향으로 예술적 자유를 찾으려했으며 자유와 속박을 동시에 안고 있는 매개(나비)로 박제화 되고 있는 부자유스러운 여러 현상들을 타파하려 했던 올 초 전시에서의 의도가 비로소 서서히 실현의 단계를 밟고 있다. ● 필자의 시각에 지난해와 올해 전시작 간에는 이탈의 간극이 있다. '드러냄'과 '보임'이라는 외피적인 측면에 치중했던, 일견 한정적이던 디테일의 축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운 배열을 개념화의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음은 그 이탈의 범위를 잘 수용토록 만든다. 특히 시간 대비 그 폭이 좁지 않아 차년도 개인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작가는 천천히 가더라도 좋은 그림, 정성이 담긴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박제된 자유'에서 언급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의 그는 엄격함과 착시, 사실적 표현과 단순 도안의 공존, 같은 맥락에서 양감을 살린 단순한 음각선의 조화, 스스로와 현실을 하나의 대상을 통해 시간적 '무상(無常)'과, 공간적 '연기(緣起)'를 종(縱)과 횡(橫)으로 연결시켜 시각을 환하게 열람시키려는 목표를 드디어 실행하는 과정에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두름 대신 언제나 순간적인 지연을 선택하려고 한다. 완전히 안착할 때까지 공을 들이고 있다. 흡사 천천히 비상하기 전 숱한 날갯짓을 하는 그의 그림 속 나비처럼. ■ 홍경한

Vol.20090905b | 문수만展 / MOONSOOMAN / 文水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