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낙원

김은현展 / KIMEUNHYUN / 金殷顯 / painting   2009_1222 ▶ 2010_0102 / 월요일 휴관

김은현_홀로신화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9

초대일시_2009_1222_화요일_05:00pm

2009-201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시선-욕망-여자-사회-김은현론 ●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의 복사가 아니라 상징이다. 그리고 예술은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적 회의의 도구이다. 예술은 이러한 해석에 의해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 본질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완성시켜버리면 예술은 더 이상 정신의 최고욕구가 아니게 된다. 이미 현실 자체가 이미지, 구경거리, 환영, 쓸데없는 허구가 아닌 것이 없는 지금, 김은현의 현실반영적 작품은 자기지시성의 형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김은현의 작품 시리즈를 보면, 대개 별 볼일 없는 장소에 자기 혼자 있으며, 그 그림 속에는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존재하기는 하는데, 자세히 보면 그것도 자기 자신들이다. 여자라는 스스로의 주인공 그녀는 전형적인 여자적 시선을 가지고 전형적인 여자적 장소에 있다. ● 주인공 자아는 정면을 보지 않고, 옷 무늬도 죄수복같은 무늬의 단정한 디자인을 똑같이 매 그림마다 복사한다.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여성적 색깔은 평면회화라는 전통적 기술법과는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전통적으로 언어나 그림과 같은 의사의 표현매체는 그 구조와 그에 사상을 통해 가부장적 태도에 상당한 이바지를 해왔었다. 남성은 말하면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반면 여성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언어와 표현을 씀으로써 그 언어를 통해서는 자신을 위한 의견을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의사를 표현하려는 여성은 어떤 큰 단체나 흐름의 구성원으로써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인양 행동해야 했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역사적 부채를 어떤 식으로든 해소하지 않는다면, 기술하는 방법과 내용의 괴리는 점점 더 진행될지 모른다.

김은현_진화_캔버스에 유채_116.5×90cm_2009

몇몇 작품 속에서 김은현의 자아는 그림 속 액자적 이중 스토리를 제3자적 시선으로 본다. 그리고 그 삽입된 스토리의 주인공도, 등장인물 모두 나다. 그러니까 중심자아(제3자적 단독자아)가 있고, 중심자아가 쳐다보는 대상스토리의 등장인물들인 자아'들'이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작가의 글에서 '유목적 자아'나 '자기복제'라고 언급했다. 어쩌면 그것은 스토리의 중심이 나이길 바라는 사회로의 문 앞에 선 질투로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작가가 말하는 유목적 자아나 자기복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직 진출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아직 그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소외감,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의 스토리와 자기들만의 리그에 대한 부러움, 더하여 자기가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어 시선을 받는 자이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그러한 사회참여에 대한 숨은 욕망은 아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사회의 중심으로 진출한다면, 작품에서 보이듯 제3자적 시각의 중심자아가 삽입된 스토리라인을 쳐다보는 구조가 아니라, 아마도 이러한 중심자아가 대신 삽입된 스토리 속의 주인공이 자기중심자아 즉 진짜의 주인공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러할 것이라는 예측은 그가 쓴 미래 작업에 대한 향방을 암시하는 글("현재까지의 작업이 밤거리의 '타자'들을 관망하는 태도로 무의식적 현상 속에 의식속의 '나'를 찾는 작업이었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급격한 변화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김은현_Dream World_캔버스에 유채_162.2×266.6cm_2009
김은현_홀로낙원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9

이러한 사회 전반의 변화는 문화 현상은 물론 인간의 사고방식과 학문체계, 나아가 세계와 진리를 이해하는 인식 틀의 변화까지 초래하고 있다. '위기'란 갈라진 길의 분기점에 서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 우리들은 "어디로?"라는 결단을 강요받고 있다. 그것은 작가도 고스란이 느끼는 사회적 압박과 부담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앞으로 전개해 나갈 작업은 나를 희화 하면서, 내가 나를 갖고 놀고 바라보는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이는 그에 이어서 언급한 88만원, 20대에 대한 고민을 언급한 것과는 매우 유리적인 자세다. 일용잡직 아르바이트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 세대에게는 어떤 희망이 가능한가? 라고 스스로가 질문하고서는 "시간과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탐구해 보겠다"는 다음 시리즈를 답변으로 준비한다는 것은 걸맞지 않다. 오히려 20대 88만원 세대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자유로운 자신으로의 유희의 수준을 넘어, 작품을 통해 자기가 다른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고 그 세상에 참여하고 싶고, 그중의 하나가 자신이고자 했던 마음에 대한 연장선상적 주제와 표현방법을 이끌어내야 한다. 청년은 동시에 기성세대의 후계세대이자 풍부하고 값싼 자원이다. 한 사회의 청년으로써 어떻게 돌아가는 사회의 굴레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김은현_혼자하는 소심한 전쟁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9

이 시대는 작가에게 사회과학자적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 작가도 짚었던 이 시대의 불안과 무관심의 요소는 무엇인가? 현대인은 대개 사회이슈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무관심하다. 세계대전 이전에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관한 마르크스적 사고는 대부분에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 위협받는 가치가 분명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존중했고, 그것을 위협하는 구조적 모순도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경험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에는 그전까지는 위협받고 있는 가치가 가치로 널리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위협받고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있다. 대부분 사적인 불안이 정식화되지 않은 채 지나가고 있으며 수많은 공적불안과 구조적 중요성을 갖는 결정들이 공적 쟁점이 되지 않고 있다. 이성과 자유 등 고유의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불안과 무관심이야말로 쟁점이자 특징이다. 위기조차도 경제라는 외적영역에서 개인의 삶의 질과 관련되어버렸다. 개인적 삶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아동노동이 아니라 만화책이, 빈곤이 아니라 대중여가가 중심 관심사가 되었다. 이렇듯 사적 고민들 뿐 아니라, 수많은 중대한 공적 쟁점이 쉽게 서술되는데 이런 것은 현대사회의 중대한 쟁점들과 고민들을 회피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와 같다. 그러므로 이 시대 작가는 이시대의 불안과 무관심의 요소를 명백히 밝혀내는 것이 숙제고 요구받는다.

김은현_홀로낙원_캔버스에 유채_99.6×80cm_2009

이번 전시의 그녀의 신작들은 초기 혼자 놀기와는 조금 다른 여러 가지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이것들이 초기 작품의 베리에이션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 몇 가지 고려해 볼 것들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에는 충분히 많은 참여와 공감이 필요한 이슈가 있다. 예를 들면 김은현 작가처럼 여성으로서 여성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라면 미술의 역사가 교육하고 강화했던 가치들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의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남성적 지각과 여성적 지각의 차이는 문화적, 사회적이며 역사적으로 습득된 성의 역할에서 오는 차이에서, 또는 나아가 이 양자의 결합에 따라 야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성을 일방적인 타자로서 신비화하거나 유혹하는 존재, 본능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남성적 문학과 예술에서의 여성상을 비판한다거나 여성을 일방적인 미학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는 문화적 관념이나, 남성적문화 안에서 잊혀진 여성적인 전승과 문화적 형식, 남성에 의해 각인되고, 남성의 타자화된 모습으로 반영된 여성상에 대한 여성의 확고한 자아진술에 대한 열망을 작업으로 기대할수는 없을까. 이때 여성이라는 문제 하나만을 쟁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 사회 계층 그리고 인종과 문화적 배경 등 모든 사회적 문제를 고려함으로써 더더욱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별되는 자신만의 차별성을 이해할 수 있다.

김은현_홀로낙원_캔버스에 유채_120.3×170cm_2009

작가가 앞으로 실현하고자 할 '사회를 곁눈질하며 혼자 뛰기를 할 수 있는 곳, 유목을 실행 할 수 있는 곳, 예술이 이루어 질 수 있는 '탈영토화'가 실현될 수 있는 곳. 현실 속에서 진정으로 혼자 뛰기, 놀기를 실현 할 수 있는 곳으로의 역행'들은, 이러한 강한 도전을 통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들의 애매모호함과 당혹스러움, 쩔쩔맴은 현대세계와 오늘날 미술에서 반복되는 현실과 환상, 기억과 역사의 교환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모호함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작가의 개인적 공간(작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작가 각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 김별다비

Vol.20091219i | 김은현展 / KIMEUNHYUN / 金殷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