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香)을 입다 dressed in scent

정준미展 / JEONGJUNMI / 鄭濬美 / painting   2009_1209 ▶︎ 2009_1215

정준미_작품-향(香)3-1(SCENT3-1)_천에 수묵_174×96cm_2009

초대일시_2009_1209_수요일_05:00pm

오프닝 공연_명창 박정욱 선생의 서도소리와 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옷/천에서 생성하는 자연 ● 정준미에게 옷은 화면이자 프레임이다. 천으로 이루어진 이 회화/조각은 그림과 사물의 영역 모두에 자리한다. 작가는 직접 옷을 재단하고 만들었다. 아니 구체적인 옷이라고 보기에는 실용적 차원에서 조금 멀어져보인다. 그 옷은 시각적인 옷이다. 그러니까 옷이라는 형태에 기생해나간, 옷처럼 보이는 천의 결합이다. 원피스나 치마 한복 등 여성의 옷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지닌 천이 마치 사람처럼 자리했다. 옷의 의인화인 셈이다. 옷/천은 옷의 모양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옷이란 그 옷을 입은 누군가의 정체성, 기호와 취향, 욕망등을 대변하는 또 다른 육체다. 그런 의미에서 옷은 제 2의 피부다. 살이다. 부드럽고 연하고 따스한 살 위에 얹혀진 또 다른 살인 옷/천은 살을 대신하고 피부를 모방하며 몸을 흉내낸다. 그러니까 작가는 옷을 연상시키는 천의 유희와 박음질, 재봉등으로 또 다른 인간존재를 은유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천들이 발화한다. 음성을 지닌 옷들은 이제 부재한 사람의 육체와 머리를 대신해 살아있는 몸의 활력을 대신한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한순간의 동작과 마음의 자락이 한순간 설핏 지나간다. 중력의 법칙에서 비교적 멀어진 천들은 흘러내리고 구부러지고 유연하게 드리워져있다. 그것은 고정되고 응결된 상태가 아니고 가변적이고 타인의 손길에 의해 얼마든지 허물어질 자세가 되어있다. 촉각성을 유혹하는, 묘한 긴장이 감도는 화면이 된 것이다. 천들은 마네킹에 입혀져 있거나 벽에 걸려있는가하면 사각형의 천조각으로 분리되어 자립한다. 다양한 천들을 배열하고 연결시켜 이룬 옷은 천들의 콜라주이자 평면적인 천, 가변적인 상태로 설치화되거나 혹은 쿠션으로 자리하고있다. 천들이 옷이란 특정한 형태를 만들고 그에 종속되기 보다는 옷같으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자유롭게 빠져나와 천의 물성과 주름을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옷에서 풀여나온 천들이 옷/화면 사이에서 유희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천의 조각들이 민화의 이미지로 추출되어 벽에 걸려진다. 그것은 천으로 이루어진 조각, 부조의 세계다. 흰 벽을 바탕삼아 천으로 그려진 그림인 셈이다.

정준미_043910-향3-2_천에 수묵_180×74cm_2009
정준미_043923-향3-5_천에 수묵_200×205cm_2009
정준미_043931-향3-6_천에 수묵_150×129cm_2009

작가는 그 천위에 붓질을 했다. 그 붓질은 분명 화조화나 민화 혹은 잠자리나 연꽃의 형상을 연상시켜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저 천위로 지나간 붓의 궤적이나 흔적들이기도 한듯하다. 아니 그 모든 것이 섞여있다. 단순한 붓질/선이면서 동시에 어떤 형상을 암시한다. 마치 치마폭에 사군자를 치듯이 유희적인 붓놀림이 천위로 활달하게 약동하는 이 붓놀이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천이란 허공, 공간에 자신의 현재의 어떤 순간을 무심히 내려놓는 일이다. 치마에 그려진 그림이란 무엇일까? 여성의 몸을 감싸고 은닉한 또 다른 피부위에 자연이 가설되는 장면이다. 여자의 몸과 자연/생명체가 그렇게 오버랩된다. 마치 치마폭이 무수한 생명을 회임하고 그것들을 둥지처럼 품고 있어 보인다. 치마/옷은 막막한 허공이 되고 잠자리 날개짓을 받아주는 창공이 되고 온갖꽃들이 피어나는 풀밭이자 허허롭고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에 바느질 시침자국과 함께, 천이 지닌 색감과 주름과 광택, 그리고 무게감과 함께 무엇인가를 지향하면서도 이내 천위를 물들이고 붓으로 비비고 끌고다닌 자취들이 바람결처럼, 곤충의 날개짓처럼, 풀들의 뒤척임처럼 흔들린다. 자연에서 받은 인상이 적조하게 추려지고 간소하게 그려진 그림들은 다분히 동양화의 오랜 전통과 조우시킨다. 그것은 사군자나 화조화의 변형이자 수묵추상에 가깝다. 선은 최소한의 정보를 주면서 여전히 줄기와 풀과 꽃, 연밥과 꽃과 나비, 잠자리를 재현한다. 여기서 바탕 면/화면인 천은 종이와 달리 먹의 번짐과 활력적인 붓질의 묘미를 다소 억압하는 편이다. 그러나 작가는 종이보다는 천을 선택했다. 단지 그림으로만 머물지 않기에 그럴 것이다. 천은 그림이 그려지는 바탕인 동시에 옷을 만들어 보이는 재료이고 동시에 천으로 이루어진 오브제, 천조각이기도 하다. 옷을 만드는 체험과 천을 가지고 놀이하는 즐거움이 그림과 접목되는 지점에서 이 작가의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모두 손으로 이루어진, 손을 놀리고 몸의 노동을 요구하는 조각적, 공예적, 의상과 관계된 일, 회화적인 것이고 손 아래 풀려나오는 그 모든 것의 종합이다.

정준미_043933-향3-7_천에 수묵_89×43cm_2009
정준미_043941-향3-8_천에 염료_163×82cm_2009
정준미_043973-향3-11_천에 수묵, 염료_158×105cm_2009

작가가 그린 그림은 빠른 속도와 즉흥적인 감각으로 실어나르는 필묵의 운동감이 강조되는, 다분히 직관적인 그림이다. 흔하게 접하는 이미지이자 또 그만큼 익숙한 그림의 패턴이기도 하다. 그래서 천의 물성과 색감, 주름 그리고 천이 만들어내고 있는 형상에 그려놓은 칠한 흔적들이 그 옷의 형태와 어떤 상관성을 가지고 있는가는 다소 의문이다. 나로서는 천조각이 자아내는 풍부한 형태감, 물성이 좀더 적극적으로 구현되고 그 위에 올려지는 이미지, 그림이 그와 필연적인 어떤 만남 혹은 인연으로 직조되는 상황연출이 필요해 보인다. 사실 동양화에서 천은 종이 못지 않게 그림이 그려진 오래된 바탕이었다. 또한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은, 모든 천은 다양한 문양과 색채, 이미지로 혼존한다. 그것들은 이동하는 그림이자 일종의 전시장이다. 사람들은 본래의 동물성의 육체를, 날것으로서의 피부를 지우고 옷/이미지로 자기 존재를 대처한다. 그것은 매력적인 볼거리가 되었다. 미술은 그곳에서 마냥 숨쉰다. 따라서 옷작업과 수묵이 어우러진 작가의 작업은 좁고 제한된 미술개념, 혹은 관습적인 동양화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모종의 시도 또한 읽혀진다. 정준미가 만들고 그려놓은 옷/천조각들은 정형화된 사각형 화면의 틀을 벗어나 공간 속으로 날개짓하듯 나아간다. 이 부드러운 입체/화면은 회화와 조각사이에서, 옷과 천 사이에서 또 다른 생명체로 거듭나고자한다. 무수한 생명을 잉태한다. ■ 박영택

Vol.20091207b | 정준미展 / JEONGJUNMI / 鄭濬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