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 나라로 간다

리씨갤러리 이전 기념展   2009_1204 ▶︎ 2010_0109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_2009_1204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_서용선_오원배_황주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리씨갤러리_LEE C 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8번지 Tel. +82.2.3210.0467~8 www.leecgallery.com

『우리는 달 나라로 간다』 展은 서용선 오원배 황주리의 공통된 주제를 가진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세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 개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사람을 그리든, 꽃을 그리든, 풍경을 그리든, 인간에 관한 끊임없는 성찰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인왕산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팔판동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리씨갤러리는 갤러리 이전을 기념하여 세 작가들의 연륜이 녹아있는 특별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 안녕하십니까? 리씨 갤러리 이영희 입니다. 초겨울 팔판동 새 보금자리에서 보는 경복궁 돌담길이 고즈넉합니다. 화랑을 운영하며 많은 분들을 만나 뵈어, 즐거웠던 순간들과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교차하며, 지난 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분들께서 보내주신 격려와 지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소 존경하고 그 작품 세계에 공감했던 서용선, 오원배, 황주리 선생님 세 분을 모시고 이전 개관 전을 마련하게 되어 기쁘고 든든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이제 위 세 작가 분과의 인연을 돌이켜봅니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한 점, 두 점 콜렉션 하던 시절에 그 분들의 작품을 처음 보았습니다. 오원배 선생님의 작품은 우연히 누군가의 소개로 80년대 중반 그분의 파리 유학 시절에 처음 보았으며, 그 거침없는 표현과 깊이에 압도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당시 가장 주목 받는 청년작가들의 기획전에서 서용선 선생님과 황주리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만났습니다. 황주리 선생님의 작품은 스케일이 크고 강렬하게 전시장 들어가는 현관에 걸려있었고, 서용선 선생님 작품 역시 개성이 강한 작품세계와 그 무게 감 때문에, 따로 별관을 만들어 전시 중이었습니다. 그 때, 이십 대였던 그분들이 오십이 넘어 한 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유난히 개성이 강했던 이 세 분의 공통점은 그 어느 것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 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 시대의 거장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기 표현 방식이 다르면서도 인간에 관한 끊임없는 성찰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이 세분 작가들의 작품이 백 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 하며, 세 분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됨을 다시 한 번 뜻 깊게 생각합니다. ●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평소에 느껴온 화랑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자 다짐해 봅니다. 세 분의 작품을 감상하며 따뜻하고 포근한 마무리 하시길 바라며, 많은 애정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영희

서용선_해운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91cm_2009

2006 겨울, 오랜만에 학교생활에서의 자유를 얻어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돌아온 후, 평소 한국의 해안지방을 여행하고자 했던 희망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부산의 「해운대」, 「태종대」를 그린 바닷가 풍경은 그 결과로 그려진 것이다. ● 겸재 정선의 총석정 바닷가 풍경은 그야말로 통쾌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도시에서의 꽉 막힌 공간에 대한 습관적 억눌림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그도 조선의 갑갑한 관리생활에서의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해운대 등대에서 바라다본 풍경이 그러했다. 독도를 보았던 순간의 느낌과도 비슷한, 자연의 막막함은 오스트레일리아 윌슨스 플럼공원의 원시적 풍경과는 다르지만, 끝없는 공간에 대한 막막함은 어슷비슷하다. 레바논 어느 초월주의 시인의 고향에서 보았던 하늘 가득한 총총한 별빛에서 인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들과는 아마도 반대지점에서 만나야 할 경험들이다.

서용선_태종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91cm_2009

그러고 보니 프랑스해변가에서 그렸을, 모네의 총천연색 바다 풍경도 그 색의 찬란함을 제외한다면 파도 일렁거려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을 제외하면, 그 자연의 깊이에 대한 경험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자연풍경은 내 생명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운명은 개척되어야 하지만 죽음 이후에 운명을 어떻게 개척하겠는가? 재직했던 대학의 동료교수의 아버님이 실기실을 돌아 본 후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왜 학생들 그림에서 풍경화 그림들은 보이지 않는 거유? 그리고 가까운 어느 미학자가 그랬다. 시골에 묻혀 숙박업을 하면서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이제 내가 풍경화를 그린다고 해서 내가 나를 탓할 수 있겠는가, ● 돈황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끝없는 사막의 산들과 서왕모 하늘에서 내려 앉을 듯한 중국 협서성의 산맥들에서 북방미술의 매력을 이해할 수 있었듯이, 산수 풍경화는 사람이라는 존재 때문에 보여 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환경이고 머릿속에 형상이 기억되는 한 어떻게든 그려지는 대상이다. ■ 서용선

오원배_무제_책표지에 혼합재료_53.5×40cm_2009

이번 전시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그가 오래 전부터 그려온 인물 군상이 빠져버리고 그 자리에 꽃과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꽃과 건축물은 이전에는 전면과 배경에 등장하던 보조적 모티브였지만 이제는 각각 독립적인 화면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마치 하나의 정물화와 풍경화로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그리고 꽃의 정물과 도시의 풍경은 쌍을 이루며 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한 쪽에 밝은 꽃의 주제를, 다른 한쪽에 무거운 주제를 대면시키는 이 같은 작업은 이미 2003년 금호미술관 전시부터 나오던 형식이며, 그의 기록에 따르면 2001년부터 실제 작업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에는 폐기된 고서적의 표지면 위에 소품으로 그려지던 것과 달리 이제는 본격적인 작업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 2007년 아트사이드 전시에서 나는 그의 거대한 화면 속에서 르네상스 벽화의 현대적 환생을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실제로 프레스코 기법까지 더해져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초기 근대 회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큰 어려움 없었다.

오원배_무제_판넬 혼합재료_40.5×33.5cm_2009

두 개의 화면을 배치시킨 그의 최신 작업도 형식 면에서 대단히 역사적이다. 이 번 예는 프레스코 벽화보다 더 오래된 중세의 '두 폭 제대화 ' 또는 '이단 제대화(이단 제대화, diptych) '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인 들이 구원의 열망을 담은 신앙의 이미지를 양 쪽으로 펼쳐 놓았다면, 오원배는 현대인의 구원의 열망을 기록하기 위해 두 폭 제대화로 눈을 돌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인의 기도처럼 그의 화면은 차분한 내면적 성찰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두 그림을 수평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그의 회화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지만 결국 결합하여 하나의 입체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스테레오스코프(立體鏡)처럼 보여지지 않는 우리 삶의 무게를 생생한 입체로 드러내기 위한 신기한 도구처럼 보인다. ● 꽃은 그간 오원배에게 희망의 상징이었고, 건축물은 오원배에게 삶을 억압하는 기호였다. 이제 그 둘이 나란히 접합되면서 존재와 실의, 문명과 불안, 그리고 비극적 아름다움 같은 제 3, 제 4의 의미를 연쇄적으로 생성해낸다. 결국 둘은 하나가 되면서 우리들의 갈등하는 내면세계의 이중적 구조를 합치시킨다. 그가 이번 전시의 제목을 '이중 풍경'이라고 정한 이유가 존재에 대한 이중구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그의 시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오원배展 서문 中에서, 리씨갤러리, 2008) ■ 양정무

황주리_식물학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60.5cm_2009

꽃에 관한 명상 ● 내 기억 속의 최초의 꽃의 이미지는 어릴 적 한옥 마루에 놓여있던 하얀 백합의 이미지다. 아니 뒷마당에 아무렇게나 피어있어 외로운 날 꽃술을 따서 빨아먹으면 단맛이 나던 사루비아 꽃이다. 아니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이던 봉숭아 꽃이다. 아니 화병 가득히 꽂혀있는 내가 날 때부터 벽에 걸려있던 그림 속의 장미꽃이다. 아니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찍혀있던 포인세티아 꽃이다. 아니 고흐의 그림 속의 노란 해바라기다. ●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처음 본 건 일본어로 된 화집에서였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꽃은 실제 해바라기가 아닌 그림 속의 해바라기다. 왜 나는 실제 꽃보다 그림 속의 꽃을 오래 기억하는 걸까? 그림 속의 꽃은 시들거나 죽지 않기 때문일까? ● 아버지의 기일 때 마다 나는 조화를 한 묶음 산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 십 여 년 전만해도 우리는 무덤에 생화를 꽂아놓았다. 며칠만 지나면 무덤가를 어지럽히는 시든 꽃들은 멀리서 보아도 보기 싫었다. 요즘은 조화를 하도 잘 만들어서 생화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는 조화들도 많다. 색깔이 한없이 고운 조화들이 무덤마다 가득가득 꽂혀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월 따라 변해가는 세상을 느낀다. 무덤에서는 이제 조화가 훨씬 인기가 좋은 것이다.

황주리_식물학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_100×80cm_2009

내 그림 속에 꽃이 처음 등장하는 건 1990년대 중반인 것 같다. 나의 무의식과 잠재의식 속에 오래 동안 살고 있던 꽃의 이미지가 실제 그림 속에 등장했을 때, 내 그림 속의 꽃은 꽃의 모습을 한 우리들 마음의 방이었다. 그 꽃 중에서도 해바라기가 등장하는 건 최근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꽃,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꽃, 병문안을 갈 때 들고 가는 꽃, 우울한 날에 꽃 시장에 가서 한 묶음 사서 화병에 꽃아 놓는 꽃, 시들지도 죽지도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만든 꽃, 꽃은 아무래도 사랑과 생명의 상징일거다. 그런데 나는 전시를 할 때 마다 지인들이 선물하는 그 고마운 꽃들이 늘 시큰둥한 생각이 들었다. 꽃보다는 책 한 권이 군고구마 한 봉지가 더 좋았다. 금방 시들고 말 꽃이나 번거롭게 들고 가서 가꾸어야 하는 화분보다는 정말 아주 정교하게 만든 조화가 더 좋을 것 같다. 내 그림 속의 꽃은 그러니까 시들지 않는 조화의 이미지인지도 모르겠다. 백송이 장미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요즘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선물이라는 백송이 장미는 우리 시절만 해도 누구나 받아보고 싶은 환상의 선물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엉뚱한 사람에게서 백송이 장미를 받은 기억이 있다. 백송이의 장미와 꽃을 준 사람의 기억이 다 따로따로 남의 일 같이 잊혀졌다. ● 아무래도 나는 장미 체질이 아니다. 노란 해바라기가 넘실대는 가을날의 해바라기 밭에서 뒹굴고 싶은 해바라기 체질이다. 그런데 영화나 그림 속이 아닌 현실에서 해바라기를 사서 꽂아놓았던 기억은 없다. 아무래도 내게 꽃은 삭막한 현실에다 풀이나 강력 접착제로 정성껏 붙이고 싶은 꿈속의 벽지 같은 모양이다. 그 꿈속의 벽지가 바로 내가 그린 꽃 그림 이기도 하다. 어느 날 꿈속에서 달나라에 갔다. 달 표면에 내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으로 도배를 했다. 외롭지만 행복했다. ■ 황주리

Vol.20091202f | 우리는 달 나라로 간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