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산수 Warped Landscape

조인호展 / CHOINHO / 趙寅浩 / painting   2009_1209 ▶ 2009_1215

조인호_휘어진산수-설악산06_순지에 수묵_190×26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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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09_수요일_05:00pm

후원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0:00am~06:00pm

공화랑_GO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82.2.735.9938 www.gonggallery.com

移動視點으로 재해석한 자연 ● 산이 움직인다. 산이 춤을 춘다. 산수화는 동양인의 자연관을 담은 독특한 회화양식을 의미한다. 산수, 그것은 서양식 풍경으로서의 개념과 차원을 달리한다. 여기서 산수라 하면 바로 만물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상징적 용어이기도 하다. 세상의 만물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대별하여 함축할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의 상징체는 곧 물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의 상징체는 곧 산이다. 하여 산수화에는 산이 있고, 더불어 물이 있다. 不動의 산 속에 움직이는 물이 있거나 그것의 연장선에 호수나 강이 있다. 아니 폭포라도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인 流動의 표현방식이리라. 이렇듯 산수는 자연을 압축한 상징체이면서 동양인의 자연관을 나타낸다. 산은 산, 물은 물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 것의 표상이다. 물론 그렇다. 산은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산은 움직일 수 있고, 더나가 춤을 추는 존재일 수도 있다. 移動視點혹은 多視點에 대한 문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자연은 새롭게 해석되는 존재이다. 때문에 산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움직이는 존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物我一如는 전통적 사유방식이기도 하다. 서양의 원근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보는 법'이다.

조인호_휘어진산수-설악산05_순지에 수묵_162×130cm_2009

조인호의 산수는 경쾌한 리듬을 담고 있다. 왜 그럴까. 산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산을 바라보는 이의 시점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풍경화처럼 한 자리에서 (그 잘난) 원근법에만 목을 매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자연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화면에 담는다. 시점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산은 전후좌우를 다 포용한 화면으로 연결된다. 같은 설악산을 그려도, 같은 화면일지라도, 시점은 여러 군데로 혼재되어 형상화된다. 중앙의 산은 부감법처럼 정중앙의 상공에서 바라 본 것으로 집약되어 있으나 좌측의 산은 서향의 시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방향이 틀어지다 보니 산이 움직이는 것 같고 혹은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동의 산이 시점에 따라 춤 추는 산으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인호의 산수는 상쾌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무엇인가 사유하는 흡인력을 동반한다. 신작 『휘어진 산수』는 이같은 지적의 모태를 이룬다. 산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실험정신과 그것의 새로운 표현방법은 그만큼 신선한 감흥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휘어진 산수』는 기왕의 개인전이었던 『白衣 산수』와 『邂逅 -나, 타자, 그리고 자연』에서 시도한 이동시점의 진일보에 해당한다. 초월을 꿈꾸는 작가의 중간보고와 같다.

조인호_휘어진산수-설악산09_순지에 수묵_95×65cm_2009

설악산 그림을 보자. 화면의 하단부분은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의 시선처럼, 그러니까 아래에서 대청봉을 바라 본 산의 모습이기 때문에 산세가 웅장하다. 하지만 오색쯤에서 바라 본 다른 편의 산세는 부감법으로 처리해 시선의 아래쪽에 집약되어 있다. 같은 산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게 산세가 해석된다. 한마디로 조인호의 산수는 걸어가면서 보는 보행자의 자연인 것이다. 그 산은 굳이 어느 한 쪽의 모습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하기야 산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산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상의 다면성을 어떻게 한 화면에 축약할 수 있는가. 문제는 하나, 산의 안에서 바라 본 산 그리고 산의 밖에서 바라 본 산, 이 양자를 함께 표현하는 방법이리라. 이동시점의 장쾌한 승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멀리서 보는 산의 모습도 산 내부의 모습도 산에 올라서 보는 주변풍경도 모두 산이 가진 용모이다. 산이 가진 다양한 용모는 여백과 이동시점을 통하여 새롭게 해석된다." 당연한 지적이다. 특히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고 나면 이 같은 담론은 가슴으로 파고든다. 왜냐하면 "길은 항상 그곳에 그렇게 있으되 올라가는 사람에겐 오르는 길이 되고 내려가는 사람에겐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조인호_휘어진산수-울릉도, 거북바위_순지에 수묵_65×100cm_2009
조인호_휘어진산수-울릉도, 성하신당_순지에 수묵_65×130cm_2009

조인호의 산수는 무엇보다 實景이라는 점에서 특징을 이룬다. 구체적인 장소를 표기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하기야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조차 자연을 취사선택하여 재해석한 자연이지 않은가. 작가는 대상을 재해석하면서 위치를 설정하고 또 그들을 연출한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조인호의 실경은 우리 조국의 이곳저곳을 안내한다. 설악산에서부터 제주도까지 혹은 울릉도와 독도에 이르기까지 영역이 넓다. 아니 비행기의 항로처럼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한 화면에 압축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대단한 상상력과 표현기량이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역시 이동시점에 의해 표현했기 때문에 다양성과 함께 '그림 보는 맛'을 제공한다. 이는 郭熙가 『林泉高致』에서 말한 三遠法과도 궤도를 달리하는 형식의 실험이기도 하다.

조인호_휘어진산수-울릉도, 황토구미_순지에 수묵_65×130cm_2009

조인호의 산수는 먹을 주재료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도 하나의 특징을 찾게 한다. 먹의 사양시대에 먹만 가지고 작업을 하다니, 이는 결코 예사스럽지 않은 작가의 철학을 읽게하는 부분이다. 조인호는 바로 法古創新의 철리를 화면에 실현시키려는 흔치 않은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생지에 먹만 가지고 작업하는 그의 모습은 자못 숙연하다. 그는 갈필로 윤곽선을 낸 다음 그 위에 담묵으로 우리고 먹의 층차를 매긴다. 비교적 잔잔한 필치로 자연을 형상화하기에 보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시점의 자유자재는 자연의 내밀한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느끼게 한다. 우리가 조인호에게 기대하는 '재인식'의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초월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의 개인전 『휘어진 산수』가 내재한 조형의지는 바로 현실경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을 읽게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무엇인가 초월의 경지를 감지하게 한다. 초월이라, 그래서 산봉우리가 더욱 꿈틀거리면서 춤을 추는 듯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조인호의 산은 춤을 춘다, 아니 침잠한다. ■ 윤범모

Vol.20091211b | 조인호展 / CHOINHO / 趙寅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