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展 / JUNGHYERYUN / 鄭惠蓮 / sculpture.installation   2009_0918 ▶︎ 2009_1002 / 월요일 휴관

정혜련展_아라베스크_대안공간 반디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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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91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기억의 현재성 ● 정혜련은 가죽을 재료로 작업을 해왔던,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렇지만 이 재료는 분명 탁월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로테스크한 캐릭터의 표면들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초기 작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형태를 만든 후 채색을 한 작업, 특히 초기 작업에서 가죽은 그로테스크한 표면(살)을 표현해 주고, 인물이나 캐릭터가 완성된 경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찢기거나 뜯어진 흔적을 남김으로써 재료의 독특함을 잘 살려냈다. 그렇지만 이런 그로테스크함이나 표면의 상처가 사라진 것은 건물이나 구조물을 만들던 작업부터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전에 가죽 위에 채색을 했던 방식과 달리 가죽 위해 이미지를 프린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그녀의 작업에서 드러났던 기괴함이나 낯설은 이상함은 사라져 버리고 매끄러워져 버린 것이다.

정혜련展_아라베스크_대안공간 반디_2009
정혜련展_아라베스크_대안공간 반디_2009

이번 전시에서도 가죽이라는 재료는 이용된다. 그렇지만 이 재료는 다른 캐릭터나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이전까지 가죽은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이제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앞의 작업들과 같은 방식으로 가죽 위에 자신의 모습을 프린트 했지만, 정혜련은 그 표면들을 덧댐으로써 봉합하려하지 않는다. 기워지고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정혜련이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 간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나 외부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그녀가 과거 자신의 기억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세계를 향해 했던 시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과거의 어떤 순간을 기억하거나 재현한다는 것은 현재의 관점이 오롯이 반영된다는 사실은, 과거의 한 단면에 대해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과거를 재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돌아간 '아름다운 아라베스크'는 결코 따뜻하지 않고 차갑게 식어 있다.

정혜련_아라베스크_가죽_50×40×65cm_2009
정혜련_아라베스크_가죽_30×30×30cm2009

어린 시절의 방에는 노란바탕에 무늬가 그려진 벽지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피아노와 거울­구멍이 있다. 거울­구멍을 통해 보이는 것은 일그러진 성(城)의 환영이다. 이 성은 어린 시절의 꿈이 투영된 이상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작가가 꿈꾸고 있는 이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놓여진 인물들은 작가와 엄마, 언니가 겹쳐진 흉상과 머리에 손이 달린 작가의 흉상이다. 이 작업들에서는 거칠은 표면 대신에 무표정하고 공허한 표정을 통해서 그로테스크함이 되살아 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업이 유년의 기억과 연결 있다면, 바깥 쪽 공간에 놓인 현재의 자아가 재현되어 있는 작업에서는 축 늘어진 그래서 아주 지쳐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고통이 투영된 멍한 표정과 늘어진 몸은 유년의 자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정혜련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과 함께 현실에 대한 반성을 좀 더 솔직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유년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 사이의 괴리감, 작가는 지나간 한 삶의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그 당시 꿈꾸었던 막연한 이상과 현실 속의 괴리감을 표현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 나타났지만 따뜻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한 순간을 현재화할 때, 당연히 그 기억은 현재에 의해 재해석된 기억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혜련은 과거의 한 지점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연결된 '현재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나쁜 동화'와 '영웅의 집' 등의 연작에서 보여준 기괴한 동화 속 캐릭터와 박제되어 표면이 말끔해진 건물(그럼에도 외부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그녀가 보여 주었던 외부에 대한 반성은 이제 작가 자신에게로 환원되어 버렸다. 이렇게 자신으로 귀결된 이번 전시는 정혜련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차용한 기억의 편린은 아직 모호한 것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의 고통을 투영하기 위한 과거는 불명확하다. 어쩌면 아름다울 필요가 없는 과거, 그래서 현재의 고통을 언급하기 위한 계기로만 과거가 재현된다는 것이다. 거울­구멍으로 보이는 성은 정혜련이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 즉 좋은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새로운 작업을 욕망하는 하나의 단절점이라는 사실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으로 작가가 선택한 것이 작가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 요구되는 것은 외부를 향한 뜨거운 시선일 것이다. ■ 신양희

Vol.20090930g | 정혜련展 / JUNGHYERYUN / 鄭惠蓮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