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 Play of Soil

정형준展 / JOUNGHYUNGJUN / 鄭亨準 / painting   2009_1209 ▶ 2009_1215

정형준_Play of Soil (FaceⅦ)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 흙, 삼베_97×145.5cm_2009

초대일시_2009_120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부남갤러리 서울 종로구 경운동 63-7번지 이양원빌딩 B1 Tel. +82.2.720.0369 www.bodaphoto.com

과정의 회화, 흙의 미학 ● 정형준은 유사한 형태들의 팽창, 과정 자체, 흙의 미학을 자신의 회화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예술론을 추동시킨 사유의 배경에 대해 논하며, 작가는 다음과 같이 고백 한다 :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은 무한한 생명의 생성과 소멸 속에서 계속 변화하며, 영원한 존재는 그 무엇도 없다." 정형준의 말이 옳다. 인식과 경험의 영역 안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원컨 원하지 않건 변화가 지속될 뿐이다. 변화는 인위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며 중단되지도 않는다. 질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변화가 중단되고 순환이 멈추며, 부자연스러운 것이 될 때, 한 곳에 편중되어 뭉칠 때, 그리고 어떤 전체주의적인 질서로 재편될 때, 예컨대 스스로를 항구불변의 형식으로 주장할 때, 그것이 곧 왜곡과 스트레스, 불안의 요인이며 생명에 대한 부정이 되는 것이다. ● 하지만, 생명의 근간이 되는 항구적인 변주, 움직임, 중단되지 않는 순환을 반영하는 회화적 언어가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에는 정형준으로 현재의 회화론에 도달하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반영되어 있다. 하나의 전체주의적 기획을 거부하면서, 하나의 완결된 무오류의 시작을 불신하면서, 그의 회화는 주어지는 모든 미시적인 순간들마다 불확실한 열림을 동반하기를 원해 왔다. 생명이라는 원질서의 범주를 일탈하지는 않지만, 경미하더라도 끝없는 변화의 요구에 부응해 왔다. 즉 일관성 안에서 변주하고, 변주하면서도 하나의 원칙을 준수해 온 것이다.

정형준_Play of Soil (Face 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 흙, 삼베_97×145.5cm_2009

그의 회화는 수 없이 많은, 균질의 작고 다양한 형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 거의 대부분은 대상의 구체적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사실적 출처와 과정적 변주의 변증적인 과정에 놓여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어떤 소수의 것들은 특별히 그 재현적 자취를 상당부분 간직하고 있는데, 그 각각의 형상들은 작가 개인의 삶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인물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어떤 것들은 분명 이런 저런 동물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예컨대 쥐의 두상을 연상케 하는 것은 쥐띠인 작가의 처(妻)로부터 비롯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정형준_Play of Soil (Face Ⅳ)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 흙, 삼베_97×145.5cm_2009

그럼에도 그 각각의 형상들로부터 식별 가능한 대상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들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이다. 밀도 있게 화면을 메우고 있는 각각의 형상들은 동일한 색과 질감, 동일한 형태적 특성, 그리고 변함없는 전개과정으로 인해, 마치 하나의 질서정연한 패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다른 것과 동일하지 않다. 어떤 행위나 과정도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그것들의 전개와 확장의 어디에도 과정 내내 준수해야 할 법칙이나 규범은 없다. 때로 비교적 식별 가능한 재현적 형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에도, 그 출발은 과정을 통해 완화된다. 물론 과정은 출발과의 상관관계를 자신 안에 담고 있지만, 동시에 출발에 전적으로 속박되지도 않는다. 각각의 그것들 사이의 유사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되는 일이 없는 만큼, 전적으로 동일해 지는 일 또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주변과의 긴밀한 상관성 안에서 생성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다른 것과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각 형태들 간의 이 변증적인 긴장감 안에서 미시적인 무한변주가 지속되어 나간다.

정형준_Play of Soil (Mutation)_스티로폼, 아크릴채색, 먹, 흙, 삼베, 나무_가변설치_2009

그 형상들은 처음부터 기획되거나 예측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의 최종적인 형태는 기획이 아니라 과정의 산물이다. 즉 하나의 형태는 이웃하는 바로 전의 형태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은 다시 다음의 형태가 결정되는 데 반영된다. 하나의 과정은 바로 전의 과정에 긴밀하게 의존적이다. 과정 자체가 다음 단계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므로, 결과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다. 이 '과정 의존성'은 전적으로 우연에 맡겨지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여기서 출발은 마지막 순간에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과정에는 엄격한 질서가 존재하지만, 그 질서는 예외성과 우연에 개방된 질서다.

정형준_Play of Soil (Focus 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 흙, 삼베_112×162cm_2009

그럼에도 정형준의 회화는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어떠한 일탈적 시도도 가능하지 않을 듯 균일하다. 규범과 변주, 의도와 우연, 과정과 결말이 매우 촘촘하게 그리고 상관계수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체는 매우 견고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균형으로 인해 화면의 긴장감은 충분히 조절되고 통제된다. 더 나아가 밀도는 각각의 것들을 아주 조금씩 밖에는 꿈틀거릴 수 없는 것으로 고정시킨다. 그 밖의 우발적 요인들은 사전에 차단되는데, 이로 인해 그의 회화는 다분히 정적이고 고전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다.

정형준_Play of Soil (Focus 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 흙, 삼베_91×145.5cm_2009

흙의 질료성은 정형준의 세계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다. 작가는 흙에서 생명 자체의 속성을 목격한다. 흙이야말로 생명, 또는 생명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하나의 세계이자 차원인 것이다. 작가는 씨앗을 틔우고, 그 싹을 자라게 하는 생명의 본질적인 요인이 자신의 회화를 주조하는 밑바탕이 되기를 원한다. 그가 표현해내는 모든 조형적 가능성들, 형태, 색, 톤, 재질감과 질료감 중 어느 하나도 흙의 유산이 아닌 것이 없다. 흙은 숭고하면서도 자연적이고, 순수하면서도 다채롭고, 전혀 낯설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새롭다. 흙은 정형준의 사유의 출처요, 조형성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에게 흙은 질료 이상으로 개념이며, 그 자체로 형식이요 스타일이다. ■ 심상용

Vol.20091210f | 정형준展 / JOUNGHYUNGJUN / 鄭亨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