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일탈의 힘

최일호展 / CHOIILHO / 崔日灝 / sculpture   2009_1202 ▶︎ 2009_1212

최일호_human instinct 09.9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194×63×36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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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02_수요일_05:00pm

기획_소헌컨템포러리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소헌_GALLERY SOHEON 대구시 중구 봉산동 223-27번지 Tel. +82.53.426.0621 www.gallerysoheon.com

매스mass 에 기입된 갈등과 정체성 [drive and identification inscribed in the Mass] ● Ⅰ. 이번 전시는 최일호가 자신의 기본기를 다지면서 고민하던 조각의 문제를 마름하는 장이다. 수학과정을 거치면서 부딪혔던 조각의 근본문제, 즉 재료와 대응하는 문제, 형상과 대응하는 문제, 유혹의 문제, 현대사회와 타 매체와의 관계 문제, 그 속에서 조각의 위상 등 조각이라는 매체와 작가 자신의 문제를 함께 연루시키면서 초점을 모아 온 결실이라 하겠다. 조각 내부에서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매체와 매체를 이끌어갈 중심문제를 끊임없이 대결시키면서, 또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끌어 나갈 형상적 지표로 작가가 내세운 것이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내 의식이 도무지 점령하지 못하는 신체 밖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내 몸의 기관이기도 하면서 완벽하게 타자로 남아있는 남근의 문제를 고백한 적이 있다. 즉 남근의 문제는 금욕과 충동, 금기와 허용이 교차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묻게 만드는 완벽한 타자로서의 내 신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일호가 작품을 이끌고 가는 '머리카락'은 남근과 중첩되면서 자신의 내부갈등(정신분석학적 욕망)과 이 갈등의 사회화 과정 즉 정체성문제를 강력하게 드러내는 성적 메타포로도 읽을 수 있다. 작품에서 신체의 성징은 사라지고 대신 머리카락이 신체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형상에서 이를 반증해주는 듯하다.

최일호_human instinct 06.12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164×36×20cm_2006 최일호_human instinct 09.6.2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136×18×78cm_2009 최일호_human instinct 09.7.2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28×157×27cm_2009
최일호_human instinct 09.7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158×40×25cm_2009

몸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의지와 욕망사이의 갈등 그리고 화해, 이 과정에서 머뭇거리는 자아, 화해에 이르지 못하는 실패의 반복 등, 우리에게 갈등과 화해의 지점은 예측할 수 없으나, 의지는 욕망을 정리하려하고, 욕망은 세상의 유혹에 이끌리며 의지 너머로 끊임없이 나아가려고 한다. 여기에 자아의 균열과 불일치, 그리고 동요가 자리 잡는다. 균열을 확인해 가는 것, 불일치를 인정하는 것, 동요를 긍정적인 힘으로 수용하는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사회화 즉 정체성을 획득하는 길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자라는 머리카락은 언제나 나의 숨결과 함께, 나의 영양과 함께 성장하는 나의 일부이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밖 즉, 자연의 힘에 적응하고, 타자의 시선에 이끌리는 바깥의 탐침자이다. 탐침자는 자아에게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며, 새로운 결정을 요구하는 지속과 결단의 교차점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작업의 형상화도 재료의 한계를 조형의지의 대결장으로 설정하여, 몸의 갈등과 자아정체성이 묻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작업해 갔다고 한다. 그러면 작가는 이런 문제를 작품 속에서 어떻게 해결해 가는가?

최일호_human instinct 09.8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160×32×32cm_2009
최일호_human instinct 08.9_레진(혼합재료)_202×49×29cm_2008 최일호_human instinct 09.3_레진(혼합재료), 우레탄도색_138×27×26cm_2009

Ⅱ.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형상적 지표로 삼아, 작가 내면의 성장과정을 매스Mass에 기입하려는 것이 이번 작업의 개념이다. 즉 내면적인 갈등과 일시적인 화해, 지속적인 실패와 긍정적인 힘의 발견 등을 어떻게 매스 안에 기입할 것인가가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이라 하겠다. 작가가 쥐고 있는 게임 블럭은 돌과 나무, FRP이고 형상은 인체와 얼굴이다. 알다시피, 조각에 있어서 돌과 나무는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재료이며, 인체와 얼굴 역시 조각사에서 한축으로 꿸 수 있는 중심 요소들이다. 어찌 보면 기본 어휘를 가지고 현재 조각의 고민을 풀어보려는 것이라 하겠는데, 서두르지 않고 대결하겠다는 근기가 보인다. 아마도 어휘의 재해석을 노리는 상당히 당찬 포부가 숨어있지 않나 한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현재적 삶 속에 고민하는 작가의 충동과 갈등, 충돌을 기입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은 「인간의 본능Human Instinct」연작에서 작가가 자신의 내면 갈등을 재료에 기입하는 것과 조각의 감각적 유혹을 발휘하게 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된다. 이런 대결 속에서 「인간의 본능Human Instinct」연작은 신체와 얼굴에 기록한 자아의 갈등과 정체성문제가 아니라 매스에 기입된 자아의 갈등과 정체성문제가 바로 신체와 얼굴로 된 것이라 하겠다.

최일호_human instinct 09.5_레진(혼합재료)_70×73×22cm_2009 최일호_human instinct 09.6_레진(혼합재료)_70×100×24cm_2009
최일호_human instinct 09.9.2_레진(혼합재료)_165×40×32cm_2009

작가는 작품에서 머리카락을 전체 조형적 운율에 맞게 형상화하면서, 몸이나 얼굴을 지탱해주는 중심 모티프로 설정한다. 머리카락으로 지탱하고 있는 신체상이나 얼굴은 상상력을 통한 중심과 주변의(신체와 머리카락/얼굴과 머리카락의 관계) 반전 효과를 통해 작품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FRP작업에서 주로 등장하는 머리카락의 조형적인 부각은 중력의 방향을 거슬러 하늘로 치솟아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듯 하면서도 동시에 자아의 의지에서 벗어난 듯한, 의지가 장악할 수 없는 일탈의 힘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 두 가지 대립되는 방향이 작품의 조형성 속으로 소환함으로써 조형상의 긴장감을 강화시킨 점은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특히 한지나 종이 등의 재료연구를 통해 인체 표면에 유혹의 질감을 마련했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에 비해 돌이나 나무는 가벼운 변주곡처럼 재료의 질감을 살려 감각적이고 조형적인 처리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무 얼굴조각에는 그을린 나무로부터 머리의 조형성을 강조하면서 재료에 있는 흠집(썩은 곳이나 옹이진 곳)은 큐빅을 박아 유쾌한 농담으로 처리한 점이 돋보인다. 돌 얼굴 조각에는 재료가 주는 엄격함에 화려한 색을 침입시킴으로써 즐거운 균열을 맛보게 한다. 위반으로서의 농담과 균열은 자아가 경험해야 하는 정체성문제의 관문들이기도 하다. ● 향후, 「인간의 본능」연작이 사회와 자아가 맞물리는 욕망의 구조를 '작품 안에' '조각의 언어'를 통해 깊이 구조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작가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기대해 본다. 그 때 '작품'은 의지의 어긋남과 머뭇거림, 인간적인 갈등 속에 장악해 들어오는 모든 타자들의 점령을 기입한 매스(the Mass)가 될 것이며, 이 점이 지속적인 작업의 화두이자 앞으로의 작업방향의 결정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담은 더욱 세련되게, 그의 진지함은 더욱 무게 있게, '작품을 통해' 확인해가는 즐거운 기대를 한다. ■ 남인숙

Vol.20091210b | 최일호展 / CHOIILHO / 崔日灝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