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차이-인간을 담아내다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   2009_1210 ▶︎ 2009_1220 / 월요일 휴관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_각 35×25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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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10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아트갤러리 유_ART gallery U 부산 수영구 남천동558-19번지 3층 Tel. +82.51.623.1584 www.u-1korea.com

nuance -자화상 ● 신의 숨결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고루 펼쳐져있다 각 개인의 삶에서 다양한 뿌리를 지닌채살아가는 동안에도 햇빛은 평등하게 내려 비추고 있으며 달빛은 동그랗게 당신의 이마를 조심스레 만져준다 평범하고도 느슨한 상태의 일상에서도 선한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기에 지구의 하루는 밝아오는 것이다 만약에 악인들만이 들썩이고 행위하는 곳에서 산다면 불행한 감정과 슬픔이 교차하면서 우울감만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달콤하고도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편안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틈이라고 할 수 있는 단점투성이의 상처난 정신의 일탈성들이 치유되는것을 느낀다면 그것으로도 좋을것이다 평등 자유 박애가 숨 쉬는 사회가 있다면 가난한 자의 노랫소리도 부자의 공허한 탄식도 사라질것이다 인권이 중심이 되는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몸과 정신을 맞댄다면 예수의 가르침도 부처의 가르침도 모두 이루어진것과도 같다 사랑... 누군가를 사랑하고 깊은 애정을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때에는 모든이들의 움직이는 발소리가 고요하면서도 경쾌하게 울려퍼지면서 하나의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화음과 조응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의 감정은 악한이또한 선한자로 받아들인다 고독한 그대의 심장에 쏘아올리는 작은 물결과 넘실대는 파도소리는 다시 한번 희망이라는 것을 품고 살아가기를 권유하는 신의 선물인 것이다 때로는 고유한 인식번호(바코드)가 일상에 넘치는 것에 불안하다면 자연을 권유하고 싶다 바다의 맑고도 깊은 일렁임과 녹색, 파랑, 빨강, 노랑, 흰색등의 다양함이 묻어나는 산속의 공기가 나와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근거를 찾게한다 다양함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에서 한껏 짊어진 배낭에서는 아무런 향기가 없고 오로지 눈과 귀로 마주치는 풍경과 인간의 움직임속에서 무언가 당신이 원하는것을 보고 만지고 듣게된다 한편 동행하는이가 없다고 아쉬워하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말아라 세상의 모든 풍광과 살짝 달뜬 숨소리를 지닌 친절하고도 부드러운 사람들이 그대의 여행에서 풍부한 색채를 더해줄것이다 지도를 찾아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발길이 닫는대로 가는자의 길앞에는 누구도 보지못하고 듣지도 못한 자신만의 지혜가 더해질것이고 인생의 깊이는 날로 성장하게된다 현실을 두려워하는 나와 그대의 심장은 더욱 투터운 외투로 무장할것이며 발은 튼튼한 신발끈으로 동여매고 사방에 펼쳐진 외로운 영혼들을 만나러가는 자유로운 기분을 한껏 불러일으켜서 타향이 고향이되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실제로도 두려움은 사라지고 친절한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따뜻한 조그마한 잔치를 열게 될것이다 만일이라는 가정속에서 상상으로서도 가능한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지닌채 마음을 열고 대화를해보자 언어는 중요하지않다 몸짓과 영혼짓으로 금방 대화는 각자의 정신을 일깨우고 중요한 핵심인 사랑을 찾아서 나의 마음에 담겨진다 때로는 꽉 막힌 사고를 가진 자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정신은 그들의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인사를하자 인간이 인간을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원죄가 만들어낸 허상이 뿌리깊이 인류의 길을 막아서이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자 여러개의 색깔로 혼합된 색채가 나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나타낸다면 그까짓거 색채를 덜어내거나 아예 검은빛으로 물들여 버리자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_각 35×25cm_2005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_각 35×45cm_2009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_각 65×50cm_2009

흰색으로만 존재하는 물체는 없다 투명하고 밝은 흰색은 그안에 짙은 그림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검다고해서 검은것이 아니다 밝음이 있기 때문에 검은색으로 존재하는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시작한다 나와 당신 그리고 그들이 있기 때문에 숨쉬면서 밥을 먹고 배설하며 사는것이다 존재의 이유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은 살아있기 때문에 인생을 논할 수 있는 것이며 기쁨, 행복, 슬픔, 노여움을 느끼는 것이다 지구만 행성이 아니다 우주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행성들이 무수히 많으며 깜깜한 밤에 한줄기 빛을 주는 별들이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꿈을 꾼다 가난한자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아픈자는 아픔을 멈추게 해달라고 슬픈자는 슬픔을 멈추게 해달라고 부자는 더욱더 많은것을 구하게 해달라고 꿈을 꾼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인권국가를 꿈꾼다 먹을 수 있는 권리 잠 잘 수 있는 권리 아픈것을 고칠 수 있는 권리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권리 이런 권리들이 실제로 현실화되는 그날까지 나는 꿈꾸며 창작할것이다 더불어서 살아가고 대화하면서 살아 가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배우고 있으며 경험을 해가고 있다 신이시여 기도를 들어주소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서 보다 깊이 인류와 자연이 함께 살아가도록 해주소서 그대여 그대는 어떤 꿈을 꾸는가 희망이 살아 있는가? 나의 희망은 꿈틀대고 있으며 병든 나의 정신은 조증과 울증을 오고가면서 정교하고도 느슨한 음률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평행하게 뻗은 바닷가에 서서 무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외로움과 슬픔 아픔을 달래곤 한다 언제쯤이면 삶이 끝이 날까 라는 고민도 했으며 여전히 인생은 살아가는것에 무게 중심이 있으며 죽음앞에서는 신의 부름앞에 다가 서는 것이기에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삶이 곧 발언권이며 묵비권은 행사할 수 없는 그런 세계가 바로 죽음이 아닐까? 인류의 역사에는 삶의 결백함이 뚜렷함을 주장하는 자살자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도 인생의 무게감에 병든 육체와 정신으로 스스로 죽기를 갈망하기도한다 그러나 살아야한다 우리는 살아 남아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용서하고 용서 받으면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 권리이행을 바르게 사용해야된다 어제의 하루는 과거속에서 빛을 갈무리하고 있으며 오늘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으며 내일은 미래를 비추고있다 그 어떠한 색채로 자신을 무장했다면 한번쯤 그 색깔을 벗어 던지고 타인의 색채를 입어 보는 것은 어떨까? 공유하는 삶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이의 색을 맞 바꿔 보기도 해야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만 이해되고 화합될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분산되고 이해타산적인 것으로 단단하게 동여맨 옷자락은 멋있지가 않다 풀어 내려야한다 때로는 모든 것을 벗어던진 알몸이 아름답고 황홀하고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순수함으로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다 사회에 내던져진 무숙자들을 봐라 그들의 옷차림 만으로 더럽고 추하다라고 생각하는 그대의 옷차림은 잘 빨아진 세탁과 조율된 일상에서 나오는 것일 뿐 차분하게 돌아보아야 된다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라는 것에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위대하다라고 말하고 싶은 무료봉사자들이 아무런 댓가없이 열심히 타인을 돕고 있다 더불어 살아 가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으로 찬사를 보낸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그대는 그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이다 그대여 낮에는 일로서 힘들다면 밤의 보드라움이 가득 찬 가정이나 돌아갈 곳을 생각하자 낮과 밤의 일상에서 우리들이 얻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편온한 마음자락이 붙들어주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열린 시각이 아닐까 한다 힘을 내자 오늘 하루에 감사하면서 삶에 감사하면서 따스한 음악이라도 사고를 확장해줄 그림 하나라도 그대앞에 바치고 싶다 창작을 하는것은 내가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누어주고 싶어서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존재하는 하는 것에 감사하면서 글을 마치고자한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보낸다.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 크레용_각 76×56cm_2009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종이에 수채, 오일파스텔_각 100×70cm_2009
등작_미묘한 차이 nuance_캔버스에 유채_각 91×72.8cm_2009

Nuance에 대한 단상 ● 미묘한 차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한지도 5년이 되어 가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라는 것인데 실생활에서 다른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말투나 억양 어감에 따라서 받아 들여지는 의미가 왜곡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 진실의 실체가 바뀌어서 들리기도 한다 내가 작업을 하면서 느낀것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것이 실상은 언어라는 것에 바탕을 두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어난 국가 배운 지식의 정도와 사상이나 이념 경험등에 바탕을 두는것이기에 주고 받는 정보가 교차되는 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유일무일한 유일신이시다" 라는것이 각각 천주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종교의 무게감이 다르다는것이다 신을 믿는것은 자유이되 그 신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마음이 선하고도 악한 마음을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전쟁을 하기도 하고 살인자가 되어 테러를 하는것이다 내가 느끼기로는 잘못된 믿음으로 비롯된 종교라는것은 아주 무서운것으로서 무조건적으로 한 종교에 빠져서 있는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으로 각 종교의 전체를 두루 감싸 안는것에 반하는것으로 심하게는 광신도의 모습으로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만약에 한 국가를 책임지는 수장이 특정한 종교에만 빠져서 정책을 펼친다면 그 국가의 미래도 국민들의 정서도 위험에 빠질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뉘앙스라는것이 짧은 의미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 보아서는 얼마든지 그 뜻이 확장된다는 것을 보았을때 인간의 언어가 만들어 내는 것들이 인간의 사상이나 이념 사고와 얼마나 밀접한지를 새삼 느껴본다. ■ 등작

Vol.20091211e |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