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ssage of self-portrait

다발킴展 / DABALKIM / drawing.mixed media   2009_1204 ▶ 2009_1230 / 월요일 휴관

다발킴_개인 소장품 A Private Collection-7점의 작품 진열_100×150×4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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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04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샘터갤러리_SAMTOH GALLERY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82.2.3675.3737 www.isamtoh.com

자화상 The Passage of Self-Portrait -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 ● 21세기 들어 꾸준한 관심을 불러 모은 화두가운데 하나인 '논리적 현대성'이란 개념 하나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글을 시작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로 보인다. 현대성과 가장 관계가 있는 감각기관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다른 감각 기관보다도 시각 기관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현대를 주도해온 과학적 합리성의 약진은 시각의 발달과 맞물려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합리성에 근거를 둔 과학적 메카니즘은 학문적 사유논리의 기준이 되는 분류와 명명, 차이와 증명 등이 시각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짐을 증명해 주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진실이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성'이란 과학적 범주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토록 진실처럼 여겨져 왔던 이성적 계몽주의 철학조차도 현대적 사유논리와 결별을 고하지 않았던가. ● 우리는 여전히 논리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른바 문화라는 이름으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꿈, 전설, 몽상 같은 것들을 우리의 정신에서 추방해 버렸다. 그토록 갈망하던 초현실주의자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은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으로 재조명 되었지만, 우리 현대인들의 정신적 갈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발킴_통로_말 골격에 잉크펜_45×22×12cm_2009

다발 킴은 우리에게 다소 익숙하게 인식되고 있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적 사유체계에 근접해 있는 작가이다.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랬듯이 다발 킴도 다분히 자의적인 인식 체계 안에서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에서 모티프를 발견해 내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그림일기의 형식내지는 의식의 단편들을 상징적 메타포로 재현해 내는가 하면, 그것들을 재조합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결국 작가는 의식의 파편들과 일상의 파편들을 수집하거나 채집하는 일련의 행위들 위에 추억, 기억, 향수 등의 옷을 입힘으로서 작품을 완성해 가고 있다. 다소 꼴라쥬 형식을 차용한 듯한 드로잉에서는 살과 고깃덩어리가 연상되는 인체 내부에 다양한 사물들을 사실적으로 질서 있게 배치시키고 있다. 엄격한 논리와 적어도 자기의 의혹에 상당하는 정신적 긴장을 가지고 작품을 대하지 않는다면 영혼의 침잠을 막을 수 없으리라던 말도로드의 노래처럼 다발 킴의 작품에서도 시각적 긴장감이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실 모든 상징적, 은유적 비약에 있어서 위험한 것은 '사실주의'이다. 사실주의적 태도는 의식의 부재나 논리의 부정확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애매함의 극치로 치달을 수 있는 개연성을 종종 제공하기도 한다.

다발킴_Black Passage_종이에 잉크펜_35×50cm_2009
다발킴_통로Ⅲ_말 골격에 잉크펜_45×22×12cm_2009
다발킴_통로Ⅱ_산양 골격에 잉크펜, Antique Map(100 years old)에 잉크펜_45×22×12cm, 20×135cm_2009

그녀가 보여주는 형식적 완결성은 사실주의적 초현실주의자들이 범하기 쉬운 위험성을 다소 해결 한 듯하다. 다분히 일러스트적인 모습을 한 드로잉에서는 중세시대의 스타일을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작가에게 중세란 현대와 과거를 이어주는 의식적 중재자로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익명적 기억에서 출발한 메모리 칩을 꺼내 재생하는 과정에서 발견 된 의외의 수확인 것이다. 다발 킴은 기억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의식의 결과물들을 노획물(중세 스타일)에 철저하게 가둠으로서 오히려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경험한 기억을 재현하는 과정을 통하여 심리의 순화작용을 체험하고 있으며, 무의식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자연히 중세와 현대의 간극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자화상, Self-Portrait 2009」 이란 작품에서는 한손에는 거위의 목을 쥐고 있으며, 또 한손에는 붓을 들고 있는 중세의 기사를 그리고 있다. 가슴에는 동물 도륙용 칼이 세 개나 묘사되어 있으며 몸 전체는 마치 정육점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고깃덩어리와 생선으로 무장한 익명의 인물을 묘사해 놓고 있다. 마치 전쟁터에서 빼앗은 전리품으로 자랑스럽게 치장한 듯한 모습은 거침없이 라 만차 벌판을 명마 로시난테와 함께 질주하던 돈키호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디발 킴은 분명 몽상적 상상력을 소설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네러티브적 메카니즘의 서사성 구조로 풀어가고 있는 듯하다. 「자화상」을 보면 정체불명의 인물은 해부학적 기록을 상세하게 해놓은 두꺼운 책을 몸에 지니고 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풍경인데,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하여 그의 몸에 걸치고 있는 고깃덩어리들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비대해져 가고 거대해지는 현대인들의 육체를 다소 풍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풀어냄으로서, 육체의 상업성내지는 끊임없이 비축에만 집착하는 인간들의 소유 욕구를 조소하고 있다. 또한 작가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연루된 심리적 압박감의 표현으로도 보여 진다.

다발킴_꿈의 연작 The Sequence of The Dream_종이에 잉크펜_76×57cm_2009
다발킴_8월의 캐비닛 August Cabinet_Antique Map(100 years old)에 잉크펜_60×50cm_2009

다발 킴의 작업은 분명 모더니즘의 양식위에 있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역사성의 범주에서 머물고 있다. 전통적 스타일에 기인한 논리 해결 방법은 그녀가 그리려고 하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화면으로 이동시키는데 매우 유효한 수단으로 보인다. 또한 작가는 많은 시간을 여행이나 야외 작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녀가 사막 등의 오지에서 보낸 많은 시간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사실도 나에겐 흥미로운 일이다. 다발 킴에게 일상이란 모든 예술 활동의 동력이자 에너지이며 전부이다. 일상의 이야기 거리를 일기를 쓰듯이 하나하나 기록해 가는 그녀의 기록예술은 방대하며, 다양한 카테고리를 담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주목하게 만든다. 다발 킴이 몽상적 현실주의자임을 나타내는 증거들을 찾는 데에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녀의 그림들에는 진솔한 그만의 이야기와 바램들이 동시에 나타난다. 분명 충격적인 화면으로 시각적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잠깐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따뜻한 이야기 구조를 발견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 우리는 수집가이면서 채집가, 몽상가등을 겸하고 있는 다발 킴의 다음 행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난제였던 일상과 예술의 모순적 알레고리를 풀 수 있는 해법을 그녀는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종호

Vol.20091204f | 다발킴展 / DABALKIM / drawing.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