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Blower

최윤정展 / CHOIYOUNJOUNG / 崔允程 / painting   2009_1215 ▶ 2009_1231

최윤정_Mind blower_캔버스에 유채_227.3×545.4cm_2009

초대일시_2009_1215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문화일보 갤러리 MUNHWAILBO GALLERY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82.2.3701.5755 gallery.munhwa.co.kr

최윤정의 회화론 ; 영혼과 감성의 회복실로서의 회화 ● 최윤정의 세계는 밝고 따듯하고 화사하다. 최소한의 위험까지 제거된 모든 종(種)들이 바로 그 세계로부터 걸어 나와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사자와 호랑이, 곰조차 맹수의 공격성이 거세된 채다. 부드럽게 주름진 대지(大地), 또는 대양을 건너오는 얼룩말과 코알라와 영양 사이로 여러 종의 새들이 자유로이 날고 있다. 그들 중 어느 종도 다른 종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어떤 개체도 다른 개체들에 의해 소외되지 않는다. 종들 간의 대립, 개체들 간의 충돌은 없다. 그들이 세계로 걸어 나오는 내내 이 비현실적인 평화를 위협하는 어떤 현실적인 징후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불화없이 하나의 방향을 지향한다. 하늘과 대지는 파스텔 톤의 우아한 변화 안에서 모호하게 하나가 된다. 때론 대양과 대륙조차 서로를 배타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모든 종들의 공존이 조금도 실현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이 평화로운 행렬의 한 가운데 커다란 두 귀를 펄럭거리며 느릿하게 보폭을 옮기는 코끼리가 있다. 자주 등장하는 코끼리는 작가의 존재의 연장이자 분신이다. 이 신비로운 매개작용을 통해 작가는 이 연대와 일치의 세계로 합류한다. 세계의 모든 '존재-형제들'과 하나를 느끼는 이상향과 교통한다.

최윤정_Good-relation_캔버스에 유채_지름 120cm_2009

그러므로 이들, 곧 코끼리와 사자와 얼룩말 등을 단지 스팩터클의 질료로 전락해버린 동물원의 측은한 식구들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그토록 짓눌림과 두려움 없는 세계를 갈망하는 우리들, 극심한 심적 불안과 상시화된 스트레스, 마음에 켜켜이 누적된 트라우마로부터의 자유를 절규하는 현대인의 자화상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최윤정의 공간이 왜 그토록 비현실적이며, 비현실적으로 밝고, 따듯하고, 화사해질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야말로 평화를 강탈하는 요인들, 인간미를 고갈시키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작가가 특별히 고안한 임상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타인들과 유리되도록 만드는 병적으로 확장된 자의식을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영혼과 감성의 회복실로 말이다. 최윤정이 화가와 시인의 직관으로 알아차린 사실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회화 작업(painting works)이 마음의 고조된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영혼에 난 상처의 예민하게 돌출된 부위들을 공굴리는 것과 관련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한 그의 시도는 크게 볼 때 두 개의 시각적 기제에 의해 지지되고 유지된다.

최윤정_Good-relation-Dreaming_캔버스에 유채_지름 80cm_2009 최윤정_Good-relation-And open my eyes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09 최윤정_Good-relation-Dreaming_캔버스에 유채_지름 80cm_2009

그 첫째는 때론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연하고 온화한 핑크 계열의 색이다. 최윤정은 자신의 색조를 "어두움을 가리는 기능을 하는 혼탁하면서도 빛을 닮아있는 색"으로 진술하고 있다. 실제로 이 세계는 충분치 않은 일사량과 그림자의 부재, 그로 인한 양보된 활기와 그러한 가운데서도 사물의 식별을 충분히 지원하면서 지나치게 눈을 자극하지 않는 온후함, 따듯함, 아련함과 경미한 몽롱함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부조리한 현실이 아직은 다 도래하지 않은 미명의 시간대! 일본 작가 마리코 모리처럼 "극락은 핑크빛일 거야"라고 외치진 않더라도, 최윤정의 마일드 핑크(mild pink)가 그 깨지기 쉬운 세계를 냉정한 바깥 세계로부터 따듯하게 격리시키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 조절된 빛에 의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덜 분리주의적인 방식으로 사물들의 형태를 드러낸다. 동물과 식물들은 이 색조가 허락하는 낯과 밤의 중용, 빛과 어두움의 분기점 위에서 주변과 훨씬 더 연대적인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이로 인해 종과 종 사이, 개체와 개체 사이의 경계는 충분하게 완화된다. 실제로 각 개체들의 색은 부분적으로 그들의 자연색을 지니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마일드 핑크의 헌혈에 의해 자신의 정체적 본성을 감퇴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색조혼합이 모든 개체들에서 일어남으로, 각각의 것들은 용이하게 서로에게 삼투되는 타자수용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색채심리학적 맥락에서만 보더라도, 이처럼 연하게 실현된 핑크는 모두에게 동정심으로 다가서는 박애주의자의 심성에 근사한다.

최윤정_Mind blower_캔버스에 유채_각 지름 90cm_2009

둘째는 수평성과 수직성의 절제다. 이로 인해 최윤정의 세계는 더욱 긴장 완화, 안정감, 휴식의 느낌, 그리고 느림과 관계한다. 지적 각성이 아니라 위로의 정서에 근사하고, 명징한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의 몽롱함에 다가선다. 이로 인해 긴장감, 스트레스, 순환장애가 보정된다. 최윤정의 회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지평선이나 수평선 때문에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직적 질서가 전적으로 부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은 수평적으로 배열되고 전개된다. 수평성은 조형적 특성을 넘어 그의 회화론 자체이기도 하다. 색과 빛, 톤과 묘사의 정도에 있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동등하다. 동일한 빛이 사물과 배경을 차별없이 조명하며, 차등없는 색조를 공급한다. 그의 회화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론적 위상이 또한 그렇다. 질서는 있으되, 그것들 모두는 (거의) 동등한 지위를 나누어가지고 있다. 동일한 지평에서 출발하며, 동일한 행보로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단지 다른 것들의 변두리로서만 남아있지 않다. 어떤 사물도 다른 사물들의 도구적 지위로 물러서지 않는다.

최윤정_Mind blower_캔버스에 유채_162.1×260.6cm_2009

수평성은 조형적 특성을 넘어 그의 회화론 자체이기도 하다. 색과 빛, 톤과 묘사의 정도에 있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동등하다. 동일한 빛이 사물과 배경을 차별없이 조명하며, 차등없는 색조를 공급한다. 그의 회화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론적 위상이 또한 그렇다. 질서는 있으되, 그것들 모두는 (거의) 동등한 지위를 나누어가지고 있다. 동일한 지평에서 출발하며, 동일한 행보로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단지 다른 것들의 변두리로서만 남아있지 않다. 어떤 사물도 다른 사물들의 도구적 지위로 물러서지 않는다. 최윤정에게 회화는 '순수조형'이나 '탐미'의, 그러니까 현학주의나 장식욕구에 대한 무기력한 부응이 결코 아니다. 이 세계는 작가에게 특별히 불가피했던 비현실성과 몽롱함, 그러나 섬세하게 조율된 부드러운 신비주의에 의해 지지되는 세계다. 그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의 한 쪽 눈을 가리거나, 때론 화면의 도처에서 출몰하는 중첩된 동심원의 형태는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즉 현실과의 확고한 분리를 확증하는 기호에 해당된다. 그것들은 현재가 미래와 접촉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환타즘이 현실로 고개를 내미는 출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작가에겐 회화 자체가 이미 '다른 차원'과의 상관항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캔버스 자체가 이미 그것-다른 차원- 으로 향하는 출구이자, 그것이 도래하는 입구인 셈이다.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정화(淨化)하고 치유(治癒)하는 가능성의 통로! 작가는 자신의 회화론의 저변이 바로 정화와 치유라고 밝힌다. 정화는 이 세계가 싫은 게 너무 많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치유는 한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 너무 많이 피흘리거나 체념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최윤정_Mind blower_캔버스에 유채_130×390.9cm_2009

세계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다. 대립하고 배제시키거나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포용하거나. 최윤정의 회화는 비판의 날을 세우고 고발장을 던지는 대신, 스스로 무장을 풀고 바리케이트를 걷어치우는 태도의 산물이다. 세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전쟁과 승리가 아니라, 정화요 치유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작가가 긴장을 누그러트리는 톤, 따듯한 색조, 미명의 모호함, 수평적 질서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작가가 훨씬 덜 이성적이고 더 열등한 존재들인 동물들을 이 세계의 대변자로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최윤정이 동물원의 발명자들이 아니라, 그곳에 수감된 존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반증이다. (적어도 아직은) 그의 그림에서 동물원의 발명자들은 목격되지 않는다. 새삼 최윤정의 고백이 환기되는 대목이다 : "나에게 예술은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명상하는 일입니다." ■ 심상용

최윤정_Mind blower_캔버스에 유채_130×193.9cm_2009

A discourse on paintings of Choi Yoon Jung; painting as a recovery room for soul and emotions ● Choi Yoon Jung's world of painting is bright, warm and luxurious. All the species, without the slightest danger, walk out of that world and approach us. In that world, even lions, tigers and bears are not ferocious beasts any more. There are good earth and ocean on which zebras and koalas run and birds of all sorts fly. There is no domination, antagonism, conflict or alienation among animals. While they walk out of that world, there is no realistic omen that threatens the unrealistic peace. They just walk along to one direction without any discord. Sky and earth are ambiguously united in elegant change of pastel tone. There is no discord even between oceans and continents. In that world, coexistence of species is perfectly possible. ● In this peaceful procession, there is an elephant walking slowly flopping its big ears. It appears quite often and is the alter ego of the artist, the extension of the artist's existence. Through this mysterious medium, the artist joins in the world of solidarity and accord, and communicates with an ideal world where every being is a brother with each other. ● In this world, elephants, lions and zebras are not those miserable creatures locked up at the zoo. They are self-portraits of modern people who crave for freedom under the oppression of constant anxiety, fear and accumulated traumas. This is a clue to understanding why Choi Yoon Jung's world of painting is so unrealistically bright, warm and luxurious. The artist creates this clinical world to get rid of the elements that dry up human quality and destroy peace. She creates it as a recovery room for soul and emotions to cure inflated egos that causes alienation of beings. ● What she realized by the intuition of a painter and poet, was that her painting works should be related to relaxation of tension and smoothing down scares on souls. She achieved her such purpose through two visual mechanisms. ● First, she uses pinky colors which are so mild they are close to white. She describes her colors as 'dim-light-like colors which hide darkness.' In fact, there is not much light and no shadows in her works and the colors of her works can be explained as warm, vague, obscure, which are not stimulating to eyes but bright enough to see things clearly by. A gray dawn to which unawakened and absurd reality has not reached yet! She does not cry out loud 'the heaven must be in pink color' like the Japanese author Marico Mori, but she surely separates the delicate world from the harsh reality by her mild pinky colors. ● Through this adjusted color, all the creatures in the world appear in the least segregated form we can imagine. Animals and plants are given new identities that allow more solidarity with each other in the borderline colors of night and day and brightness and darkness. And difference between species is sufficiently relaxed. In fact, some objects have their natural colors but by the blood transfusion of pink color, their identities are obscured. Such color complexation puts creatures in an osmotic position in which they accept each other more easily. In terms of color psychology, such mild pink is associated with compassion and altruism. ● Second, she is moderate in using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s, which creates feeling of stability, relaxation, slowness and rest. It is more about consoling emotion and unconscious haziness than intellectual awareness and clear consciousness, thereby tension, stress and circulatory difficulty are relaxed. And it has something to do with horizontal lines which frequently appear in her works. She uses vertical lines as well but uses horizontal lines and horizontal structures more frequently. ● Horizontal lines and horizontal structures are not just the characteristics of her works but they are gist of her artistic idea. She uses color, light and color to express equality of every being. The same light illuminates objects and background equally and evenly, and provides an equal tone. Everything is depicted in that vein in her works. An order exists but it is not vertical but horizontal order. They are going to the same direction in the same pace. Nothing is left out and nothing is a means to other. ● For Choi Yoon Jung, painting is not a passive compliance with her desire for pedantry, decoration or aestheticism. Her painting world is supported by the unrealistic vagueness, well-tuned soft mysticism. Animals with one of their eyes covered up and reiterated concentric circles that appear in her works frequently signify the distance between that world and the reality, and they also signify the contacting point between present and future and exit to phantasm. However, what is more important to the artist is that her painting is associated with other dimension. Her canvas is her vehicle to the other dimension. A vehicle for purifying and curing reality! She says primary purpose her work is purification and cure; purification because this world is filled with disgusting things and she wants to run away from it, and cure because too much hardship and resignation are required to live as a human being. ● We can react to this world in two ways; fight against or embrace. Choi Yoon Jung's paintings seem to choose the latter putting away barricades and giving accusation. It is an inevitable choice if you recognize that what the world needs is not war and triumph but purification and cure, and that is the inevitable reason for the artist to use relaxed tone, warm hue, ambiguous colors and horizontal structure. Additionally, the artist uses animals, which are inferior creatures to humans, as the representatives of that world. She focuses not on the builders of zoo but on animals locked up at the zoo. I have not seen any builder of the zoo in her paintings yet, which reminds me of her confession: "For me, art is not making something but meditating on beings." ■ Sihm, Sang Yong

Vol.20091223i | 최윤정展 / CHOIYOUNJOUNG / 崔允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