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시대 Criminal Scenes in Korea

2010_0105 ▶ 2010_0131

노순택_그날의 남일당 The day of Namildang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60cm_2009

초대일시_2010_0105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 강홍구_노순택_노충현_설운_박정원_이성희_이재헌_정윤석 연구자 / 김상우_노명우_박상우_박순영_박영욱_신영희_이정훈_허강

기획_김상우 공동주관_대안공간 루프

관람시간 / 11:00am~08:00pm

대안공간 루프 ALTERNATIVE SPACE LOOP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82.2.3141.1377 www.galleryloop.com

철학자는 이념을, 시인은 시를, 성직자는 경전을, 교수는 개론서를 생산한다. 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한다…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형법을 생산하며, 이와 더불어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와 이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상품'으로 만들어 일반시장에 필연적으로 내놓을 법학개론을 생산한다…게다가, 범죄자는 경찰계와 사법계 전체, 즉 경찰, 재판관, 사형집행인, 배심원 등을 생산한다. (마르크스)

강홍구_무제_디지털 프린트_15×15cm_2009
노충현_마네킹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09
설운_봉인된 사건 #4_디지털 프린트_16.5×22.5cm_2009

일찍이 어둠은 신들이 노니는 곳이었다. 본래 인간은 자연의 시간에 적응해, 해 뜨면 일어나 일을 하고, 해지면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갔다. 어둠이 장악한 공간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무엇인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른 이름이 붙었을지언정, 그들의 정체는 분명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비현실의 존재들. 인간은 광포한 자연을 그렇게 의인화하며, 공포를 달래고 견뎌냈다. 그랬던 어둠의 존재는 현대에 들어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도시가 등장해, 어둠이 머무를 공간이 일소돼 버렸기 때문이다. 가스등은 저녁을 불 밝혔고, 지하철이 지하를 꿰뚫었다. 어둠은 없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말로 소멸됐을까. 어쩌면 그 어둠은 인간의 내면으로 침투한 것은 아닐까. 오늘날 범죄로 모습을 변장한 것은 아닐까.

박정원_친구의 얼굴_종이에 연필_42×29cm_2009_부분-1/50piece
이성희_scene#2_잉크젯 프린트_20×50cm_2009

옛날에도 범죄는 있었다. 산적도 있었고 해적도 있었고, 심지어 의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공동체 외부에 둥지를 틀었고, 범죄가 벌어져도 일상이 아니라 사건에 불과했다. 또한 전근대적 공동체 내부는 범죄가 발생하기도 어려웠지만, 어쩌다 생겨나도 범죄자는 그곳에서 쫓겨났다. 마치 공동체가 인간의 몸처럼 유기적 관계를 맺는 탓에, 마치 병균처럼 제거될 뿐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서로에게 낯설게 자유로운 현대인은 견뎌내기 힘들겠지만, 나름대로 사회를 운영하는 방법이었다. 범죄는 그렇게 외부에 있었다.

이재헌_무궁화대훈장 The Grand Order of Mugunghwa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09

그러나 대도시는 상황을 일거에 바꿔 놨다. 앞서 지적한 어둠은 범죄의 탈을 쓰고 인간의 내부로 침투했기 때문이다. 변신한 어둠은 더욱 흉포했다. 저 멀리 혼자서 고립된 빨간 양은 찾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얀 탈을 뒤집어 쓴 빨간 양은 쉽게 분간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전혀 예측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게다가, 이 빨간 양들은 자신을 숨기고, 호시탐탐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이 빨간 양들도 희생양이 아닐까. 바로 그런 어둠에서, 사회는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숨겨두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오리무중인 화성연쇄살인사건, 부자만 골라서 복수하듯 살해했던 막가파,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가 죽었던 지강헌, 심심풀이 놀이하듯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 등등.

정윤석_non fiction diary_혼합설치_29.7×21cm_2009

희생양이 있다면 제의는 당연히 따라 붙는 법, 매체의 손길이 개입하는 지점이다. 오늘날 매체는 저옛날 무당처럼 제의를 주재한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현대는 초자연의 신비가 제거된 시대라는 것. 그렇기에 제의가 연출되는 무대는 일그러진 난쟁이 꼬마들이 아웅다웅 할 수밖에. 신비는 고사하고, 희극이 연출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 같은 제의는 결국 오락에 가깝다. 매체는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며, 입맛에 맞게 범죄를 요리한다. 당연하게도 개별적 범죄를 일으켰던 사회적 인과관계는 희석되고, 일회적 볼거리만 양산된다. 여기에 권력의 입김이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오락과 도덕은 그렇게 통일된다. ■ 김상우

Vol.20100105c | 죄악의 시대 Criminal Scenes in Korea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