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모으다

전재은展 / JEONJAEEUN / 全在垠 / painting   2010_0113 ▶ 2010_0119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그림자_리넨에 혼합재료_18×6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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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11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흘러다니는 말과 마음 ● 사라지고 소멸되는 것이 소리의 운명이다. 모든 말은, 음성은 발화되는 순간 그 소리를 접한 타자의 고막과 가슴에 잠시 머물다 이내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그 말들은 또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수시로 그 소리를 접한 이의 몸을 숙주 삼아 살아난다. 그것은 분명 소멸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누군가의 의식과 마음을 강 삼아 흐르고 하늘 인냥 그 사이로 떠돈다. 전재은은 그렇게 실체도 없이 떠돌고 흘러 다니는 어떤 말/음성을 시각화한다. 그 말과 음성이란 결국 타자의 것이다. 타자의 인후에서 나온 소리가 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남긴 상처들이 기억이고 그렇게 해서 어떤 마음들이 무늬진다. 형체없는 말들이 역시 형상 없는 마음을 짓고 사라진다. 그 사라진 부재의 자리가 또한 모든 것들이 생겨나는 마음의 터이기도 하다. 말은 곧 마음이 되고 생각이 되어 함께 떠돈다. 실체 없는 마음들은 사라져버린 말로 인해 생겨나고 그 말이 머물다 지워진 자리에 풀처럼 살아나 번성하다 물이 되어 흐르고 흘러 몸 안에서 선회한다. 말과 마음이 뒤바뀐 자리, 말이자 마음이자 그 두 개가 경계 없이 마구 섞이는 어지러운, 그러나 너무나 적막한 자리!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밤_리넨에 혼합재료_36×100cm_2009

전재은은 그렇게 형상 없는 말과 마음들을 그린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시각화의 대상이 아닌 것들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는 지난한 시도다. 사실 미술이란 그렇게 형체 없는 것들을 보고 싶다는 욕망의 소산이다. 사라지는 것들, 소멸되고 죽어버리는 것들을 기념하려는 부질없지만 불가피한 노력이다. 말과 마음, 그 흐르고 떠다니는 것들, 실체 없이 마냥 가볍고 마냥 무거운 것들, 가라앉는 것들이자 휘발되어 버린 것들에 안타깝게 몸을 지어주고 집을 만들고 그것들끼리의 관계를 연결해 주려는 몸짓들이 바글거린다.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작고 다양한 질감을 지닌 천들을 깁고 얹혀놓아 물결을 만들고 집의 형상을 짓고 한 땀씩 떠나간 시침 자국들을 연결해 기억을 간직한 말/마음들을 떠올렸다. 소멸되는 음성들을 한 코씩 떠나간다. 떠다니는 마음들을 하나의 선과 원형으로 시각화했다. 작은 원형의 천들과 일정한 단위로 반복되는 면, 집 등은 한 인간의 몸과 마음, 그것들의 거주지, 생각의 공간, 음성, 하나의 단어와 말을 표상한다. 그것들은 일정한 거리를 갖고 대칭적으로 위치하거나 그 위에 계속해서 얹혀져 있거나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일정한 균형을 잡고 있다. 말과 말 사이, 마음과 기억 사이, 몸과 의식 사이, 음성과 미술 사이, 나와 타자 사이, 집과 작업실 사이, 생활과 예술의 사이, 일상과 꿈의 사이가 위태롭지만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풍경이다. 그것은 작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사이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 존재의 은유가 스며들어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즐겨 형상화 하는 집은 몸이자 기억과 의식을 간직한 공간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 삶의 장소라면 그 집으로부터 풀려 나오는, 겹쳐지는 또 다른 집들은 그 집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집, 이른바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집의 은유다. 그것은 낯선 그 두 개의 세계를 껴안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비유다. 그런가 하면 집은 또 다른 타자의 존재들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견고한 집을 짓고 산다. 작가는 그 집들을 연결시키고 겹쳐놓는다. 그 집들이 가는 실에 의해 연결 되어있고 그 실들은 마냥 유연하고 구불구불하다.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균형_천에 혼합재료_55×59cm_2009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tread_천_98×185cm_2009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물결_리넨에 혼합재료_30×40cm_2009

작가는 실과 천으로 그림을 그린다. 천으로 형태를 만들고 체적화시킨다. 물감과 붓질을 대신해서 혹은 물감과 붓질과 함께 실과 천이 뒤섞인 자리에 집의 형상이 떠오르고 작고 둥근 원형의 천들이 겹쳐있다. 포개져 있다. 반복적인 원형은 말과 단어와 작은 마음들이다. 말들을, 음성들을 응고시킨다. 마음을 고정시킨다. 그 말과 마음들은 물처럼 흐른다. 마음은 강이나 바다 같다. 모든 것이 떠내려가고 흘러가고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마음을 고정시킬 수 있을까?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관계_리넨에 혼합재료_34×80cm_2009

"마음은 환상과 같아 허망한 분별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마음은 붙잡을 수도 없으며 모양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바람과 같아 붙잡을 수도 없으며 모양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멈추지 않고 거품은 이내 사라진다...마음은 번개와 같아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순간에 소멸한다." (보적경)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다. 머무는 일 없이 태어났다가는 곧 사라져 버린다." (대보적경)

전재은_언어를 모으다_91×116.7cm

전재은의 작업은 천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진 그림이자 촉각적인 부조작업인 동시에 실로 이루어진 드로잉 작업이다. 작가는 바느질과 천을 이용해 여성적 감수성으로 매일의 단상들을, 마음과 의식 사이로 아련히 흘러 다니는 그 누군가의 음성과 문자와 그로 인한 기억들을 건져 올리는가 하면 예민한 감성으로 자신의 일상의 모든 풍경을 투사한 뒤에 그에 적합한 부드러운 재료들을 통해 그것들에게 하나의 몸을 성형해준다. 따스하고 부드러우며 한없이 촉각적인 그런 몸이다. 그 몸을 어루만지는 작고 부드러운 작가의 손이 사라진 말과 음성, 미음과 추억들을 불러모은다. ■ 박영택

Vol.20100113a | 전재은展 / JEONJAEEUN / 全在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