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NATION 이미지 네이션

박정혁_이용백_조훈展   2009_0918 ▶︎ 2009_1031 / 일요일 휴관

이용백_Plastic Fish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9

초대일시_2009_091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살롱 드 에이치_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Tel. +82.2.445.0853 www.artcompanyh.com

이미지네이션-미술의 진화를 말한다. ● 언어를 대신한 주술, 신권과 왕권의 상징, 건축의 시녀, 르네상스맨 레오나르도 다빈치, 환영주의로부터의 독립, 사진의 탄생, 앤디워홀의 팩토리,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제프 쿤스의 스캔달리즘, 데미안 허스트의 회화복귀 선언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끊임없는 자기변신을 거듭해 왔다.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문화, 정치, 경제, 종교라는 테두리를 벗어 던졌다. 반기, 쿠데타, 전복도 서슴치 않았다. 그 반란의 역사 중심에는 항상 이미지가 서 있었다. "이미지"란 깃발을 휘날리며 미술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의 성전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지배층의 독점에서 대중의 소비로, 사조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그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이미지의 기세는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오래된 성벽은 무너졌고 새로운 지평이 생겨났다. 이 같은 이미지의 영토확장 앞에 수 백 년간 성문을 지키고 있던 조각, 회화, 사진, 영상, 설치, 개념미술의 벽이 하나 둘씩 무너져 내렸다. 인터넷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이미지는 텍스트의 전파 속도보다 빠르게 유통되기 시작했고, 소통의 반응 또한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 전파되었다. 어디에도 구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점점 더 개인적인 성향을 강하게 띄게 되면서 하나의 장르에 기생하던 이미지의 독립선언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개별 장르의 전복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통섭을 알리는 변화이다. 이 같은 미술의 진화를 가능케 한 이미지는 더 이상 하나의 울타리로 가둘 수 없을 만큼 성장해 버렸다. 재빠르고 번식력도 강하 변덕스럽고 식욕도 왕성하다. 형식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미지의 새로운 모습이다. 자 이제 미술의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미지네이션 IMAGENATION』은 이 "변덕스런 녀석"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는 이용백, 박정혁, 조훈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 사진, 회화, 조각, 영상 등 특정 장르의 한계를 넘어 버린 이미지가 욕심을 내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형식으로 진화하며 현대 사회 속 숨겨진 모순과 한계, 인간의 욕망과 위장의 가면을 벗겨낸다. 때론 눈속임과 미끼를 이용해, 때론 노출과 감추기를 반복하면서 실제와 가상, 개인과 사회, 세속과 신성함 사이의 불합리한 이분법을 공격한다.

이용백_Angel Soldier_C 프린트_130×130cm_2006

먼저 이용백의 그림 속 인조 플라스틱 물고기가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실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대량 생산된 가짜 미끼에 관객의 눈이 낚였다. 진짜 물고기보다 크고 탐스럽게 생긴 가짜 물고기 「플라스틱 피쉬」. 관객은 화려한 색깔의 비늘에 눈이 멀어 날카로운 바늘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다. 실체를 놓치고 허상에 열광하는 이 같은 집단 최면상태는 거대하게 확대된 인조 눈 페인팅 작품 「플라스틱 아이」을 통해 다시 한번 반복된다. 커다란 가짜 눈을 응시하고 있는 관객의 진짜 눈 사이에서 실제와 시뮬라크르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 온통 꽃을 배경으로 꾸며진 공간 속에 작은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러자 지저귀던 새소리가 사라졌다. 무언가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카멜레온처럼 꽃으로 위장한 병사의 움직임이 멈춰 서자 다시 새들이 울기 시작한다. 「앤젤 솔저」가 노리는 사냥감은 숨어 있는 새 만이 아니다. 새소리와 발자국, 자연과 인간, 사냥감과 병사, 꽃과 무기, 평화와 폭력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관객 또한 사냥의 타깃이 되어 버린다. ● 성모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도상을 인용한 플라스틱 「피에타」의 모습이 낯설다. 사이보그를 연상시키는 두 인물이 사실 하나라는 사실은 꼼꼼히 살펴보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성모의 역할은 거푸집이, 예수의 역할은 거푸집 속에서 빠져 나온 인물이 하고 있다. 하나는 알맹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알맹이를 낳은 껍질이다. 둘이라는 개념은 결국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으니, 어머니와 아들,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박정혁_Park's park 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0×250cm_2009
박정혁_Park's park 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0×250cm_2009
박정혁_Theater series_단채널 HD 비디오_00:03:41_2009

이미지는 소통을 통해 새로운 문맥을 만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미디어 작가로 출발한 박정혁은 뉴스, 광고, 포르노 사이트, 영화 등 다양한 문맥 속에서 태어난 이미지를 오려내어 하나의 풍경「Park's Park」를 완성한다. 미디어 동영상 연출에 익숙한 박정혁은 이야기를 가공하고 해석을 통제해야만 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등장 인물 개개인의 사적인 의도와 개성은 전체 이야기 속에서 재해석되고, 콜라주된 이미지는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그 이음새를 숨겨 버린다. 편집의 이음새가 사라지면서 다양한 문맥의 접점 또한 숨어 버린다. 완벽한 위장 즉 기표와 기의가 자유롭게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 교차편집과 시간분절, 박정혁의 영상작업 「극장 시리즈 3분 41초」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영상편집의 기술적인 용어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이미지를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감추기와 노출시키기 작업이 반복된다. 복싱을 하고 있는 화면 속 인물의 행동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이미 교차편집과 시간분절이라는 기술적인 개념이 머리 속에 들어와 버린 이상 관객은 작가의 위장과 연기에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다. ● 사진작업 「엣지 시리즈 - 배우 박광일」. 작가가 들고 다니는 약통을 모델의 손에 쥐어 준다. 약통을 전해 받자 마자 아프고 고통스런 표정을 연기한다. 누가 시킨 결과가 아니다. 약통이라는 것이 고통을 줄여주는 수단이라는 사회적인 정의와 배우로서 그런 사회적 통념을 연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행동패턴의 예가 연극적인 사진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조훈_rewind_기계장치_가변설치_2007
조훈_ecstasy_합성수지_210×130×7cm_2009

길거리에 버려진 마사지 걸 전단지 속 여성의 포즈는 콜렉션 할 만큼 다양하다. 남성의 비밀스런 관음증에 대한 욕망의 크기를 말해주는 방대함이다. 섹슈얼리티에 열광하는 소비 사회가 만들어낸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구원하기 위해 작가 조훈은 여성의 이미지를 확대하고, 입체와 평면의 중간인 부조를 선택해 남성이 절대 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결과이다. 작품 「엑시터시」는 순백의 색을 이용해 신상의 느낌을 주고 있다. 세속적인 포즈에 여신의 아우라가 오버랩 된다. 사람들이 신에게 사회적인 욕망을 기원하는 동안 조훈의 작품 속 여성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비밀스런 욕망을 대변한다. 신성과 세속, 신과 인간, 소망과 욕망의 차이는 조훈의 부조만큼이나 얇고 유동적이다. ● 영상작품 「리와인드」. 두루마리 휴지 한 칸마다 음란한 여성의 모습이 검은 먹으로 그려져 있다. 두루마리가 풀리며 음란한 드로잉이 폐쇄회로와 영사기를 통해 부끄러운 장면을 노출한다. 남성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두루마리 휴지 위에, 찢어질까 봐 조심스럽게 그려진 여성의 모습이 관음증을 자극하며 확대된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강박관념이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는 두루마리 휴지와 함께 벽면에 그대로 노출된다. ● 옆에서 보면 모습이 사라지고 정면에서 바라보면 그제서야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조훈의 신작 회화작품. 관객은 은밀한 욕망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신 불안정한 형태를 완성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작품은 부조로 탄생한 여성의 반 누드 신체를 사진으로 찍고 이를 캔버스에 옮기고 그 위에 망점을 찍으면서 마무리된다. 무수한 망점은 여성의 노출된 몸매를 덮기 위한 가리개가 아니다. "모든 이미지는 망점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리히텐슈타인 말처럼 망점은 관객의 선입견으로 바라본 야한 이미지가 결국 작은 망점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등 오래된 성문이 저 멀리 보인다. 그런데 문이 오래되면 경첩이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경첩이 떨어져 나간 문이 어떤 각도로 열리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날 미술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더 이상 약속된 각도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방법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미지네이션"은 표면적인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고 상상력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작가들에게 요구한다. 미술의 진화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이미지를 바라보느냐에 그 향방이 달라진다. "이미지" 깃발을 휘날리며 세상을 정복해나갈 상상력의 소유자가 이미지네이션의 주인공이다. ■ 이대형

Vol.20090928e | IMAGE NATION 이미지 네이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