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장소

차기율展 / CHAKIYOUL / 車基律 / mixed media   2009_0923 ▶︎ 2009_1030 / 추석연휴 휴무

차기율_세 개의 장소(서울 통의동 발굴이미지)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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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923_수요일_05:00pm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05

부대행사_화음프로젝트 음악회 2009_0923_수요일_04:00pm / 소극장 공간사랑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추석연휴 휴무

공간화랑_gallery SPACE 서울 종로구 원서 219 공간사옥 지하 Tel. +82.2.3670.3500 www.space-culture.com

수직적 부유(浮游)의 수평적 연결 ● 예술이 존재하기 위한 형식은 무엇인가? 예술가들이 발산하는 사유와 성찰의 정체성은 어떤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가? 차기율의 이번 공간화랑 전시는 작가 스스로, 혹은 외부의 관객을 향해서 던지는 질문이며, 소통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기도 하다.

차기율_세 개의 장소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차기율의 작업 ● 차기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작가를 꿈꾸었고, 비교적 일찍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활발했던 서울의 아트씬 중 하나였던 제3미술관이나 청년미술관 등지에서 열린 여러 전시에 이미 20대 초반부터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한참 젊은 작가로서 의욕적인 활동을 선보일 때는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조류 이후 무경계와 키치를 필두로 하는 포스터 모던 담론이 한국 미술계를 압도하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다. 차기율은 거대 담론으로부터 억눌린 당시 미술계가 새로운 동력을 찾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흐름에 대해 정서적으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으나, 그러한 작품들의 형식적 정체성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과장되지 않은 형태와 무채색의 톤을 선호했던 그에게 화려한 원색이 등장하는 키치적 형식에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은데, 이러한 면모는 그가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던 작가임을 말해주고 있다. 비교적 일찍 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안고 있었고, 급기야 수년간 작업을 접고 전국의 산야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시기에 그는 자연에서 발견한 웅대한 에너지와 생생한 메시지에 매료되었고, 결국 자신이 발견한 야성(野性)의 에너지를 끌어오는 것을 앞으로의 작업의 테마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장흥 토탈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작업의 견고함과 안정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작업은 인위성이 주도하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자연의 무위적이면서도 정교한 체계를 자신의 작품 속으로 이식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가 계속 안고 있었던 기억의 부유(浮游)나 순환, 생태와 같은 정신적 가치들은 대개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의 완성된 아름다움을 새롭게 배열하거나 연결하는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문학이나 생물학, 고고학과 같이 본인을 자극하는 여러 학문들로부터 다양한 모티브를 이식하기도 했다.

차기율_세 개의 장소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세 개의 장소 ● 이번 공간화랑의 개인전, 『세 개의 장소』를 위해 차기율은 자신이 임의로 선정한 세 개의 장소에서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발굴의 행위로부터 얻어진 기록과 부산물들, 사유의 결과 등을 작품으로 내어 놓았다. 사실 그의 발굴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2007에 이미 통의동의 한옥을 발굴하고 그 결과를 「도시 시굴 - 삶의 고고학」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선보인 바 있다. 그때의 발굴이 어떤 추상적 지향점을 향한 행로의 시작으로서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번 공간화랑에서의 전시는 복수의 발굴지를 선정하고, 각각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수직적 사유의 행로를 수평적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맥락을 창출한 것이며, 결국 작가로서의 성찰의 구조를 보다 깊은 층위의 단계로 확장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차기율_세 개의 장소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이번 전시에서 등장한 세 개의 발굴지는 각각 화성과 서울, 그리고 인천에 위치한 모종의 지점들이다. 화성시 발안의 발굴지는 자신이 태어난 집의 앞마당이다. 그 집이 위치한 마을을 둘러싼 모든 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되었고, 이제 그 마을 또한 대규모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게 명백하다. 이 어색한 풍경에는 도로 개설을 위해 반토막이 나기 전의 육중한 산과 이제는 매립되어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는 갯벌의 기억 등이 중첩되어 있기도 하다. 그가 태어난 집의 발굴은 자신의 작업세계가 향하는 어떤 근원적 지점을 모색하는 행위의 출발점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장소인 통의동 한옥은 자신이 성장한 서울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속성을 잘 상징하고 있는 곳이다. 발굴지의 주변은 과거 영조의 잠저(潛邸)였던 창의궁이 있었다거나 추사 김정희가 다른 문인들과의 교류를 즐겼던 곳이라는 등 묵직한 역사적 실재가 스며있으며, 궁궐의 서편이라는 이유로 중인계급이나 하급 관리직들이 가난한 삶을 영위하던 곳이라는 과거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양면적 역사성은 자신이 살았던 서울의 역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데, 대도시가 가진 드넓은 영역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부유(浮游)해야 했던 자신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서울이라는 곳은 도시 빈민들이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는 보편적 장소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가 행하는 발굴의 행위가 역사와 같은 의미론적 사유의 과정이기 보다는 작가로서 스스로 안고 있는 다양한 내면의 물음과 답이라는 성찰의 행위임을 알게 해 준다.

차기율_세 개의 장소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마지막 장소인 배다리는 그가 대학을 다녔고, 많은 시간을 보낸 인천의 근현대사를 함축하고 있는 곳이다. 과거 인천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산업화의 개발 과정에서 뒤쳐져 지금까지 6,70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현 시점에서의 역사적 보존 가치와 새로운 산업도로 계획 및 무분별한 개발의 야욕이 상충하면서 여러 문화적 맥락들이 생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에게 인천은 서울과는 별개의 도시의 개념은 아니며, 사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행해왔던 숱한 부유의 삶의 반경이 연장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가 발굴을 진행했던 이 장소는 도로 건설을 위해 철거된 집터로서 상충된 입장들의 중간에서 어색하게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차기율_세 개의 장소(배다리 발굴이미지)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차기율 작업의 형식과 개념 ● 그가 학습하고 사용하는 발굴의 방법론은 고고학에서의 유물 발굴의 과정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의 예술의 틀로 수용되는 것이고, 그가 구축하는 어떤 체계의 완성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기에, 그는 유사 고고학자가 아니라 한 명의 예술가로서의 존재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추구하는 어떤 예술적 지향점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차기율은 자신의 작업을 예술가로서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이며 의미로 인식하고 있다. 이 추상적인 표현은 차기율의 엄격하고 확고한 예술관과 자신의 생활을 일치시키는 놀라운 삶의 태도와 결합되면서 설득력과 당위성을 획득한다. 그가 자신의 정신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유의 결과물들을 담아내는 작품들은 대개 무위적인 형식의 자연물들과 결합된 것들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그러한 형식에 담긴 원형의 지향이며, 정신적인 가치들이다. 그가 정서적으로 지향하는 형식미 또한 결국 이러한 그의 가치 지향점으로 수렴된다. 때문에 그는 형식의 완결성이 갖는 유혹에 함몰되는 자신을 늘 경계하며, 형식의 영구적인 보존을 오히려 반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업속에 존재하는 소멸의 매커니즘도 이해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구축하는 하나의 소우주로 간주한다면, 생성과 순환의 귀결점으로서의 소멸의 과정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남겨지는 것은 정신의 결과라는 묵은 명제는 그의 작업에서 동시대적인 현재성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차기율_세 개의 장소(상신리 발굴일지)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차기율의 메시지 ● 위에서 언급했듯 차기율은 미술작품의 형식미가 가진 시각적 쾌의 본령을 중시하는 정서를 갖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미술의 원론적인 형식이나 미학적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제아무리 명백한 정언도 미술작품의 형식적 본질을 뒤흔들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인정하는 작품의 형식미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매우 보수적이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형식의 소멸과 부재까지도 수용할 만큼 유연하다. 그러한 역설은 작품의 형식적 속성이 그 속에 담긴 정신적 가치를 압도할 수는 없다는 확고한 견해를 반증한다. 그가 생각하는 형식의 중요성은 정신의 노동을 적절히 보여주는 범위 안에서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개념의 영역속에 용해되어 버린 형식적 미감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오늘날 많은 젊은 작가들이 미술이 가진 형식적 함정과, 그것에 결탁한 미술시장의 위력 앞에 너무나 무력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차기율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원형'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원형이란 것은 직관의 영역 속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지향점이기도 하고 부유하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자신이 교차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의 예술은 어쩌면 그 원형에의 탐색의 과정일수도 있는데, 그 탐색은 그가 구축하는 소우주의 귀결점일 수도 있다. 그가 추구하는 이종적 영역의 수용은 그의 작업의 확장을 위한 실천적 키워드이며, 동시에 그의 작업의 지향점을 위한 구도의 과정이다. 그가 이번 전시를 위해 행한 발굴의 과정은 그의 정신적 성찰의 기저에 존재하는 어떤 근원에의 탐색이자, 그가 구축하고 지향하는 어떤 궁극의 가치를 위한 실천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 고원석

Vol.20090923i | 차기율展 / CHAKIYOUL / 車基律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