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展 / Adiyabazar Chadraabal / painting   2009_0918 ▶︎ 2009_1031 / 월요일 휴관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Message_캔버스에 유채_130×80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이안재 개관 기념, 북방아시아 작가 시리즈展 #1 Northern Asian Artists Invitational #1

관람시간 / 11:00am~11: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이안재_GALLERY YIANJAE 서울 성북구 성북동 52번지 Tel. +82.2.6237.3770 www.yianjae.com

삶과의 견고하고도 지속적인 상호성에 입각한 회화 ●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의 회화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인상은 아마도 두 뒷다리로 우뚝 선 채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있는 말(들)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두발로 직립한 두 마리의 말이 짝지어 춤을 추는 모습도 눈에 띤다. 그 말(들)의 잘 발달된 근육들은 그의 원색조와 더불어 화면에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화면은 이 건강한 생명체들이 만들어내는 활력과 강인함과 기개로 충만하다. ● 작가의 붓질은 격하거나 정돈된 감정을 담는 유효하고도 다양한 용기(用器)가 된다. 그것들은 짧고 단속적인 강세를 화면에 배분하기도 하고, 거칠고 길게 구현되기도 하면서 회화의 정서적 토양을 경작한다. 전반적인 색조 역시 강하면서 밝아 모티브와 구성이 조율해놓은 힘을 지지한다. 차드라발의 회화가 주는 또 다른 인상은 아마도 자신의 삶의 기반으로부터 도래했을 것이며, 견고한 신념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을 어떤 지속성이다. 일테면 스타일의 저변으로 흐르는, 결코 쉽게 조변석개하지 않는 의지의 내밀한 표출이랄까.(불안이 가장 먼저 뒤흔드는 것이 지속성이다)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Red dust_캔버스에 유채_150×250cm_2009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Sky dream_캔버스에 유채_200×150cm_2009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Horse composition_캔버스에 유채_100×110cm_2008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Hot land_캔버스에 유채_70×85_2008

차드라발의 회화들은 마치 다른 시간으로부터 온 것 같다. 몇몇 것들은 열정적으로 회화의 실험에 나섰던 시간의 기억들과 긴밀하게 통해있음이 틀림없다. 물론 그것들은 협소한 장르 담론에 구애됨이 없다. 대서사로부터 구성적 취미에 이르기까지, 표현과 구조, 색과 선을 아우르면서, 우리의 현재와 지나간 자취들에 대해 질문하도록 한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의 시간(?)'과 더불어 예술의 어떤 성격화된 여정을 걸어왔다. 그것은 '예술로서의 예술', 또는 '예술에 대한 언급으로서의 예술'로 명명되어진 것으로서, 이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예술이 재정의되고 재규명되는 그런 여정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심각하게 다루도록 해 온 반면, "예술작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도록 해 왔다.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Autumn_캔버스에 유채_100×200cm_2009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_A.Chadraabal_Soyombo_캔버스에 유채_100×110cm_2008

예술작업은 무엇인가? 극단으로 향하는 일종의 관념의 촉진인가? 다소간 신체적 행위를 동반하거나 촉발시키는 형이상학의 일환인가? 예술가들은 예술이 끊임없이 재규정되어야 한다는, 예술비평적 사명에 부응하는 한에서만 자신의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인가? 현재의 우리에게 이 질문의 촉수는 이미 상당히 무뎌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예민한 지점들을 지나쳐 왔을지라도, 아직 의구심은 충분히 사그러지지 않았다. "체스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적으로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체스를 둘 때 불안하지 않을까"라고 데이빗 베일즈는 묻는다. 예술을 질문으로 대체되면서 불안을 끌어안는 것은 운명이 되었다. 자주 이 시대의 예술은 우리의 확신을 확신하기 위한 피곤한 싸움에 나선다. 반면, 차드라발의 회화는 작가의 삶과의 견고하고 지속적인 상관성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모티브에서 회화형식에 이르기까지, 서사에서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인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면서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시종 말(馬)이 내러티브와형식의 중심에 있다. 말-또는 말들-은 거의 언제나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단 한 번도 부대적으로 취급되거나 변두리로 밀려나는 적이 없다. 매우 역동적이고 때론 장식적인 시각적 변주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이루는 의미만큼은 시종 흔들림이 없다. 아마도 그의 회화가 거듭되는 재정의와 그로 인한 신경증과 과민반응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전부터 스스로 포기해 왔던) 어떤 보다 근원적인 '믿음'의 대지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심상용

Vol.20090918k | 아디야바자르 차드라발展 / Adiyabazar Chadraabal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