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식 행복 OLD TIME HAPPINESS

홍인숙展 / HONGINSOOK / 洪仁淑 / painting.printing   2009_1120 ▶ 2009_1130 / 백화점 휴무시 휴관

홍인숙_잘 보이는 마음과 잘 보이지 않는 마음 Visible heart and invisible heart_ 자작나무_113.5×153×60.5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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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9_112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30pm / 백화점 휴무시 휴관

롯데갤러리 본점 LOTTE GALLERY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9층 Tel. +82.(0)2.726.4428 www.avenuel.co.kr/guide/guide_project.jsp

2007년 무더위가 막 시작된 6월. 충남 연기군 종촌리에서는 (종촌-가슴에 품다) 행정도시공공미술프로젝트가 있었다. 나와 인연이 있는 공공미술모임-옆록소 팀은 버려진 나무 100여 그루를 경기 양평으로 옮겼다가 새 도시가 어느 정도 건설되는 3~5년 후 다시 옮겨오는 이식(移植) 프로젝트 '더 좋은 곳에 살게 해줄게'로 참여 하였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팀의 일원인 정선생님께서는 버려진 자개장을 발견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가져다 주셨다. ● 바쁘고 무더운 여름날 그냥 달음박질하시지 왜 그러셨을까? 대체 왜 가져다 주셨을까? 나의 작업에 자개장이 액자의 틀로 쓰이니 그러라고 가져다 주셨다. 삑! 엑스.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삶이 떠나간(혹은 쫓겨난) 텅 빈 마을, 부서진 가구들과 버려진 집안 살림들이 사라지지 못한 채 나뒹굴고 있는 을씨년스런 골목, 게다가 덩그러니 남겨진 자개장을 분리하여 차에 싣고 있는 정선생님의 땀에 익은 얼굴까지. 모든 것을 안 보았음에도 보게 되었을 때, 정답은 말 대신에 마음을 불러와 앉힌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된다. 마음에는 잘 보이는 마음과 잘 안 보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홍인숙_옛날식행복 Old time happiness_needlework_100×55cm_2009 홍인숙_희희희 삼단서랍_자작나무_112.5×156.5×60.5cm_2009

무명천에 마음이라는 글씨를 연필로 적어 일상생활자 지영, 엘리, 혜령, 규진에게 보냈다. 똑같이 쓴 각각의 마음이란 글의.씨는 각자의 방식대로 한 땀 한 땀 수가 놓여 진 마음이란 글의.자가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딩동댕! 그렇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동그라미를 정답으로 받아든 나는 신났다. 개인의 시간이란 언제나 바쁘고 개인의 재주가 소비되는 곳엔 언제나 그 만큼의 값이 지불되어야한다. 하여 바로. 이 순간씨는 너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계산해 본다. 그것은 평화였으면 좋겠다. 평범한 생활 목격자들인 그녀들의 지극한 마음이 정답을 획득한 기쁨을 넘어선, 일체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부드러움에 나를 세워 준다. 예술은 부드러운 액체처럼 매끄러워 특정한 형태가 없다고 했는데, 그녀들의 마음 있는 삶이 그것을 깨닫게 해준다. ● 자개장의 미닫이 문짝에는 유리가 껴 있었다. 두 개는 투명했고 두 개는 불투명했다. 거기에 지영, 엘리, 혜령, 규진이가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마음이라는 글자를 넣었더니. 잘 보이는 마음과 잘 안 보이는 마음이 되었다. 틀을 만들어 가구로 세워 보았다. 새롭게 만들어진 가구는 답답했다. 현대화의 편리함에 편승해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것들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 너, 우리가 되는 과정들은 따뜻했기에 만족을 안다. 과거를 알아차리고 배워 지금을 만드는 것. 거기엔 정이란 게 아직 담겨있어 다정하고 따뜻하다. 정선생님은 그것을 발견케 하고 싶으셨나보다. 삶을 이끄는 힘은 어디서 오는지를 의문케 하고 싶으셨나보다. 실제의 삶에 이어지지 않으면 말이란 공허하다. 고했다. 선생님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기에 앞서 이제 나는 인간을 잊게 하는 건 몰까를 의문해본다. 잘 보이는 마음과 잘 보이지 않는 마음. 작업노트. 2009 ■ 홍인숙

홍인숙_나무가 옆에 있으면 그 어떤것도 외롭지 않다 While near a tree, there is no loneliness_ drawing, printing_130×76cm_2009

홍인숙 - 어느 유아론적 개인의 복고풍 행복, 제 2부 ● 작가 단독의 미적 성취와 평가의 가늠자로 쓰이는 개인전 주기만을 놓고 볼 때, 경력 10년차(단체전부터 환산하면 14년차)로 접어든 홍인숙은 근작전 『옛날식 행복』을 통해, 그녀가 구상하고 있는 총 3부작 완결판 가운데에 2부를 끝냈다. 1부는 지난 해 『명랑한 고통』(2008), 2부는 이번 『옛날식 행복』(2009)이며, 마지막 3부는 『보고 싶었던 '한국인의' 얼굴들』로서 이내 착수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이 연작은 주변인과 작가 사이의 관계망에서 파생된 추억과 그 기록을 반복해서 재현한 총합인 듯하다. ● 2000년 경인미술관에서 개최된 첫 전시는 장식적 화면, 간결한 구성, 일상적 주제라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두루마리 형 족자, 허허로운 여백 위로 던져진 인물상의 가늘고 친근한 선묘, 덧붙여 동양화식 서명인 낙관과 화제(畵題)까지 화면에 더해지면서 그녀는 마치 1998년 전후 청년 작가군 사이에서 대유행한 '개량형 동양화 작가'의 일군으로 오독될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 실로 많은 이가 여전히 이 작가를 '동양화과'로 오해하곤 한다. 그나마 그런 혐의에서 건져준 단서는 도록에 적힌 '첫번째 판화전'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홍인숙_사랑 지나서 싸랑 Love beyond love_drawing, printing_108×150cm_2009

이런 저런 사정으로 홍인숙은 데뷔 초부터 근 10년이 지난 근작까지 몇 가지 공통된 열쇳말로 반복적으로 풀이되어 온 것 같다. 그 몇 가지를 열거하면 이렇다. 완고한 장르적 사유로는 접근될 수 없으며(양식에선 동양화를 빼닮았으나, 판화의 반복 기법이 항시 요긴히 도입되고, 독립된 인물상의 묘사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닮았는데, 특히 그림을 해설한 작가의 글이 더해져서 더욱 그러하다. 한편 전시장 밖으로 나온 작품은 다시 도판과 글과 함께 묶여 단행본 삽화집의 외형으로 둔갑해 나타나기도 한다), 한자의 가차 문자를 갖고 노는 말장난의 달인이며(열거하자니 너무 많아 박영숙의 2006년 원고를 참조 바람), 혈연과 지연이 엮어낸 유대로부터 내밀한 추억을 건져 올려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다는 것 등이 있다. 이번 2009년 신작에선 작은 형식 실험이 시도되곤 있지만 상기한 열쇳말이 여전히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전부일까. 나는 종래에 간과되어 온 몇 가지 작업 배경을 검토하려고 한다. ● 전 작품에서 홍인숙은 수공(手工)의 편애를 포기하지 않았다. 편하고 합리적인 공정을 밀어두고 한 땀 한 땀 집약된 수공 노동으로 품질을 완성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때문에 최종 완성본은 주류의 예술품보다 공예적 성격에 가깝게 다가서는 듯도 했다. 그녀가 고집해온 이 녹록치 않은 장인적 태도는 이미 동서고금에서 긴 전통이 있는 바, 비범한 작가 개인의 기량과 한껏 고양된 예술적 독단보다는, 현재적 삶과 예술을 결합시켜 질박하고 친근한 인상을 주는 입장들 중 하나인 것이다.

홍인숙_집 House_drawing, printing_120×150cm_2009

"그것은 친근함의 작품이다. 사랑을 그리워하는 작품이다. [중략] 친근함, 그것이 그 미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술적인 미만이 미일까. 그러한 미가 최종적인 미일까. 현실에 부합함으로써만 미의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 위 두 문장은 각각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조선 예술론을 '친근감'으로 풀이한 문장과, 자신의 초기 민예론(民藝論)을 설파하며 남긴 문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두 문장 모두 홍인숙의 민예성을 해설할 때에도 요긴할 것 같다. 왜 인고하니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상성과 미가 결합될 때만이 진정한 미가 획득된다고 믿었고 실용성, 염가, 평범함을 지닌 하치물건(下手物)을 그런 아름다움이 구현된 좋은 사례로 꼽았기 때문인데, 이 역시 홍인숙의 작업(재료)과 제작 공정에서 관찰되는 성품과 다소 비슷해서다. 그렇다 하여 야냐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이나 그와 비슷한 유럽 미술공예운동을 홍인숙의 전작에 일괄 적용시키자는 건 아니다. 그 둘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교류하는 듯하다. 즉 삶과 합치된 예술 지향이라는 점 말이다. 반면 둘 사이의 격차는 제작을 추동하는 동기에서는 매우 상이하다. 이를테면 홍인숙은 '산업화에 대한 위기나, 정신과 신체의 해방, 그리고 수준 높은 최종산물의 도출'(이상 아르누보 운동)과도 번지수가 다르며, '비개성적이고 익명화된 무명잡기의 아름다움 추구'(이상 야나기의 민예론)와도 사뭇 다른 길을 간다. 그녀의 제작 동력은 전적으로 가족적 유대와 내밀한 유아론적 추억으로부터 도출되는 바, 그 중에서 유독 모녀 사이의 유대감이 돋보인다. 어딘지 비애감이 감도는 친모의 이미지를 살피자. 홍인숙의 친모는 한쪽만 부러진 사슴뿔을 머리에 달고 나타나기 일쑤다. 사슴뿔 어미 도상은 2000년 첫 개인전부터 2009년 신작에 이르기까지 마치 정신적 그늘처럼 따라다닌다. 2004년 세상을 등진 친부에 대한 장녀의 애착 역시, 그녀 어머니의 망부의 한과 결합될 때 훨씬 완벽한 비애감을 만든다. 작업 속에 숱하게 등장해 눈물 머금은 '동화적 소녀' 도상도 손쉽게 해석하면 그저 홍인숙의 분신으로 해석하면 그만일 테지만, 작가 모친의 처녀 시절일 수도 있는 법이다. 모녀 사이의 일체화된 정서는, 사별한 남편을 그리며 적어내린 제 어미의 가계부를 가계부(家計父)라 어깃장을 부리는 딸의 글에서 진하게 배어있다. 때문에 나는 홍인숙의 민예성을, 동시대적으로 변형된 규방(閨房) 민예라 칭할까 한다. 그녀의 규방 민예적 특질은 모녀 사이의 각별한 유대감이 작업의 동력으로 작용한 점에서 자명하며, 소재를 자신의 주거 공간의 울타리 안팎에서 찾는 작업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홍인숙_지화자씨,얼씨구씨, 조쿠나씨 Jee Wha-ja, Ul-see-goo, Jo-koo-na_drawing, printing_2009

2009년 신작에는 종래와 달라진 점이 몇몇 눈에 들어온다. 문갑과 서랍장처럼 기능적 도구를 출품작으로 끌어와 공예품의 기품을 훨씬 밀고 나간 점이 일단 그러하다. 또 작업 착상에 도움을 준 지인들을 이참에 숫제 생산자의 영역으로까지 유인해오기도 한다. 「잘 보이는 마음과 잘 보이지 않는 마음」(2009)은 작품 자체가 이미 전시장을 벗어나면 일용할 가구로 탈바꿈 할 채비를 갖췄다. 또 지인 네 명에게 의뢰해서 취득한 자수 네 점을 그대로 기성품 문갑 안에 끼워 출품했다. 지인들이 자수를 놓은 글자는 '마음'인데, 이미 백색 천에 백색실로 자수를 놓은 탓에 식별 자체가 매우 어렵다. 더욱이 그 중 두 점은 문갑의 반투명 유리창에 배치되어 식별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작업 독해를 방해하는 '우연적 모호성'은 작가와 지인 사이의 사적 관계망 속에 제 3자인 관객이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우연한 훼방 장치'같기도 하다. ● 홍인숙 작업 연보를 통해 확인되는 것 중 하나는 반복과 차이인데, 「지화자씨, 얼씨구씨, 조쿠나씨」(2009)는 비록 신작이지만, 그 원형은 이미 10년 전 「귀가도」(1999)에서 발견되며, 더 멀리 가면 그 그림의 원화는 그녀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 그린 조각그림인 것이다(우연히 유년 시절 그림을 작가가 발견했다고!). 따라서 1980년대 초반 큰 야심 없이 그린 그림은 그녀의 유년의 원형으로써 지금까지 여러 이미지 위를 떠돌며 맹약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전 작품에는 이처럼 유사한 도상이 자주 출몰하는 편인데, 그것은 한 개인의 추억으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직조되는 구조로부터 기인한다.

홍인숙_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동그라미 The safest circle in the world_drawing, printing_98×128cm_2009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라는 각기 다른 시기 속에 동일한 도상을 서로 빌리고 빌려주면서 일 개인의 추억을 강화시켜 나간다. 그런데 홍인숙의 아동 삽화풍 인물화의 반복은 그녀의 자기 유희로 끝나는 것 같진 않다. 동 세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라면 흡인력 강한 향수(鄕愁)의 장치로 느낄 것이다. 마분지에 조악한 인쇄를 올린 종이 인형을 문방구에서 구입하며 유년을 보낸 중년에게 이 남녀 삼인조 인형의 의미는 각별할 수 있다. 「나무가 옆에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외롭지 않다」(2009)와 가장 가까운 원형은 아마 2008년 무렵 쏟아낸 「명랑한 고통」 연작에 등장하는 둥글넓적한 소녀의 안면 도상일 것이다. 이미 인물의 이목구비가 현실성을 저버린 이 유년의 캐릭터는 좌우로 각 세 개의 눈동자를 번득이고 있다. 또 양쪽 뺨으로 두세 가닥의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으며 고진감래의 순간을 과잉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과도한 비애감은 그간 작업 연보를 통해 보여준 '우는 소녀'의 결정판인 듯하다. 그렇지만 앞의 것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과잉된 눈물과 소녀 얼굴이 머금은 희미한 미소가 상충한다는 점일 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조화가 결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그것은 마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1964)의 반어법과 유사한 이치를 따르는 듯도 하다) ● * 추신: 학교(유학)를 알아보러 뉴욕에 발을 딛는 순간 '그곳의 기운이 자신과 다름'을 느꼈다고 작가를 회상했다. 디카의 시대지만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고집한다고도 했다. 상대방을 충분히 알기 전에는 그의 얼굴을 그릴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모를 그린 그림 속에 계속 한쪽 뿔이 부러져있는데, 그게 '남편의 부재'를 뜻하는 거냐는 내 질문에는, "그건 아니고, 그게 바로 인생인 거 같다."는 다소 선문답 같은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 모두를 종합하건데 홍인숙의 복고풍 행복도 차제에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 같다. ■ 반이정

Vol.20091117g | 홍인숙展 / HONGINSOOK / 洪仁淑 / painting.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