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 수(水)

서용선展 / SUHYONGSUN / 徐庸宣 / painting   2009_0902 ▶︎ 2009_1010 / 일요일 휴관

서용선_돈황가는 길-협서성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162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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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9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리씨갤러리_LEE C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동 35-240번지 1,2,3층 Tel. +82.2.3210.0467~8 www.leecgallery.com

『서용선·산(山)· 수(水)』展은 서용선의 작업 중 풍경을 테마로 한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전시이다. 서용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2009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바 있다. 서용선은 오랜 시간 동안 인물, 풍경, 역사, 전쟁,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특유의 색채와 질감, 인문학적 연구와 성찰을 토대로 작업해 왔다. 그 중에서도 풍경작업은 80년대 초 작가를 주목하게 만든 일련의 소나무 시리즈부터 이어져온 작가의 자연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담은 작업들이다. 주로 최근 2년간의 작업들을 선보이는 『서용선·산(山)· 수(水)』展은 지난 30년간 작가가 두 발로 걸었던 산들과 숲들, 강들의 모습, 그 풍광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우리가 자연을 마주하며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심상들은 작가의 붓을 통해, 새롭게 인식되고 재현되어 새로운 산(山)· 수(水)로 태어난다. 수많은 풍경들 중 유독 서용선의 풍경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곧은 모습의 그의 자화상이 담고 있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 그의 이번 작업들 속에서도 힘차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2009年 9月) ■ 이영희

서용선_다릿골_닥나무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162cm_2009

산(山)· 수(水) ● 이번 전시회는 화가이자 작가인 서용선의 관심 중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경험과 인식의 차원에서, 풍경이라는 주제는 오랫동안 동·서양 모두의 순수 미술 전통의 주요 부분이었으며, 또한 지난 삼십여 년 간 서용선의 개인적인 관심 분야이기도 했다. 최근 서용선은 실제 존재하는 풍경에 대하여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이런 확장된 인식은 자연의 초월적인 내재성(immanence)에 대한 뜻밖의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문화적 인식의 집적을 통해서만, 다시 말해 신화로 구현된 집단적인 기억의 형태로만 저장된다고 알고 있었던 경험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용선은 자연에 내재하는 이런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재현할 것인가? 예전부터 종종 그래왔듯이, 그는 애초부터 자연의 본질에 대한 경험에서 기인하는 유교적 사상과 철학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언젠가 공자는 시냇가에 서서 이르기를, "시간은 이 물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와 자연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표현으로, 시간을 통해 우리의 몸에 축적되는 개별적인 경험에 대한 선천적인 이해와 그 중요성을 드러낸다. 또한, 언제나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고 자연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를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일련의 수준 높은 소품들을 통해, 서용선은 모방(mimesis)과 타자성(alterity)(타자성(alterity)은 "otherness"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철학용어로서, 일반적으로 자신의 시각을 타인의 시각으로 대체하는 철학적 원리로 이해된다. 그러나 작가와 필자가 나눈 대담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 글에서는 대상에 대한 단순 모방과 상대되는 의미에서 감정이입 등을 통한 '변형', 혹은 '추상'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것은 손, 붓, 물감의 터치를 통함으로써, 단순한 재현의 방식을 피하고, 모방을 통하여 대상의 힘을 얻는 [재현의] 원칙에 따르는 동시에 그 원칙에 저항하는 작업이었다. 언제나 판단 보류(epoché)(인간이 가진 사회적 관습 등을 버리고 상황을 직시하려는 태도)의 태도를 견지하는 서용선 특유의 태도는 이번 작업에서도 전혀 무뎌지지 않고 있다. 그는 오히려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식의 판단의 유동성(sliding scale)에 대한 회의주의(skepticism) 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진실한 경험 즉 그로부터 진정한 재현을 이끌어낼 만한 경험에 접근하기 위하여, 투박하게 보이는 외관을 선택했다. 인간의 의식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서용선은 애초부터 그의 그림들에서 주관적인 분석을 가하지 않으려고 한다.(이것이 객관성과 유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오히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시도하는데, 바로 이런 자연에 대한 경험의 인도자로서 이 둘 (객관성과 주관성) 모두를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다. 인지된 풍경을 그것에 대한 사고로 변형시키는 것은, 말하자면 그 풍경을 보편적인 속성으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원은 자연에 대한 관습적 인식을 일단 괄호 안에 넣어두고 [보류하고] 세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다는 평범한 믿음/환상을 해체한다. 메를로-퐁티는 만년에 쓴 어느 글에서 "... 화가의 눈은 사물들을 당연하게 바라보려고 하는 '일상적인 시각'이 간과해버린 것을 우리에게 새롭게 제시한다..."라고 언급했다.

서용선_지리산_성삼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73cm_2009
서용선_정선군_고한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73cm_2008~9

동양에서의 '화(畵)'라는 전통적인 개념은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의 개념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화'에서는 [모더니즘 회화의] 조형적인(concrete) 측면이 강조되지 않는다. 또한, 상상(imaginative)보다는 심상(imaginal)과 더 관련이 깊다. 한국의 산수화(풍경화)는 자연에서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이상적인) 것을 관조하는 전통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며, 선(禪)의 명상적인 전통에서처럼 [자연 본질로서의] 산, 강과 관련되어 왔다. [동양미술의] 산수화는 [서양적 개념인] 풍경화(風景畵)와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 풍경화라는 용어는 제국주의 일본이 강요했던 동양, 서양이라는 관념의 상호지양(Aufhebung)과 혼성교배로 배태된 의미와 태도를 갖는다.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한층 다양하게 유입된 서구문화의 영향에 의해 그 결과는 더욱 복잡해졌다. 서용선은 ['풍경화'가 조어될 때] '풍(風)'이라는 요소가 '산수'에 더 가까운, 즉 자연의 우아함의 숭고한 현현(顯現) - 공기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정신의 움직임 - 이라는 선(禪)적인 해석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제 그 요소를 산수화의 법칙과 선대로부터 자연스럽게 확실히 체득한 전통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을 통하여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자신의 풍경화 개념에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서구에서도 이런 산수화와 유사한 인식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데, 예컨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폴 세잔의 후기작과 같은 그림이다. '그림을 그려내는 것(realising a painting)'이라는 세잔의 사고는 산수화와 매우 가깝다. 편지에서 세잔은 그려지는 대상 앞에서 그림을 그려내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그려냄'은 그리는 행위를 통하여 어떤 것을 사실로 인지하는 것이자, 곧 "자연[의 조화]과 조응하여 이루어지는 [화면의] 조화(harmony parallel to nature)"를 창조하는 것이다. 풍경을 주관하는 동시에 그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뛰어난 풍경화가인 서용선은, 이우환이나 한국의 다른 선배화가들처럼, 신체의 만남과 사유라는 방법을 통하여 [자연과의 만남이라는] 그 순간(내재성)을 추구한다.(다릿골 중간채, 한국, 2009년 7월 12일) ■ 앤디 톰슨

* 대괄호 [ ]는 문맥의 흐름을 분명히 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역자 임의의 삽입구.

서용선_귤암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08
서용선_다릿골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72.5cm_2008~9

Mountain and Water ● This exhibition represents one very significant and particular aspect of Suh Yongsun's interests as a painter and artist. The subject of landscape in the field of experience and perception has long been an integral part of both Eastern and Western traditions of high art and culture and has been of personal interest to Suh Yongsun for over thirty years. In recent years however, he has occasioned an expanded appraisal of landscape in relation to the real. This appraisal was manifested for Mr Suh as an unexpected experience of a transcendent immanence in nature, an experience that he had previously known to only be held in an archive of cultural consciousness - in collective memory embodied in myth and not known to him personally.(Simon Schama Landscape and Memory, Fontana Press, Harper Collins, London, 1996, p. 61) Yet how is Mr Suh to understand and represent this experience that is both in and of nature? He has had to return, as he has many times before, to Confucian thinking and to a philosophy that in it self came from an apriori experience of nature. Confucius once said standing in front of a flowing stream that "time passes like this water"(Confucius (Kung Fu-zi [551-479 BCE]) Arthur Waley (Translator) The Analects Allen and Unwin, London- Everyman's Library, 2000 (9:27)) This expresses with immediacy our connection to nature, revealing our innate understanding and regard for our individual allocation (and experience) of time in our body, and also our need to connect with and to understand nature, naturally. ● Suh Yongsun has decided in this discreet group of paintings to work with mimesis and alterity, working with and against the principle that the copy acquires the power of the represented by distancing the method of representation through the mediating touch of the hand, the brush and paint. His classical inclination towards epoche is in no way compromised by this practice, as he instead posits the image towards the side of credulity rather than scepticism on the sliding scale of a suspended judgment, which can go either way. Here he has chosen to appear na?ve in order to approach an authentic and profound experience of nature - an experience that commands a true representation from him. In order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of consciousness and nature Suh Yongsun starts from scratch, choosing not to offer an analysis of subjectivity in his paintings (which would present a likeness of objectivity) but instead he attempts the seemingly impossible: to present both, (objectivity and subjectivity) simultaneously, as the preceptor of these experiences of nature. The transformation of the perceived landscape into the thought of itself is as to say, an attempt to reconstitute the landscape in immanence. This reduction brings into parenthesis the thesis of a natural world, and in turn deconstructs the mundane belief/illusion of an independent existence of the world, which causes us to see it. As Merleau-Ponty says in the last article published in his lifetime, "…The vision of the painter' shows us what 'profane vision' overlooks in its rush to posit objects...'(Merleau Ponty, The Primacy of Perception from Merleau-Ponty: Basic Writings, North Western University Press, 1964 (pp159-90)) ● The traditional idea of Fwa (picture) is slightly at odds with the Western modernist idea of a Painting. Fwa is less concrete and more concerned with the imaginal than the imaginative. The Korean SanSu Painting (landscape painting) has developed out of a tradition of looking at the visible and invisible (the ideal) in nature and has been concerned with the mountain and river, as in the contemplative tradition of Zen. Originally SanSu Fwa is not as was redefined in Poong Kyung Fwa (windscape painting), which is a definition and mindset derived from a sublating and hybrid of eastern and western concepts imposed from imperial Japan. The effect of this has subsequently been compounded by more diverse western influences since the partition of Korea. Suh YoungSun has seen that, the wind aspect is more akin to San Su, to an original Zen description of the divine manifestation of grace in nature: not unlike moving air but of the spirit. Therefore he can now accept it into his own schema of landscape, which he has been developing for a long time through San Su precepts and a native Confucian thinking garnered naturally and positively from his father. ● In the West it is perhaps possible to glimpse this San Su-istic percept, for example, in the late paintings of Mount Saint Victoire by Paul Cezanne, whose notion of 'realising a painting' is closely akin to San Su. In his letters Cezanne refers to a realization of a painting in front of the motif; this 'realisation' being as, an awareness of something as a fact through the act of painting, thereby creating a "harmony parallel to nature".(Paul Cezanne's Letters, John Rewald (Ed). Cezanne's letter sent to Joachim Gasquet (September 26th, 1897). Published by Oxford:Bruno Cassirer, 1941, 4th Revised Edition, 1976 (pp 261)) Just as Lee U-Fan and his earlier Korean antecedents who sought the moment (immanence) through touch and of thought in the body, so does Suh YongSun, this sublime painter of landscape, painter of the land of the sceptre, the staff of the Sovereign! (Middle House, Dtarricol, South Korea - July 12 2009) ■ Andy Thomson_영한번역: 임대근

Vol.20090906e | 서용선展 / SUHYONGSUN / 徐庸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