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 그물망

김건예展 / KIMGEONYE / 金建睿 / painting   2009_0901 ▶︎ 2009_0913 / 월요일 휴관

김건예_기억의바다-I_캔버스에 유채

초대일시_2009_0901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봉산문화회관 제3전시실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거리 133번지 Tel. +82.53.661.3081~2 www.bongsanart.org

1. 여덟 번째의 개인전을 앞둔 김건예는 대학을 졸업하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위해 독일유학길에 올랐다가 13년의 세월을 이국땅에서 보내고 불혹의 나이에 귀국했다. 오랜 시간 독일에서의 유학생활과 작가활동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 삶의 경계에서 새로운 접점에 대한 가능성을 찾게 했을 것이다. 그 경계와 접점은 자신이 경험한 삶의 자리이자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으로 생성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서 회화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여서 오히려 한국의 전시가 더 낯설고 설렌다는 작가는 긴 시간 경험한 문화적 경계와 새로운 접점을 찾으려는 실존에 대한 고민을 정신적 사유와 시각적 언어로 엮은 '회화적 그물망'으로 펼쳐 놓는다. 귀국 후 일 년 남짓 작업했던 20여점의 이번 전시작들은 그동안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회화적 고민과 한국에서 적응하는 시간 속에서 걸러진 감성으로 엮어낸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 바로 이 두 문화 사이에서 경험한 경계의 지점에서 찾은 접점의 공간이 김건예의 '회화적 그물망'일 것이다. ●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직물의 표면 같기도 한 이번 전시작들은 자아와 타자, 안과 밖, 정신과 육체,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만나 하나의 '회화적 그물망'을 통해 생성 변화하는 유기적 생명인 나와 너의 관계가 갖는 회화적 시선으로 마주한다. 어쩌면 이 같은 작가의 회화적 시선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는 지점으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회화적 표현이 아닐까. ●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처럼, 김건예의 '회화적 그물망'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고 반영하는 관계에 대한 인드라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 같은 화합과 조화의 정신은 오랜 시간 일상에서 경험한 모순과 부조화를 극복해 가는 자기치유의 과정이자, 다양한 문화적 체험의 결과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김건예_숲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8
김건예_빛-순간의 포착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9

초록빛으로 물든 화면으로 씨줄과 날줄이 겹쳐지는 공간 사이를 화사한 봄꽃으로 가득 메운 사각의 스펙트럼을 이룬 「빛-I」, 물이 흐르는 강변을 걷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선 익명의 인간과 자연이 겹쳐지면서 하나의 묵묵한 풍경으로 여성이라는 인간의 모습과 가이아(Gaia)인 대지가 겹쳐지면서 고독과 우수가 담긴 「기억의 바다-I」과 남성의 뒷모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고독과 우수를 발견하는 「기억의 바다-II」,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성숙한 인간의 감성을 멀리 혹은 가까이 향수처럼 젖게 한다. ● 작가의 '회화적 그물망'은 기법적 요소와 내용이 육체적인 행위의 과정과 심리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시각적 확장뿐 아니라, 심리적 확장을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도 그의 회화적 그물망 속에 포착하고 있다. 이런 점은 회화적 기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엷은 농담과 얇은 붓질의 반복과 겹침을 통한 결과 형의 조화로 그의 회화적 공간의 깊이를 유추하는 매력이기도 하다. ● 이러한 기법적 요소에서 발생되는 공간의 깊이는 회화적 그물망 너머 내용으로 확장된다. 이를테면, 결이 형을 다스려 조화로운 공간의 접점을 찾아 완성해 가는 것은 확실히 수평과 지평이라는 이분법적 시각, 둘로 가르는 '경계나누기'에 익숙한 시선을 지우는 동시에 새로운 접점인 그 어떤 합일의 지점을 일깨운다.

김건예_나무-I_캔버스에 유채
김건예_나무-II_캔버스에 유채

2. 김건예의 '회화적 그물망'은 화합과 조화라는 새로운 생명감을 불어넣는 '제3의 회화적 공간으로 이미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굳은 체계를 허물어 다중심의 그물망 속에서 좌측과 우측, 위쪽과 아래쪽을 연결해 가는 화합의 과정이자 감성적 거리를 확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감성적 지점의 발견이야 말로 우리가 잊고 살았던 고귀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 무엇보다 작가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문화적 차이, 막막한 외로움이 주었던 아득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여행에 대한 상상으로 형을 결로 결은 다시 아련한 시간 여행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회화적 경험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이번 전시의 결과물은 바로 그림을 통해 발견하는 일상이자, 일상이 반영된 심리적이고 미학적인 요소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김건예의 작업은 일상에서 발견한 미적경험의 소산이자, 회화적 확장으로 몸과 마음이 통하는 길이다. ● 몸과 마음이 통하는 김건예의 작업은 치열한 욕망의 결과물이기 보다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사유방식을 투영하는 장이자, 일상의 편린 속에서 작은 소망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자기성찰의 과정이다. 이렇게 일상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회화적 그물망'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두드러진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는 불교의 연기(緣起)사상과도 통한다.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인 연기는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것으로 노장의 상생(相生)과도 맥을 같이한다.

김건예_빛-I_캔버스에 유채

이런 저런 설명들이 그림을 이해하기보다는 더 어렵게 만드는 다소 거창한 해석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한 가지 일에 꾸준하게 몰입하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그의 말 보다는 그의 행위와 그 결과물에 고스란히 베여있다. 이번이 여덟 번의 개인전이지만, 지금껏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작가는 거창한 포부나 내용을 담아 미술로 거대담론을 논하거나, 사리가 앞서는 그 어떤 목적보다는 다만, 마치 우리의 몸이 숨을 쉬듯 호흡의 자연스런 생명의 순환처럼, 그림을 그리고 또 휴식을 취하는 매우 단조롭기 까지 한 일상을 살고 있다. ● 그래서 일까. 작가의 이번 전시작들에서 보여 지는 주제는 매우 단조로운 인물과 풍경이 주를 이룬다. 그림의 주제로 등장하는 인물이나 나무는 대부분 한명 혹은 한그루의 나무만이 등장한다. 한명이거나 한그루의 나무는 바로 작가 자신이자 익명의 인간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는 우리 모두가 투영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이처럼 김건예의 근작들은 자기 자신이자 우리 모두의 모습을 '회화적 그물망' 속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인드라망'이라고 하는 생명의 그물로 상생의 꿈을 펼친다. 이 꿈은 한명의 사람 모습과 한그루의 나무가 동일한 균형감각 속에서 씨줄과 날줄 혹은 색과 형, 몸과 마음의 결로 시각화되고 있음을 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생성 변화하는 삶 속에서 작은 이야기에 실린 결을 따라 '회화적 그물망'에 걸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 김옥렬

Vol.20090905f | 김건예展 / KIMGEONYE / 金建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