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세계를 위한 근본 대책

2창수展 / LEECHANGSU / 李昌樹 / painting   2009_1217 ▶︎ 2009_1223

2창수_Duchamp의 체스-물고기와 행글라이더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41×60×20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이공갤러리_IGONG GALLERY 대전시 중구 대흥동 183-4번지 Tel. +82.42.242.2020 igongart.com

확대된 영역 실험 : 투시적 접근을 통한 회화적 한계 벗어나기 ● 현재 그의 작업은 레이어를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3차원적 형식을 구현하면서 근본적으로 회화 장르에 대해 그가 추구하거나 고민해왔던 지점을 첨예화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로서 그가 내용적・형식적 모티브로 '시간성'에 대한 관심에 보다 천착했었다고 본다면, 현재는 이에 대한 무게중심이 회화의 근본 형식에 대한 주된 고민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업과 유사한 방식에서 레이어 효과를 작업적 모티브로 활용하는 기존 작업들은, 주로 공기원근법적인 요소와 맞닿아 이로써 그 깊이감이나 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동시에 형식적으로 회화와 입체의 경계를 탈피하고자 애쓰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창수의 작업은 원근법적인 요소로서 레이어의 겹침 효과를 이용하기 보다는 파편적인 평면들의 연속, 위치적으로 계산된 이미지들의 순서, 레이어와 레이어 간 간격에서 비롯되어 다각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면 이미지, 그리고 그것이 회화임을 강조하는 둣한 색면 표현 등에서 레이어를 활용한 기존 작업들과는 분명 주목하는 지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회화'임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테두리를 빗겨가지 않는 전략에서 평면 형식에 대해 그가 견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을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2창수_Duchamp의 체스-고추나무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67×35×20cm_2009
2창수_Duchamp의 체스-수박의 삼각구멍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34×34×9cm_2009

소재적으로 주변 배경을 제거하고 생물을 포함한 단일한 일부가 작품에 표현된다. 이 경우 관조로서의 방식이 아닌, 관찰로서 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경우로 간주할 수 있는데, 실제 각 레이어는 사물의 전체가 아닌 부분들을 순차적으로 묘사한다. 순차적인 묘사는 이미지를 쪼개는 방식, 각 구성위치, 쪼개어 놓은 부분들이 전체로 통일되어 보여지는 효과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산에 입각한 흔적이다. 한편 레이어로 구분된 각 이미지들의 부분 컷은 각각이 두께감있는 색면 표현으로 이루어지기에, 정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평면 회화로서 고스란히 그 특성은 유지된다. 그러나 분명 레이어 겹침에서 효과를 취하는 작업임이 중요할 때는 이를 기존 회화를 감상하는 시점과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시점을 빗겨보면, 간접적으로 빛이 부딪히고 반사되며 시지각적으로 인지되는 이미지가 각각이 굴절률을 표하는 유리를 통하기에, 이는 일견 '착시'로서 평면들의 연속이 입체적 조형성을 획득하거나, 그리하여 관찰하는 각도마다 '다른' 전체-이미지로 통합되기도 하고 이내 사라지기도 하는 등 시각적 효과를 거두어낸다. 이는 이미 기존 회화의 형식적 요소를 벗어난 지점이다. 또한 '투시'로서 합성되는 전체이미지는 어떤 각도에서든 동일한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기에, 기본적으로 그의 작업이 이미지의 굴절과 왜곡을 염두에 둔 결과로서 보여지기 때문에, '투시'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투명한 유리라 하더라도 약간의 푸르스름한 색비침으로 인해서 우연적으로 공기원근법적인 효과가 보이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계획은 이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와는 무관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가 매너리즘 시기 방법적으로 고안된 왜곡상을 말하던 '아나모포시스(anarmorphosis)'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판타지적인 눈속임을 위한 과학-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 이창수가 자기 회화의 지형을 3차원적으로 확대하여 투명한 유리를 화면 및 레이어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투시를 가능하게 하였던 부분, 왜곡을 전제로 하는 '투시' 자체에 비율과 형식을 맞추어 이미지를 세단하였다는 것은 관점을 위한 철저한 실험이기 때문이다.

2창수_Duchamp의 체스-고등어와 기구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33.5×63.5×7cm_2009
2창수_Duchamp의 체스-폭포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70×30×20cm_2009

미술사에서 매너리즘 시기는 예술적 재현을 위한 모든 과학적인 지식과 비례에 대한 온 지식이 만개했던 때였기 때문에, 당대 예술가들에게 그 시기는 더이상 지식적으로 확장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애매했던 때이기도 했다. 유사하게도 현재 무한 반복되고 있는 회화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이미지 자체만으로 신선하다 할 수 없는 한계적 요소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한계를 설치적인 접근으로 해소하고자 한다거나, 타 형식으로 전향을 꾀하는 데 반해, 작가 이창수는 우선 태도적으로 그것이 회화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회화이길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회화의 형식과 인식에 대한 한계를 실험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나모포시스'는 당대 지녔던 형식을 완전히 새로움으로 극복하고자 한 시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미지를 왜곡하는 형식을 적극 도입하여 작가의 주관 내지는 터부시되는 것들을 더욱 적극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을 위한 하나의 형식 실험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가 이창수의 작업에서도 일부 유사한 의미를 추출해보자면,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면이 그 소재를 쪼개어 객관적으로 묘사한 정물 형식을 갖추고 있고, 또 다른 면은 소재의 이면적 내용이나, 작가의 주관적인 상상의 영역으로 전혀 다른 풍경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나무의 또렷한 형상이 이면에는 속이 허하게 비어있는 형국이라던지, 마치 유리 수조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 보이는 장면 이면에는 물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물고기의 비애가 저 하늘 위 스카이 다이빙을 꿈꾸고 있는 듯한 풍경과 자연히 이어지며 그로부터 해학적 감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차가운 폭포수에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남성이 그려진 장면의 이면에는 도저히 벗겨낼 수 없는 그의 욕정을 말하듯 용광로 속 나체 여인이 마주하고 있다.

2창수_Duchamp의 체스-포도주와 미술가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63.5×32×11.5cm_2009
2창수_Duchamp의 체스-작약꽃 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67×35×20cm_2009

이면의 내용들은 도덕적인 주관의 관념이건, 순수한 상상의 영역이건 실재적인 묘사 이면에서-묘사로서의 사실성, 합리적인 계산 등으로 점철되는 앞면과는 달리- 작품이 지닌 과중한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단순한 형식실험에 그칠 수 있었던 위험에서 내용적으로 긴장완화를 시키며 이후 감상의 단계를 고려할 수 있게끔 열어둔 것이라고 판단한다. 여기서 떠올리는 것은 바로 '유머'이다. 정신적인 집중과 긴장의 상태가 어느 순간 어떤 표현방식으로 인해 우연히 풀리는 상황들이 존재하며, 이 상황들로 인해 집중의 에너지는 경제적으로 남는 잉여의 에너지로 전이된다. 이 상태에서 발산되는 감정들(잉여의 에너지)은 '쾌'를 가져온다는 것. 그렇다면 '유머' 내지 '유머러스한 태도'는 예술작품, 혹은 예술의 태도에 대한 제문제 등에 심리적인 과정에서 전제해야 할 하나의 가치로서 자리할 이유가 충분하다. 작가 이창수의 작품은 이를 좀더 수월하게 구분지어 준다. 두터운 질감의 이미지 표현과 단순 묘사로서 정물로서만 보일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입체적 접근으로서 과학적인 태도가 지닐 수 있는 무거운 위험이, 일종의 '유머'로 인해 긴장을 완화하며, 삶을 조근히 사고하는 감상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전 작업에서 그가 주관적으로 설정한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감각을 통해 기억된 시간(...) 나는 시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7가지 시간 찾는 방법'에서 그는 파동과 나이테, 주관과 속도, 그림자와 잔상, 박제 등의 상황을 구분하였다. 이는 구체적으로 그가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사물에 대한 감정-기억 내지는 감각-기억 등 분절적으로 저장된 의식을 자극하여, 그가 설정한 시간성에 대한 관념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파이고 스며들고 흩뿌리는 표현행위가 거둔 오감적 효과에 순차적으로 대응하면서, 주제로서 자연 노출된다.)과 이번 작업에서 회화의 형식에 대한 확장으로서 실험을 꾀하고 내용적으로 사물 묘사의 이면을 작은 서사로 던지는 방식은 일정 유사점이 있다. 이 방식들은 분명 작업 '형식'에 대한 일정 실험을 전제로 하는데, 그에게 주제는 형식 실험과 대단히 밀착해있어 보인다. '시간성'과 '뚜렷한 감각적 체험', '입체성'과 '양면회화' 등, 순서는 그가 고민하는 형식과 밀착한 소스를 발견하고, 발견된 소스와 연관한 내용을 전개하는 식이다. 글쎄, 이번 작업의 경우는 그 목적은 보다 뚜렷해보인다. 작가는 현재의 작업이 아직 실험기로서 일련의 완성태를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지 않다. 그는 시각적인 관찰과 직접적인 체험에 대해서 늘 중요시해왔으며, 그 일환으로 감상자에게 그것이 지닌 양태를 수용하길 강요하기 보다는 작품 자체를 스스로 관찰하고자 애쓰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게끔 하였다. 실은 이 부분은 아마도 이후 그의 작품과 작업관을 살피는 데 있어서 긍정적 고정관념 내지는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하여, 계속해서 그를 예의 주시할 만한 기준이 되리라고 본다. ■ 최윤정

Vol.20091224c | 2창수展 / LEECHANGSU / 李昌樹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