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ps (조명된 조명)

민택기展 / MINTAEKKI / 閔宅基 / photography   2009_1007 ▶ 2009_1020

민택기_Floor lamp with silk thread shade_디지털 프린트_114.4×152.4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갤러리 토포하우스_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 www.topohaus.com

조명된 조명 The Props ● 그곳에 그게 있는지도 몰랐다. 항상 쓰던 물건이라 익숙한 채 잊혀지기도 하고, 한 두 번 쓰였다가 잊혀지기도 한다. 먼지가 쌓인 백열등 스탠드, 책꽂이에 꽂힌 읽다 만 책, 급하게 샀던 350원짜리 볼펜 같은 것들. 때로는 사소하거나 자그마한 것이 아니어도 잊혀진다. 다용도실에서 제법 큰 공간을 차지하는 세탁기 조차 빨래를 하지 않는 날이면 존재감을 잃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다. 하찮은 것들(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무람없이 찍고 있으면 누군가 그런 걸 무엇 하러 찍느냐 하기 십상이다. 자신에겐 흥미롭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장면들. 선택되지 않았기에 망각되는 익명의 것은 무궁무진하다.

민택기_Gori-gori light designed by coca cola boy_디지털 프린트_114.4×152.4cm_2009

『The Props』의 피사체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것은 무언가에 의해 불려지기 전까지는 구석에 묻혀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민택기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사진을 찍던 중 그 소품들을 만났다. 광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준비된 소도구들은 촬영장 가장자리에 놓여있었다고 했다. 그 소도구는 최종 선택된 장면에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역할은 있었다. 배우를 비추거나(영화 촬영을 위한 조명들), 촬영 배경을 꾸미거나(고급 스탠드와 같은 인테리어 소품들), 여러 개의 소도구 중의 하나이거나(촬영장에서 쓰인 컵이나 물병), 언제 쓰일 지 모르니 구석에 걸려 있어야(전구나 빨랫줄 같은 것)했다. 그 역할의 타고난 천형이라면 '주목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다른 것을 비출 뿐 스스로를 비추지 못하는 스탠드를 향해 조명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그것은 어딘지 주인공처럼 보였다.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 것' 처럼. '쓸모'는 결국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 섣불리 그 무엇도 무용(無用)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민택기_Black leather dress hat_디지털 프린트_114.4×152.4cm_2009
민택기_Film Equipments in Chroma key green painted studio_디지털 프린트_114.4×152.4cm_2009

피사체 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간결하다. 대부분 기본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보다 더 단순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피사체는 육면체이거나 원뿔, 구와 같은 기본 도형의 변주로, 화면의 주 요소인 점, 선, 면, 체의 일부인 동시에 집합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배경의 공간감은 최소화되면서 실험실의 무균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주목한 피사체에 수식어구를 최대한 쳐내면서 단순화시키는 것은 사물 자체와 직면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불필요한 장식을 떼어낸 채 그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본래 모습에 가까운 피사체는 그 자체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때문이다. 일견 차가운 느낌을 받게 되는 경직된 이미지들은 종종 원근법이 상실되는 공간에 놓여져 어떤 초현실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그래서 사진 속 소품들은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왔으면서도 어딘지 불편한 위치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품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두드러지는 것은 작가다.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던 소품들이 새로운 맥락으로 읽히며 부각되는 순간 오히려 작가는 선명해진다. 존 버거 식으로 말하자면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봄으로써 내가 결정한다' 는 것인데, 이는 작가와 사물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힌트인 동시에 이 시리즈의 작업에서 작가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 중 실크 갓이 씌워진 원통 형태의 스탠드를 찍은 사진에서는 피사체를 발견한 작가와 선택된 피사체가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스탠드는 작가에 의해 선택됐지만 선택되기 이전의 속성인 듯한 그 무언가를 드러낸다. 단순히 스탠드의 본래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돌연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것을 벤야민 식의 '아우라'라 해야 할지, 하이데거 식의 '존재의 개시(開示)'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와 작품 사이에 발생하는 어떤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작품 속의 사물 자체에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스탠드 사진은 이번 전시의 핵심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사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의 사진에서는 여전히 어떤 불균형-작가가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균형의 무게가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이는 눈에 띄는 과한 의도성 때문일 것이다. 이미 작가의 선택에 의해 촬영된 피사체라는 점에서 의도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주변으로 밀려났다 재발견된 사물'이라는 주제를 위해 작가가 역으로 서둘러 접근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민택기_Plastic trees in rubber pot_디지털 프린트_90.3×122cm_2009

이번 전시 서문을 쓰며 느끼는 작은 아쉬움은 『The Props』속 피사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작품 속 사물의 '존재'와 마주한다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되듯' 다가서려 할수록 존재의 본질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첫 전시에 앞서 오히려 그의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주변부로 묻혀버린 것들의 이야기를 보다 더 치열하게 조명하기를 기대한다. ■ 전미정

Vol.20091022g | 민택기展 / MINTAEKKI / 閔宅基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