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E

민재영展 / MINJAEYOUNG / 閔才暎 / painting   2009_0916 ▶︎ 2009_0927

민재영_출사 Photographers' Visit_한지에 수묵채색_170×17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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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_서울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재)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9:00pm

갤러리 쌈지_GALLERY SSAMZIE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아랫길 B1) Tel. +82.2.736.0900 www.ssamziegil.com

일상의 행렬 : 민재영의 퍼레이드 ● 퍼레이드라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열을 지어 나가는 즐거운 행렬이나 군대의 열병식과 같은 것을 상상한다. 둘 중 어느 것이 되었든 퍼레이드는 그것을 지켜보는 제3자의 존재를 전제한 것이며, 더 나아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한다. ● 작가 민재영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퍼레이드의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연속적인 행렬"을 상정한다. 그는 무수히 반복됨으로써 어떤 전형성마저 지니게 된 생활의 단면과 그것들의 연속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일상의 행렬을 본다. 그리고 그 일상의 행렬을 가공하여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가 제공하는 볼거리는 전통적인 퍼레이드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을 법한 흥미진진한 것이거나 스펙터클한 것은 아니다. 민재영은 단지 화면위에 현대인이 대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부닥치게 되는 순간들을 제시할 뿐이다.

민재영_청중 Audience_한지에 수묵채색_100×132cm_2009
민재영_퍼레이드 Parade_한지에 수묵_210.5×148.5cm_2009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군상의 모습에 주목한 민재영은 그 군상들의 특정한 한 때를 형상화한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스쳐지나 가고 있거나 금방이라도 부딪힐 듯 바삐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혹은 도시 생활이 제공하는 볼거리를 찾아 나선 관객의 무리이거나, 도시의 사건 사고를 그 다운 방식으로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기자들의 무리이다. 이렇듯 민재영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설령 한가로이 여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도시적 삶이 제공하는 여가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며, 그렇기에 그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이나 사소한 마찰, 스쳐지나감 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민재영_기말시험종료 After the Final Exam_한지에 수묵채색_200×300cm_2009

한편, 도시의 군상들을 제시함에 있어 민재영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나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려다보는 시점을 활용한다. 그 결과 그의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은 마치 건물 옥상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관조적인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확보된 거리로 말미암아 관객은 비록 화면 속 군중들의 스침과 부딪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만, 결국 화면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화면 속 군중의 무리가 주는 압박감과 그들 무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스침과 부딪힘이 초래하는 심리적이면서도 정서적인 측면을 환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민재영_Workaday_한지에 수묵채색_100×150cm_2009

민재영의 화면이 제시하는 군중 이미지는 대도시에서 삶을 영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어서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며, 특별히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일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화면 속의 인물이나 그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 모두 어디선가 자신도 경험해 보았음직한 상황이지만 별로 각별할 것 없는 상황이기에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 않던 장면을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인 상황을 제시함에 있어 민재영은 화면 속 인물들의 구체적인 얼굴 모습을 파악하기 힘든 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특정 상황 속의 구체적인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화면 속 이미지와 등장인물들은 보편적인 상황에 놓인 익명의 인간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에 근거한 화면이 보편적 정황으로 인식됨으로써 민재영의 화면을 주도하는 이미지는 전형성 마져 띠게 된다. 그 결과 우리들은 지금은 비록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그림 속 군상들을 바라보는 나 역시 그리고 우리 역시 때로는 얽혀서 힘겹게 또 때로는 무덤덤하게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화면 속 군상들과 다를 것이 없기에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이들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장(場)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그 도시라는 공간속에서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인의 삶, 더 나아가 도시의 삶이 초래하는 인간 군상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 한편, 민재영은 도시적 이미지를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인 지필묵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만의 독자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현대 도시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는 텔레비전의 주사선에서 착안한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로선을 통해 드러난다. 화면 전체를 메우는 가로선은 영상화면의 주사선처럼 중첩됨으로써 특정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그 결과 그의 화면을 주도하는 이미지는 미세한 떨림과 잔영의 효과를 갖게 된다. 더 나아가 가까이서 바라볼 때 가느다란 띠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화면이던 것이 화면에서 멀어짐에 따라 점차 확연한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민재영_In This World_한지에 수묵채색_100×74cm_2009
민재영_A certain race_한지에 수묵_75×55cm_2008

이러한 독특한 형식은 서양화에 비해 선적일 수밖에 없는 동양화의 선묘적 특성이 갖는 한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민재영의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민재영은 누구보다도 동양화가 가지고 있는 전통의 무게를 고심하면서도 동양화의 기본에 충실한 작가라 할 수 있다. 동양화에 있어서 선은 거부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상의 부피감이나 실재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부족한 감이 있으며, 자칫 평면적이면서도 삽화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작가는 동양화의 윤곽선이 만들어내는 삽화성을 벗어나면서도 선이 지닌 특유의 맛과 세밀함을 고수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일필로 선을 긋기 보다는 선을 중첩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며, 그러한 기법은 지금의 가로선의 중첩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 그의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은 부피감과 실재감을 보유하면서도 동양화의 선이 주는 미세한 울림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 이번에 개최되는 『퍼레이드』展 역시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도시공간 속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지, 필, 묵이 갖는 전통의 무게와 한계를 넘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를 담고자 노력하는 작가 민재영이 전통에 얽매이지도 않고 재료에 한정되지도 않으면서 담담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단면을 화면에 담고자 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모쪼록 이번 전시를 통해 민재영이 우리에게 담담히 들려주고자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의 행렬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흔하게 여기고 지나쳤던 순간들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 기혜경

Vol.20090922e | 민재영展 / MINJAEYOUNG / 閔才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