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s Gaze 타자의 시선

이후창展 / LEEHOOCHANG / 李厚昌 / glass sculpture   2009_1216 ▶︎ 2009_1222

이후창_타자의 시선 I,II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83×44×10cm, 82×42×1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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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216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 1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욕망으로 불투명해진 유리 인간들 ● 조소와 유리 조형을 모두 전공한 드문 경우인 이후창은 유리라는 매체가 가지는 고유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장식이나 쓰임에 치중하는 공예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조각이지만, 유리가 가지는 매체의 속성으로 인해 기념비적인 하나의 덩어리를 유지하면서도, 내부로 접혀지는 또 하나의 형태와 빛을 머금은 색채 연출이 특징이다. 이러한 유리 조각의 특이한 방식이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는 무거운 주제의식과 연결 된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상실의 시대-타자의 시선'인데, 2008년 첫 개인전과 2009년 두 번째 전시의 주제인 '상실의 시대'라는 커다란 틀을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각론으로 나아간다. 그가 세 번의 전시에 걸쳐 주목하는 '상실'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관계로 생겨난 인간 정체성과 고유성의 상실을 말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인간을 형상화한 작품이나 조립식 장난감 프레임에 절단된 신체들이 붙어있는 2008년 전시 작품은 인간의 상품화와 파편화를 통해 그러한 상실감을 보여주었다. 열 성형한 유리(cast glass)를 통해 보여주는 '상실의 시대'는 붉은 빛, 푸른빛이 돌면서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서늘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을 가시화한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네온 빛으로 테두리 진 기계적 틀 안에 가공된 닭의 형태가 끼워진 작품 「secondarity produced we 2」(2008)처럼, 전반적으로 인간의 사물화, 자연의 상품화로 특징지어 진다.

이후창_공허와 균열로 얼룩진 익명의 초상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235×50×40cm_2009

사물화와 상품화의 조건은 유기적 전체로부터 유린된 파편들이다. 죽음의 표본들이라 할 만한 이러한 파편들은 상실감을 낳지만, 이후창의 작품에서 이 상실감은 종종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전화되곤 한다. 상실이 상실로만 나타난다면, 예술적인 작업이란 끝없는 자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개별성과 고유함을 되찾고자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개별성'과 '고유함'이 모호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잃어버렸다고 가정된 총체성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동시에, 파편화와 욕망이 서로를 끌어안는 또 다른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파편화와 욕망의 직접적인 유대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 [앙티 외디푸스]의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기계의 구조적 통일이 파괴되고 생물의 특유한 개체적 통일이 없어지면, 기계와 욕망 사이에 직접적 유대가 나타나고, 기계는 욕망의 핵심에 이행하여 기계는 욕망하는 것이 되고 욕망은 기계화 된다'고 말한다. 욕망은 큰 덩어리를 이루는 유기체가 아니라, 신체와 기관들을 체험한다. 전체와 부분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를 전제하는 유기체 또한, 전통과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낯선 것으로 다가온다. 파편화는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 되었다. 주체와 객체의 온전한 전일성을 가정하는 19, 20세기의 세계관--가령 마르크스주의나 실존주의 같은--은 파편화된 이 세계를 억압과 소외로만 파악한다.

이후창_공허한 익명의 초상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62×19×10cm_2009

그러나 파편화되고 있는 현대의 예술작품에는 억압과 소외의 비전을 넘어서는 또 다른 욕망의 생산이 있으며, 이후창의 최근 작품 또한 그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길쭉하게 변형된 얼굴은 우수에 잠겨 있곤 하지만, 동시에 원시가면 같기도 한 이 마스크들은 제어할 수 없는 광기를 내비친다. 지속되고 있는 주제인 '상실의 시대'에 '타자의 시선'이라는 각론이 붙은 2009년 작업에서, 작가는 타자의 시선에 얽힌 욕망의 문제를 제기한다. 대부분 두상으로 나타나는 인체는 관객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파묻혀 있다. 거기에는 유리라는 매체의 특수성을 통해 드러나는 또 다른 얼굴의 응시가 있다. 그것은 동일자 내부의 타자이다. 동일자 내부의 타자는 이물감 보다는 상호작용적으로 어우러진다. 그것은 내부의 타자를 넘어서, '타자로서 자기 자신'(폴 리꾀르)을 향한다. 이전 작품과 달리, 타자는 자아의 한 부분으로 귀속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마치 기둥과 벽, 계단과 창 같은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진 집처럼 말이다. 대부분 한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부가 비치는 유리의 특성을 통해, 작품은 복잡한 시선의 교차와 유희가 일어나는 장(場)이 된다. 두상은 문, 또는 창문이 뚫려 있는 뾰족 지붕 집 모양의 판 안에 박혀 있기도 한데, 그 내부에서 바깥을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첫 개인전 작품에서 일회용 용기에 담겨진 인체상과 비교해 본다면, 집 같은 이 구조물 안에서 정립된 자세를 취한 인간은 안식을 찾은 듯하다. 그것은 인간을 보호하고 세계를 향한 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용기 안의 인체 같은, 이전 작품에서 느껴지는 밀폐성은 없다. 하지만 '존재의 집'(하이데거)인 언어가 그 상징적인 구조를 통해 주체를 얽어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주체 안팎을 규정짓는 이 틀은 부정적인 함의를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한다.

이후창_확장의 공간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144×62×15cm_2009

2009년에 제작된 작품 「타자의 시선」은 집 모양의 다각형 안에 가면 같은 얼굴 셋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의 지배적 언어의 산물로서 동질적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또 다른「타자의 시선」은 유리 덩어리 안에 얼굴 하나가 들어 있고, 외곽선은 또 다른 얼굴의 실루엣과 중첩 된다. 여기에는 세계를 보는 주체, 그리고 보여 지는 대상으로서 주체라는 이중적 시선이 공존한다. 유리 안에 새겨진 색의 띠나 흐름은 타자의 시선에 응결된 경직된 주체의 모습이나 내면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파고를 표현하는 듯하다. 미묘한 시선의 유희를 가능하게 하는 차원, 그리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형식적 특성은, 부피를 유지하는 단단한 겉면과 액체처럼 속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리 캐스팅 기법에 힘입은 바 크다. 작가는 유리 캐스팅이 '형상 내부에 마치 액체가 담겨있는 느낌'을 주며, '물성적 특성상 유리가 액체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고체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견고한 외곽선을 가지면서도, 빛을 투과하는 성질로 인해 자아와 주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을 보여줄 수 있다. 집 모양의 판 속에 두면의 얼굴을 가진 한 인간을 표현한 작품이나,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두 면의 얼굴이 하나로 연결된 작품은 분열된 주체나 분신의 테마도 연상시킨다. 이 테마는 거울 반사상과 관련 된 오래된 미학적 주제이기도 한데, 인간 형상이 유리 안에도 들어가 있는 이후창의 작품은 거울의 표면 너머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이후창_내부의 타자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69×39×12cm_2009

유리 내부를 흐르는 색의 선들은 인간의 확장으로서의 집, 또는 존재의 집이라는 언어적 유추와 어우러져 다양한 울림을 준다. 이후창의 작품에서 인간 상 내부에 흐르는 물결무늬는 인간이라는 소우주에서 망망대해 같은 대우주를 교차시키기도 하고, 색상에 따라 감정의 분출과 흐름, 고임 같은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빛과 어우러지는 색채는 색채가 억압될 수밖에 없는 조각의 특성을 초월하여, 작품을 다양한 정조로 물들게 한다. 인간이라는 형상과 어우러지는 색은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요컨대 관객은 성형된 유리 안의 검은색, 붉은색, 푸른색 등의 색상에서 각기 다른 심리적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색은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두상이 연상되는 실루엣 안에 검은 폐곡선들이 자리한 작품은, 검은 색이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 더불어, 공허와 균열로 얼룩진 익명의 초상 같다. 『상실의 시대-타자의 시선』전은 물신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아와 주체가 상실되었음을 비판하지만, '타자의 시선'에 방점이 찍힘으로서, 상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또 다른 차원을 예시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타자와 밀접하다. 인간은 모체와 분리되자마자 세계를 향해 걸어 나갈 수 있을 만큼 완벽한 동물과 비교해서 불완전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본능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동물과 달리, 유독 오랜 보호와 양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에겐 타자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필수적이다. 최초에 아이를 만든 것은 어머니인 타자이다. 어머니라는 타자는 주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라깡에 의하면 어머니 역시 존재의 결여에 기반을 둔 주체이다. ● 페터 비트머는 라깡 이론의 해설서 『욕망의 전복』에서 개인에게 속한 어떤 것은 타자를 경유해야만 지각될 수 있다고 강조 한다. 즉 자신의 사고, 생각, 표상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연유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느 한 시점부터 아이는 어머니도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없는 구멍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영역을 떠나 아버지의 영역으로 옮아간다. 아버지는 일정기간 동안 어린이에게 모든 지식을 갖고 있는 완벽한 인간, 언어가 체화된 심급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언어 역시 타자의 영역이다. 인간은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언어의 세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언어 또한 타자로서의 어머니처럼, 메워질 수 없는 균열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현대 언어학은 지시대상과 기호, 기표와 기의의 분리와 미끄러짐을 주장한다. 인간은 타자(어머니)에 의존하고 타자( 상징적 언어라는 부계적 영역)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이 타자들과는 영원히 합일 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욕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연되고 대체될 뿐이다. 타자는 동일자를 침식하는 외재적인 요소라기보다는, 그 내부에서 공존한다. 어머니나 언어로 다가오는 타자는 주체가 의존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이후창_타자로서의 타자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235×50×40cm_2009

이전 세기의 철학이나 미학이 소외나 상실을 이야기 할 때, 곧잘 사회를 초월하는 어떤 차원--원초적 자연이나 본질적 주체 등--으로 탈출을 꿈꾸곤 하는데, 그것은 모순에 가득한 자아나 주체에 허구적인 통일성을 부여하는 식의 화해, 요컨대 관념론적 해결책에 머물고 만다. 자크 라캉은 『욕망 이론』에서 타자에 침식된 주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를 전복하려 한다. 세상에 의해 보여 짐을 의식하는 주체는, 주체를 세상의 중심에 놓아 결국은 소외를 야기하는 고립주의로 벗어난다는 것이다. 라캉에게 타자의식은 곧 사회의식이다. 그래서 그는 타자 의식이 없는 시선을 사악한 것으로 간주하기 까지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자의 개입에 의한 주체중심주의의 해체를 소외라고만 볼 수 없다. 신학적 가정을 이어받은 근대적 주체 중심주의에 대한 해체는, 사유하는 주체로부터 욕망하는 주체로의 중심 이동을 야기했다. '타자의 시선'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 이후창의 작품은 조각의 보이지 않는 기본을 이루고 있었던 중심, 즉 신인동성동형론(Anthropomorphism)적 인간과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주체의 중심은 매순간 형국을 달리하며 출렁이는 욕망, 기원과 목적을 알 수 없는 욕망의 흐름으로 전치된다. 전시장 안에는 욕망과 정념으로 불투명해진 유리 인간들이 가득하다. 이후창의 작품에서 욕망의 흐름은 시선의 흐름과 밀접하다. 시각의 영역이 욕망의 영역에 연관됨을 주장하는 라캉은 인간의 시각은 보기만 하는 시선eye이 아니라, 보여짐gaze이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본다. ● 라깡은 『시선의 응시와 분열』에서 시각의 영역에 충동이 나타나는 곳은 바로 시선과 응시의 분열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분열은 의식의 자기 충족성을 거부한다. 『시선의 응시와 분열』은 의식의 자기 충족성, 요컨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특성을 부여받은 절대존재가 있다는 플라톤적 시각의 환상성을 비판한다. 라깡은 『왜곡된 형상Anamorphosis』에서도 주체의 특권은 내가 인식하자마자 내가 재현한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는 이분법적인 반영관계로부터 나온다고 보면서, 세계는 내가 재현해낸 것으로만 나타난다고 믿는 주관론적 입장도 비판한다. 라깡의 이론적 구도는, 플라톤식의 객관적 관념론이나 버클리 식의 주관적 관념론과 달리, 응시와 응시된 것 사이에는 틈이 있고 양자의 상호작용이 주체에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해준다고 본다.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는 시선으로 인해 인간은 대상과 실체를 일치시킬 수 없고, 욕망은 유예된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의 끝없는 유예과정이 바로 삶이다. 완전한 욕망의 충족은 죽음일 뿐이다. 이후창의 최근작에 나타나는 '타자의 시선'은 '바라봄과 보여짐의 엇갈림'이라는 라캉 식 주제를 도입하면서, 상실과 소외를 넘어 욕망하는 인간을 무대 위에 올린다. ■ 이선영

이후창_욕망_열성형한 유리, Cast glass_64×34×10cm_2009

glass people who are opaque due to their desire ● Lee, Hoo-chang, who has majored "plastic arts" and "glass formative arts", while he uses best the original characteristic the medium of glass has, he does not stick in craft skills that attach to decoration or usage. His work is a sculpture as a whole but, because of the characteristic of the medium of glass, it has distinctive color presentation which contains another figure and light, keeping a remarkable mass. This unique way of those pieces of glass is connected to the theme which is searching for requirement of human being. The sub-title of this exhibition is 'Age of loss-Other's view'. As maintaining the form of the title of 2008 exhibition, which was his first private exhibition, and 2009's 'age of loss', he goes into details. The 'loss' that he has focused on through his three exhibition means loss of reality and loss of originality caused by relationship between capitalistic production and consumption. His works such as a figure of human being in a disposable plastic bottle or amputated body in a assembly toy frame(2008) show the 'loss' through commercialization and fragmentization. The 'Age of loss' which is shown through cast glass, emitting red light and blue light, visualizes the requirement of human being, at times gruesomely, at times terribly. Like the work [secondarity produced we 2](2008), which is processed chicken figure stuck in the mechanic frame that is embellished with neon light, his works in this term are identified as commercialization of human being and nature. ● The resources of the commercialization and materialization are infringed fragments coming from organic whole. These fragments, which can be said as a specimen of death, bring forth 'loss', but this 'loss' often turns to be profound beauty in Lee's works. If the 'loss' appeared as just 'loss', the work of arts would be just endless self-torture. The artist longs to bring back personality and peculiarity of human beings through his works. However, we are leaving in the age in which 'personality' and 'peculiarity' are already obscured. His works show the efforts to bring back the whole that we suppose we lost and, at the same time, the other scenes that the fragmentization and desire hold close each other. Also,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fragmentization and desire is the theme of the book of Deleuze and Guattari, [L'Anti-Oedipe]. The authors said 'if the structural unity of the machine is destroyed and the peculiar unity of individual living beings,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machine and desire appears and, by the machine placed at the core of desire, machine became a desire and desire becomes mechanical. Desire is not an organism that forms a huge mass, but it experiences body and organ. Organism also, which supposes a hierarchy among the whole and parts, comes unfamiliar to modern people who is living in the different age with traditional one. The fragmentization, if we want or not, is indispensable life requirement. The world view in 19 or 20 century supposing the unity of the subject and the object, such as Marxism or existentialism, recognizes this fragmentized world as obsession and alienation. Those fragmentized modern arts, however, have another production of desire beyond the vision of obsession and alienation, and Lee's latest works also show this tendency. The lengthened faces look gloomy, but, at the same time, they, which looks as if primitive masks, show madness. In the 2009 works that named the continuing theme: 'Age of loss-Other's view', the artist raises a question of desire entangled with others' view. The bodies expressed by head, while they watch audiences, are stuck into its inside. There is another gaze that appears by the peculiarity of the medium of glass. It is the other in the same self. That other is united by interaction, not by heterogeneity. Beyond the other's inside, it gazes 'oneself as the other'. Dissimilar with prior works, the other looks as if it is involved in part of self. Like a house that is consisted of wall, stairs and windows. Most of them are formed with a mass, but, through the characteristic of glass that it shows its inside, the work becomes a field that contains crossing and entertainment of complicated views. The head is stuck in the panel of which figure is sharp-pointed house with door and windows, and we can feel the eyes coming from inside. Comparing to the body sculpture which is put in a disposable bottle at his first exhibition, the human of straight pose in the structure looks like he finds a place to rest. In the perspective of that it has windows toward world, there is no sealing up. However, considering the fact that language, which is 'house of being'(Heidegger), binds the subject through its symbolic structure, the frame that separates inside and outside of the subject cannot get rid of negative implication thoroughly. ● In his work 'Others' view' in 2009, three mask-like faces in a polygon are toward one direction. That shows similarity of human beings as a production of governing language of society. But, in the other 'Others' view', a face is in a mass of glass and the frame looks like another face. There exists ambivalent view which means subject that watches world, and that is watched. The line of color carved in the glass or flow maybe expresses the figure of stiffen subject that is congealed by others' view and wave height of emotions fluid inside. The dimension that makes entertainment of subtle view possible and formative characteristic that has we see what we could not see owe its advantage to the solid surface maintaining its volume and to the casting glass that allows us to see its inside like liquid. The artist said, 'the casting glass is felt like inside the figure containing liquid, and it is possible because of the characteristic of glass, which glass is matter that has state of liquid'. Whereas it has solid frame, since it has characteristic of the pass of light, it is possible to show its changeable and fluid space which exist inside self and the subject. The work that expresses two faces human in the house-like panel and the work that expresses connecting faces that is toward other sides remind us of divided subject or theme of the alter ego. This theme is also an old aesthetic theme related with mirror reflection. The Lee's work that contains human figure in the glass brings audiences' view beyond the surface of the glass. ● The lines of color flowing inside the glass give various feelings, relating with linguistic analogy which is house as extension of human and house of being. In his work that streams inside the human figure sometimes makes a cross of the big universe in the small one, and sometimes gives us exposure, flow and staying of emotion depending on its colors. The colors getting joined together with light transcend the characteristic of sculpture that should be obsessed by color and make the work be dyed by various moods. The colors that are mixed with human figure show psychological and symbolic effects. Depending on the colors inside the formed glass, audiences can get different images. Colors sometimes form a shape. The works that is placed a looped curve inside a silhouette that reminds of head, with the negative feeling that black color has, looks like an anonymous portrait stained by emptiness and crack. 'Age of loss-Others' view' criticizes the loss of self and the subject in the fetishistic capitalism society but, as the point is at the 'Others' view', it presents another dimension of human being beyond the 'loss'. Here, a human being is closely related with the other. A human being is born imperfectly, dissimilar with other creatures that can walk alone as soon as they are born. Dissimilar with animals which live by their instinct, a human being is needed long time care. Thus it is necessary for human beings to be loved by the others. In the beginning, one who makes a child is a mother, the other. The other called as mother has been there before the subject is born. But, following Lacan a mother also is the subject that is based on the lack of being. Peter Widmer , in the manual of Lacan's theory [rollover of desire], enhanced something that a personal has can be recognized by others. One's thoughts and images should come through the others. From a certain point, however, one realizes that mother also has the hole which cannot give him the answer, like the others. Then he moves from mother's area to father's area. Father plays a role of perfect being who has all wisdoms and role of 심급 who accumulates language for a while. But, the language is also the other's area. A human being is born in the world of language that he does not create. The language, like a mother as the other, consists of unfilled cracks. Modern linguistics insists the fail and seperation of the target of direction and sign, symbol and 기의. Human being depends on the other and can be defined by the other but, there is a gap between them. Thus, desire is never filled. It is delayed and substituted. The other is not the outside fact that erodes the same person, but the fact that exists inside. Because mother and the other coming with language are society itself on which the subject has to depend. When philosophy and aesthetics in the prior century have mentioned alienation and loss, people usually dreams an escape to a certain dimension that transcends the society, such as primitive nature or essential subject. And it stands as so-called idealistic solution that is reconciliation which grants unrealistic unity to self or subject that is full of contradictions. In the {Theory of desire}, Jacques Lacan tried to turn over thought that regards eroded subject as a negative one. the subject who is aware of being gazed by the world, as putting the subject on the center of the world, gets away from isolationism that causes alienation. To Lacan, the consciousness of the other is the consciousness of society. Thus, he regards the view without other's conscious as an evil thing. In this context, we cannot regard dissolution of subject centrism by others participation as alienation. Dissolution of the modern subject centrism that takes over theological supposition, induces the movement from the thinking subject to desiring subject. The Lee's work that actively employs 'Others' view' is a little far from Anthropomorphism human being, which is the unseen base of the sculpture. In his work, the core of the subject is changing every time and changed into fluid desire, in other word, desire that has no origination and goal. There is full of glass humans by obscured by desire and emotions in the exhibition. In Lee's works, the flow of desire is close to the flow of view. Lacan, who argued the connection between view's area and desire's area, regards human's sight is not just eyes to see, but thing that is related with gaze. Lacan, in the division and gaze of view, the place that occurs an impulse in the area of sight is division of view and gaze. division and gaze of view criticized the fantasy of Plato's view that there is a absolute being who can see everything. In the Anamorphosis, Lacan criticized the position of subjectivism that the world appears with those one reproduces, seeing that the privilege of the subject comes from relationship of dichotomous reflection that makes what I reproduce mine, as soon as I realize them. Lacan's theoretical composition, dissimilar with Plato's objective idealism or Berckly's subjective idealism, looks it as if there is a gap between gaze and gazed thing and the interaction between them provides the subject with more possibility. Because of the view that is condemned to be missed, a human being cannot accord an object and reality, and desire is delayed. But, this endless delaying process is life. Only death can meet fulfillment of desire. 'Others' view' that appears in the Lee's latest works brings a human being that desires something beyond loss and alienation on the stage, employing Lacan's theme 'crossing of gazing and showing'. ■ LEESEO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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