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로展 / YOUNMYEUNGRO / 尹明老 / painting   2009_1203 ▶︎ 2009_1220 / 월요일 휴관

윤명로_Tableau-Windy day MIX 515_리넨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131×194cm_2009

초대일시_2009_120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나아트 부산 GANA ART BUSAN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405-16번지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 4층 Tel. +82.51.744.2020 www.ganaart.com

자연의 음악: 윤명로의 예술 ● 로제 뮈니에는 영화에서는 "실제로 나뭇잎이 떨린다"고 말한다. 비록 재현된 것에 불과하지만, 나뭇잎이 사실상 떨리는 것처럼 표현된다는 뜻이다. 영화의 이미지는 이제 공통된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그런데 움직임과 관련된 의미를 영화에서만 찾아보아야만 할까? 회화에서 사물의 형상을 나타내는 이미지는 그 사물이 의미하는 바와 동일하다. 그림도 또한 재현된 세계에 대한 자동 언어이다. 그런데 구상화가 아닐 경우 다시 말해서 그림 속에 재현된 세계를 형상적 단위로 나누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 그림 자체가 떨린다. ● 윤명로의 작품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떨림이 단순히 개념만은 아니며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떨림'은 지적인 자극을 주기 위한 개념은 아니다. 여기서 떨림이란 경험에 덧붙여진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느낄 수 있는 현상이다. 나는 어느 늦은 오후 윤명로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의 작업을 직접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점을 감상 할 수 있었다.

윤명로_windy day IX-728_리넨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58.5×58cm_2009
윤명로_windy day IX-920_리넨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73×91cm_2009

칸트는 자신의 미학에서 사물의 경우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복제품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작업실에서, 그리고 그림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상과 만나는 동시에 이 대상과 다른 사물과의 관계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적합한 개념을 찾는다면 윤명로의 작품에서는 떨림이 바로 차용된 개념이 된다. 그렇다면 윤명로의 그림은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떨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 실제로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얻은 지식에 따르지 않고서는 이런 떨림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첫인상의 감흥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정해진다. 그러나 미리 포기하지는 말자. 이제 나는 '겸재예찬' 이라는 작품이 한국의 산을 그린 조선시대의 한 화가를 근간으로 삼은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윤명로의 추상회화는 처음 본 느낌만으로도 이미 인상파의 그림에서처럼 흐릿하면서도 전통적인 기법에 의해서 굽이굽이 표현된 기암괴석이 있는 산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윤명로_windy day MIX-810_리넨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162×130cm_2009

그러나 그의 그림에는 산 을 비롯한 구체적이면서도 분명한 형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가 소재로 삼은 대상은 사실적인 형태로부터 파도의 물거품이나 불꽃의 움직임처럼 자연에만 존재하는 순수한 가변적 형상을 본질적인 형태로 보고 그 상태 그대로 판단 중지시킨 채 환원된 흔적만이 남아있다. 자연에 내재하는 고유한 힘이 아니라면 윤명로의 회화적 형상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그의 그림은 산이나 바다 등과 같은 식별 가능한 형상을 가진 '자연 '을 그린 작품이라는 설명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 형태가 사라진 그의 그림은 분명 추상회화다. 그가 그리는 추상은 전혀 작위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으며 자연의 형상을 그려 내는 것이 무엇인지, 곧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의 자연을 구성하는 형상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자연을 형상 없이 표현하는 것이 이 화가의 기법이라면 그의 작품은 그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사용한 안료보다도 덜 인위적이다. 어떻게 언어로 이러한 현상을 절제하면서 표현할 수 있을까?

윤명로_windy day IX-1009_리넨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90×130.5cm_2009

그의 그림은 떨린다. 그림에 다가 갈수록 우리의 사유를 그림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림의 내적인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더 이상 어떠한 형상도 시선을 붙들지 않는 가운데 자연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산의 흔적이 화폭의 여백 위에 떠돌고, 실제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끝없이 광활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연한 형상은 자유로운 춤사위처럼 주어진 공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화폭의 한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것 같기도 하다. 형상의 유희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 처진 거미줄이나 철망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층층이 물결처럼 시선을 끌기도 한다. 화폭의 중앙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자리로 시선을 끌어 당기기도 한다. 또한 현기증이 날 만큼 공간이 팽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낙서처럼 보이도록 마구 붓을 움직여 줄이 쳐진 화폭은 완전이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손길 가는 대로 그려진, 무한한 잠재력을 갖는 화폭 속에서 떨림은 증가한다.

윤명로_windy day IX-1102_리넨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67×90cm_2009
윤명로_windy day IX-730_면에 메탈릭채색, 아크릴채색_50×182cm_2009

그림의 내면은 또 다른 떨림과 연결되어 있다. 정적이면서도 사라지는 듯한 형상이 나타나는 것은 숙련된 안료의 사용 때문이다. 정과 동의 이원성은 엄격한 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붓의 터치로 철분과 같은 화학적으로 처리된 금속재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재료를 정착시킴과 동시에 붓의 터치는 멀리 산이 보이는 듯한 형상의 회오리 속으로 사라진다. ● 에티엔느 수리오는 형상을 재현하는 예술의 존재론과 형상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예술의 존재론을 구분한다. 전자는 회화이며 후자는 음악이다. 현대 회화는 양자간의 경계를 뛰어 넘는다. 이처럼 윤명로의 예술은 비록 소리는 없지만 강한 음악성을 내포하면서 동시에 회화에서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이러한 침묵의 힘은 온전히 그림에 자연의 리듬을 불러일으키면서 음악적인 신비와 만난다. ■ 도미니크 샤또 DOMINIQUE CHATEAU

Vol.20091204e | 윤명로展 / YOUNMYEUNGRO / 尹明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