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식 增殖 proliferation

신한철展 / SHINHANCHUL / 申漢澈 / sculpture   2009_1202 ▶ 2009_1220 / 월요일,공휴일 휴관

신한철_증식_폴리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공휴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크링 CREATIVE CULTURE SPACE KRING 서울 강남구 대치동 968-3번지 Tel. +82.2.557.8898 www.kring.co.kr

구의 자유로운 미적 변주 ● 인간이 상상해내고 만들어 낸 형태 중에서 구(sphere)만큼 비인간적이면서 또한 인간적인 형태가 있을까. 구는 개념적으로 완전할 뿐 현실에서는 완전치 못하다. 우리의 개념 속에서 완벽한 형태로 사유될 수 있는 구와 달리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구는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완벽하게 만든, 아니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구체(球體)의 형태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심기가 불편해진다. 완전에 대한 인간의 강박증을 자꾸만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다만 '유한자의 유한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구는 인간적일 수 있다. 구의 작가 신한철. 이제 일곱 번째 치르는 개인전이건만 여전히 구를 등장시키고 있는 그를 보니 왜 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완벽에 가까운 이 부담스런 형태에서 천착하려면 다소간의 편집증적 성향이 있어야할 듯싶다.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완벽한 구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머리 속에 있거나 수학 공식 정도가 아닐까. 혹이나 자연계의 모든 형태가 원통형, 원추형, 그리고 구로 환원될 수 있다고 한 세잔느의 말과 신한철의 구를 연관시켜보겠다면 아예 관두는 편이 좋다. 신한철의 구는 세잔느의 환원적 자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신한철_증식_폴리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09

신한철은 재현이나 환원, 수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초기작에서는 스스로를 피타고라스의 후예로 자처하는 듯했다. 조형 행태가 아닌 기하학적 결과물에 가깝다고나 할까. 마치 그는 완전체의 매력에 빠져 구에 대한 수학적 공식과 그 시각적 체적화에 대한 갖가지 이론이 적힌 비서(秘書)를 들고 고독한 작업에 빠진 피타고라스의 제자 같다. 그러고 보니 작업실에 앉아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가 떠오른다. 알 수 없는 고민에 휩싸인 주인공의 얼굴을 보았는가.-물론 그 얼굴은 수학자일 수도 미술가일 수도 있다. 필연적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있는 돌을 매일 힘겹게 끌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신한철은 이상적인 구를 물질화하고 체적화 하는 '완전을 향한 불완전한 작업'에 몰두해왔다. 물론 이 딜레마는 무의미한 반복에 그치지 않는다. 내적인 성찰이나 개인적인 득도를 위한 방편은 더더욱 아니며, 그의 제스추어는 그 자체가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유한자(有限者)는 본질적으로 절대자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이를 에로스라고 말했던가.

신한철_증식_폴리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09
신한철_증식_폴리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09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노력한다 한들 허용할 수밖에 없다-신한철의 구. 다만 그의 구에 대한 에로스는 나르시시즘인 것에 가까웠다. 처음엔 그와 구만 있을 뿐 그 사이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랬던 그에게 태도의 변화가 보이면서 슬슬 관객을 불러들이기 시작하더니, 이번 전시에는 관객과의 공유에 상당한 노력을 할애하고 있다. 구에 대한 패러노이드에서 벗어난 신한철은 점점 무거움과 진지함에 대한 강박 관념을 풀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강박적인 구가 아니라 관객에게 장난스레 말을 건넬 줄 아는 구를 보여준다. 이 같은 변화는 놀이적 접근법을 통해 가능해졌다. 작품 구성과 실험을 더 완벽한 미적 형식 속에서 빚으려 애쓰는 모더니스트의 면모만큼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신한철이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변형을 통한 놀이적 접근'을 강화했다. 전과 달라진 조형적 특징이라면 거울효과를 낸 표면과 원형 구멍이 뚫린 전면. 특히 거울처럼 반사하는 수퍼미러로 제작된 작품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구가 맞닿아 생기는 이미지를 반복 투영, 각 접점으로부터 무한한 구체를 만들어 낸다. 마치 분자구조처럼 여러 개의 구가 집적된 작품에 이르면 무수한 접점을 생성하며 구에 비쳐지는 모든 이미지-응시하는 관객을 포함한-를 그 속으로 빨아들인다.

신한철_증식_폴리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09

그런데 중력의 법칙을 조롱하듯 경쾌하고 가볍게 공중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왜 육중한 조각의 몸을 가볍게 하려한 것일까. 그리고 역삼각형의 불안정한 구도로 대지를 박차고 하늘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 편협한 시각으로 모든 조각을 일별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조각은 재료적 한계로 인해 스스로를 규정해왔으며 조각의 발전은 그 한계를 조건으로 받아들인 물성 탐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재료적 한계와 조건이 강하면 강할수록 작가들은 조각의 천형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이제 신한철은 작품을 짓누르는 조각의 조건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양이다. 열린 구조로서 구를 향한 이 같은 의지와 그 의지를 다시 놀이의 코드로 전환시키는 낭만적 태도는 구멍이 숭숭 뚫린 구에서 발견된다. 전체에 구멍이 뚫려 표면 뿐 아니라 내부까지 대기로 채워진 구. 그 속에서 신한철은 물성의 극복을 자연스럽게 실험하면서 비조각적인 방식을 취한다. 얼마나 육중한 구의 완벽함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작가 스스로 선택한 구였기에 그것을 해체하거나 파괴하고 싶을지라도 쉬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을 게다. 욕망이 있더라도 이유 있는 미적 근거나 이런저런 대의명분에 갇혀야 했으리라. 작가는 '구멍을 뚫어 속이 훤히 비치니 내 마음까지도 시원하다'며 웃었다고 한다. 무겁고 거추장스런 조각의 육체와 관념의 옷을 벗어버린 듯 작품은 스스로를 비추고 비워냈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원형 창을 낸 비어있는 구체에 또 하나의 작은 구를 담음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파괴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한 것을 보니, 그가 시원하다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린 기분도 알 것도 같다.

신한철_증식_폴리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09

신한철은 구의 단일한 형태적 요소를 반복하거나 구의 속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당연히 그는 변형의 논리를 구성하게 되었을 것인데, 그러한 변형의 질서 안에 놀이적 측면이 배어있음을 감지하게 된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놀이적 측면을 통해 과감한 형식 실험을 감행하는 에너지를 얻게 된 것은 물론 과거에 호평을 받았던 작품의 틀 속에 갇히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구의 군집과 배열, 구성을 통해 오브제로서 구의 자유로운 미적 변주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번 전시가 전과 다른 점이라면 육중한 조각의 조건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자유의지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을 '놀이'라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완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거울 효과를 내는 수퍼미러 작품이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뻥 뚫린 구체는 여전히 모뉴멘탈한 측면이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이에 얽매이진 않는다. 이쯤 되니 구의 다이나믹한 형태적 변주에 들어간 그의 작업이 다음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는 한동안 구에 대한 다양한 형태 실험에 빠져있을 듯싶다. 그리고 그의 구는 이야기를 가질 것이다. ■ 김유석

Vol.20091220d | 신한철展 / SHINHANCHUL / 申漢澈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