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웅展 / MOONJIUNG / 文志雄 / painting   2009_1202 ▶︎ 2009_1208

문지웅_무제 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_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아트 2, 3층 Tel. +82.2.725.0040

"머리에 대함과 그 외 몇몇 단상들" ● ... 마흔을 넘어 가면서 세상 보는 게 달라졌다. 어찌하다 이일 저일 다 겪고 보고 나니, 선악의 기준도 모호해 지고 이것 때문에 살아가야겠다는 어떤 당위성도 확신이 서지를 않는다. 차라리 산다는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더 솔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 - 참 끔찍할 수도 있는데 난 오히려 편하다 ... 머리를 주로 그린다. 그것도 남자의 머리를 그린다. 이지러지고 변형되고 거칠고 조악하고, 어찌 보면 부조화스럽고 억지스러운 그런 머리를,, 굳이 얼굴이라 칭하지 않고 머리라 칭한 것은 동병상련 이랄까? 주위의 내 지인들에게서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꿈도 희망도 변해버린, 삶 자체가 무게 아닌 욕망이 되어버린, 또한 동정하지도 않고 동정 받지도 않는, 그래서 차라리 솔직하고 편해져 버린 그런 머리들.. 얼굴이란 단어에는 인간적 면모가 얼핏 하지만 머리란 단어에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간극의 느낌이 더 강해진다. 편견일까? 삶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욕망의 집적이 되 버린 머리들에게는 공통적인 모티브가 보여 진다. 바로 힘에 대한 갈망이다.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말한 힘의 간극이나 미끄러짐에 더해서 힘 자체의 응축, 배설 없이 꽉 들어 찬 내장 내 응어리, 뫼비우스의 띠같이 무한 순환하는 그런 힘. 그리고 폭발 직전까지 가는,, 그러나 폭발은 일어나지 못한다.

문지웅_무제 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9
문지웅_무제 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9
문지웅_study of man's head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09
문지웅_study of man's head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09
문지웅_study of man's head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09
문지웅_십자가 형벌 Crucifixion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09

폭발이 일어나지 못한 머리에 존재하는 것은 침묵과 감각적 폭력이다. 이것을 모순적으로 소유하는 힘에 대한 갈망 - 이것이 내가 느끼는 남자의 머리다. ...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스타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혹자는 베이컨이나 프로이드를 닮았다고 비아냥거리지만 난 개의치 않는다. 형식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며, 나는 단지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박학한 머리와 유창한 달변으로 무장된 어떤 이들은 시대를 얘기하고 민족, 역사, 계급, 우리 것 들을 이야기 하며 때론 강요한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어쩐지 내 마음은 움직이질 않는다. 그런 것 에는 전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줍잖은 프로파간다는 오히려 독이다. ... 날 것, 그 자체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 글이나 그림이나 세련 될수록 포장되어지고 , 지적일수록 더 공허해 진다. ... 못 그려야 한다. 쳐내고 쳐내서 갸우뚱해 질 때까지 못 그려야 한다. 텅 비어야 충만 해 진다는 그 논리. 얼마나 신선 한가? 이게 제일 어렵다. ... 한 가지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 문지웅

Vol.20091204b | 문지웅展 / MOONJIUNG / 文志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