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다 준 그림

최영展 / CHOIYEONG / 崔永 / painting   2009_1121 ▶︎ 2009_1201 / 일,공휴일 휴관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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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구올담 갤러리 KOOALLDAM GALLERY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185-1번지 Tel. +82.32.528.6030 www.kooalldam.com

영화 『매트릭스』의 제작 모티브인 『공각기동대』에서는 모든 국가 간의 경계가 없어질 정도로 정보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자신을 네트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로 규정지은 "인형사"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어렴풋 그 정보 집합체가 인조인간의 몸을 빌려 인간 세상에 망명을 요청 한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정보의 집합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자각 하는 과정에 공감했었다.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117×240cm_2009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70×164cm_2009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117×200cm_2009

언제부턴가 대상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작업태도에 공허함을 느꼈다. 작업실에서 그림들을 펼쳐놓고 낯설다고 느낀 적 이 있었는데 아마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뭘 그릴까 고민 중 노트북 앞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 작업에 관련된 자료를 찾고 있었는데, 저장매체에 모아놓은 꽤 많은 용량의 이미지를 집합해보니 내 기억의 일부가 녹아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한 것을 전기적 신호로 기록하여 순간의 기억을 물질의 행태로 바꾸어 놓은 노트북이 만약 나의 개인적 취향도 보존되는 장소라면 모니터 화면은 그것을 간접으로 보여주는 표면(창문)이라 하겠다.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52×89cm_2009

알베르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 주고, 이미 몇 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일지라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회화의 능력을 '창문'에 비유했다. 여기 없는, 그래서 볼 수 없는 대상을 여기에 다시 불러와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 명칭이 '윈도우'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창문을 통해 벽으로 차단된 저쪽 세계의 일부를 바라보는 것과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동일한 시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100×50cm_2009

나의 작업 소재가 되는 자료들은 내가 직접 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먼 곳에 있는 것을 내 눈앞에 생생하게 존재하게 만든 즉, 개인적 취향이 '불러다 준 이미지'들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라 함은 성적 욕망에 국한 되지 않은 그리기로써의 누드가 될 수 있으며,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현실과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표현하고 싶었다. 화면은 현실세계의 단편적인 모습과 모니터 안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니터를 중심으로 뒤쪽의 어둠 속에서 언뜻 보이는 쌓여 있거나 책장에 꽂힌 책의 현실적인 대상들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개인적 취향이 '불러다 준 이미지'를 그렸다. 모니터의 프레임은 현실과 이미지를 구분하는 경계의 역할을 하며, 일종의 창틀이 된다.

최영_불러다 준 그림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09

나는 저장 이미지 중 개인적인 취향을 (프로이드, 부게로의 누드화,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등 익히 알고 있는 명작들의 일부분이나 노골적인 성애 이미지들) 그려냄으로써 미적 물질로 재창조하려 했다. ■ 최영

Vol.20091121b | 최영展 / CHOIYEONG / 崔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