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연못 Tree Pond

강신영展 / KANGSHINYOUNG / 姜信永 / sculpture   2009_1205 ▶︎ 2009_1214

강신영_나무고기_스테인리스 스틸_265×228×167cm_2009

초대일시_2009_1205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 갤러리 WOLJEON MUSEUM OF ART HANBYE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35-1번지 Tel. +82.2.732.3777 www.iwoljeon.org

강신영의 조각-물고기가 되고 싶은 나뭇잎, 연못 속에 담겨진 소우주 ● 조각가 강신영의 작업실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그 주변을 군소 나무들이 감싸고 있는데, 그 나무들 중에는 한눈에도 수종이 오래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있다. 연못에는 느티나무도, 하늘도 다 들어와 있어서 그 자체가 마치 하나의 자족적인 세계며, 소우주 같다. ● 그 작은 세계 속엔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물 위에 부유하거나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데, 나무가 자신의 생리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떨쳐낸 죽은 나뭇가지며, 나뭇잎들이다. 그 물속엔 이렇게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나뭇잎들과, 그 생긴 모양새가 나뭇잎처럼 유선형으로 생긴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죽은 나뭇잎이 살아있는 물고기를 닮았다. 살아있는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유유자적하며 거침이 없다. 죽은 나뭇잎들은 물고기들의 유유자적이 부럽고, 저들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마침, 근처에 죽은 나뭇가지도 있는 터여서, 나뭇잎들은 그 나뭇가지를 몸통 삼아 하나둘씩 들러붙어 물고기 형상을 만든다. 나무이면서, 동시에 물고기이기도 한, 나무고기가 된 것이다. 이제, 그 나무고기들도 물고기들처럼 물속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게 되었다.

강신영_나무고기_스테인리스 스틸_265×228×167cm_2009_부분

그런데, 고향이 그립다. 하지만, 물 밖에서는 물속에서와는 다르게 다리가 있어야 걸을 수가 있다. 그래서 또 다시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덧붙여 다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나무고기들은 물속에서도 유유자적할 수가 있고, 물 밖에서도 걸어 다닐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나와 보니, 엄마(느티나무)가 그립다. 하지만 엄마의 키가 너무 높아서 가 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비교적 큰 나뭇잎을 몸통에 붙여 날개를 만들어보았지만, 잎맥만 앙상한 그 나뭇잎 날개로는 바람의 힘을 받을 수도 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과정 전부를 지켜보던 엄마가 잎살이 멀쩡한 나뭇잎 몇 장을 떨어트려 주고, 마침내 나무고기는 그 나뭇잎으로 날개의 구멍을 막아,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강신영_木人_스테인리스 스틸_274×235×175cm_2009

무슨 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다. 아마도 평소 자연을 지척에 두고 작업을 해오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발상에다가 살을 덧붙여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닌데, 현재상황을 빌미로 자신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낸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되불러내는 단서와 계기로서 작용한 것이며, 현재 속에 오롯이 보존되고 있었던 과거를 되불러낸 것이다. 자연이 작가의 현재와 과거의 단절되어졌던 끈을 연결시켜준 매개로서 작용한 것이다. ● 그러나 자연이 지척에 있다고 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고 해서 자연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의식이다. 의식이 없으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 의식은 그 자체 목적 지향적이어서 자신이 겨냥하는 것을 보고, 다른 것을 간과하고 배제하는 경향성이 있다. 의식마저도, 아니, 의식이야말로 경제적인 법칙을 적용받는다고나 할까.

강신영_木人_스테인리스 스틸_274×235×175cm_2009_부분

여하튼, 작가의 근작의 핵심은 자연 속에서 세계를 보고, 우주를 보고, 자신을 보고, 존재를 본다는 점에서 자연과 문명과의 관계를 재고하게 하고, 자연의 본성에 눈뜨게 한다. 그리고 그 자연을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과의 단절되어졌던 끈을 이어주고 복원시켜주는 계기로서 인식한다는 점에서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을 엿보게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근작을 특징짓는 핵심은 남다른 발상에 있는데, 실제서사와 허구적 서사를, 경험에서 유래한 현실인식과 상상력을 씨실과 날실 삼아 긴밀하게 직조해내는 특유의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렇다고 상상력을 현실인식과는 배치되는, 현실성을 결여한 순수한 허구로 볼 일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현실인식이 경험에 바탕을 둔 것만큼이나, 상상력 역시 현실경험이 없다면 나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현재의 자연(혹은 자연의식)을 매개로 해서 과거의 자연을 되불러내고,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불러내고, 그렇게 과거 속의 자연과 더불어 추억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되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강신영_나무연못_스테인리스 스틸_200×100×100cm_2009

유년의 이야기는 어른의 이야기와 다르다. 유년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거침이 없다면, 어른의 이야기는 한정적이고 닫혀있다. 어른의 이야기가 논리적이어서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라면, 유년의 이야기는 그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 큰 이야기를 꾸며낸다. 신화, 설화, 우화, 동화, 전설, 민담이 모두 이 큰 이야기에 속하고, 유년의 이야기는 이런 큰 이야기에 연이어져 있다. 그 이야기가 논리를 뛰어넘는 것인 만큼, 논리로 싸안을 수 없는 비전을 열어놓는다. 초현실주의와 비엔나환상파, 그리고 남미의 매직리얼리즘이 이 이야기의 계보에 속한다. 마술로 읽어낸 리얼리즘이며, 현실 속에 깃들여 있는 마술 같은 순간들을 발견하고 캐내는 것이다. ● 이런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작가는 문명(혹은 문명화된 의식)에 가려지고, 왜곡되고, 축소된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고, 그 본성이 품고 있는 위대한 모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모성에의 지향성은 각각 순환사상(시작도 끝도 없이 연이어진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가 사가 순환하고, 물과 땅이 순환하고, 물과 하늘이 순환하고, 나무와 물고기가 순환하는)과 생명사상(자연에 영이 깃들여 있다는 믿음과 신념으로부터 유래한 물활론, 범신론, 샤머니즘, 토템으로 나타난),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재론적 원형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강신영_나무고기_스테인리스 스틸_90×105×59cm_2008

여기서 그리움은 순환사상과 생명사상을 싸안는, 이보다는 더 큰 개념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부재하는 것을 그리워한다. 현대인이 상실한 것들, 억압한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 그래서 불가능한 것들, 자연(동물성과 식물성, 야성과 야생을 싸안는), 고향(지정학적 개념과는 상관없는, 의식적 층위에서의 문제와 관련된), 원형(존재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어떤 뿌리의식)을 그리워한다. 작가의 조각은 어쩌면 잊혀졌을 지도 모를, 이 큰 그리움에 대면하게 한다.

강신영_나무연못_스테인리스 스틸_195×155×140cm_2009

스테인리스스틸을 소재로 한 작가의 조각은 지금까지의 스테인리스스틸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끔 한다. 이를테면 대개는 심플하고 추상적인 구조의 표면에 번쩍거리는 광택과, 그 표면에 비친 반영상으로 특징되는 표현의 한계를 재고하게 하고, 유별난 강도로 인해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단조기법을 적용하고 실현해 보임으로써, 특히 구상적, 형상적, 서사적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 작가는 이런 스펙터클한 서사며, 존재론적 이야기를 스테인리스스틸을 소재로 한 일련의 조각으로 풀어낸다. 그 의식이 자연의 본성을 향하는 것인 만큼 가급적 자연을 닮게 만든다. 이를테면 나뭇잎의 경우, 소재를 나뭇잎 형태로 자른 연후에, 이를 높은 온도의 불에 달궈 해머로 두드리는 방법으로 자연스런 흔적과 형태를 얻는, 단조기법(일명 방짜기법)을 취한다. 가녀린 선조의 경우, 그 유기적인 형태가 마음에 드는 실제의 나뭇가지를 골라서, 보고, 본 그대로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단면이 잘려져 나간 나무둥치 형태의 경우, 실제의 나무둥치를 속(틀) 삼아 그 위에 소재를 덧대어 나가는 방식으로 형태를 만든 연후에, 그 속의 나무를 태워 없애는 방식을 취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연에 흡사한 형태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처럼 실제를 모방한다고 해서 형태 역시 실제 그대로 나와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소재가 작가의 조각에서처럼 스테인리스스틸이라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감각의 문제며, 기술적인 난이도와 이를 실현하는 능력의 문제다. ●스테인리스스틸을 소재로 한 작가의 조각은 지금까지의 스테인리스스틸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끔 한다. 이를테면 대개는 심플하고 추상적인 구조의 표면에 번쩍거리는 광택과, 그 표면에 비친 반영상으로 특징되는 표현의 한계를 재고하게 하고, 유별난 강도로 인해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단조기법을 적용하고 실현해 보임으로써, 특히 구상적, 형상적, 서사적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091209i | 강신영展 / KANGSHINYOUNG / 姜信永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