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신문 Yellow Paper

서평주展 / SEOPYEUNGJOO / 徐平周 / painting   2010_0115 ▶ 2010_0207 / 월요일 휴관

서평주_나도 좀 살자_신문에 아크릴채색_17×16cm_2009

초대일시_2010_011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신문―캔버스에 그리는 그림, 그리고 예술―정치 ● 몽타주라는 장치가 세상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던 역사적인 실험들이 있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미학적인 고찰을 넘어서서 예술이 세상에 '대항'하는 역할을 보여주었다. 특히 정치를 미화하려고 했던 지도자와 그에 대한 신화를 만들고자 여러 예술가들이 동조해 왔던 사실을 애써 지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신화를 만들기 위해 이용했던 매체들 그것이 신문이나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유포될 때, 그것을 풍자하고 고발하는 예술가들 혹은 음모를 발견한 자들도 분명 존재해 왔다. 따라서 이렇게 신화를 까발리기 위해서 몽타주 기법들은 영화,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들에서 필연처럼 등장했는데, 그들이 조작하려 했던 정치적 현실을 또 다시 다르게 조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조작이 결코 실재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격한 운동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평주_kiss_신문에 아크릴채색_16×20.5cm_2009

정치예술은 정치 그 자체를 다루는 예술이다. 현실적인 정치활동을 비웃고 까뒤집기 위해서. 가령 그러한 예술들이 선전선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입장을 갖고 대항하는 일은 쉽지 않은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평주는 이런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작가일 수 있다. 그는 현실정치를 극명하게 이용하고 있는 조중동이라는 찌라시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작하는 작업을 한다. 물론 그가 이 신문들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유포하는 정보들을 조작하려고 하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신문이라는 매체가 원래부터 텍스트와 이미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서평주는 신문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작하고 비틀어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 이렇게 비틀어진 텍스트와 이미지는 당연히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 그의 작업이 오리고 붙이는 몽타주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생산된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조작하기 때문에 그의 작업을 몽타주 기법으로 읽을 수 있다. 단어와 문장의 재배치, 이미지의 부분을 달리 그림으로써 변화된 이미지들은 원래 존재했던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뭉개고 덧칠함으로써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조작 때문에 말끔하게 인쇄되어 있던 원래의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이미 재구성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평주_for fre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100cm_2008

그럼에도 이러한 장치를 이용해서 그가 생산한 이미지와 텍스트가 흥미로운 것은 결코 무겁지 않게 정치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벼운 소재나 번뜩이는 재치를 이용해 통쾌한 서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에 띄게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이는 예술이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문제 삼는 또는 예술은 적나라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은유를 함축해야 한다는 미학적 태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서평주_센트럴 파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6cm_2008

그럼에도 서평주에게 신문지는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라는 사실이다. "이는 눈속임이나 고도의 회화전략을 구사하는 따위의 술수보다는 엉성한 지우기와 덧칠하기를 통해 애초의 보도적 기능을 미학적 기능으로 탈바꿈하는 것(김종길)"과 같은 해석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는 행위를 통해 미학적인 효과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신문 위를 조작하기 위해서 '회화'라는, 그린다는 행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텍스트를 바꾸는 행위조차도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자 주위를 색칠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평주는 그린다는 행위들을 애써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이번 전시에서는 캔버스 작업을 함께 보여준다. 오히려 좀 더 적극적인 조작이 가능한 새로운 매체를 발견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캔버스로 회귀한 작업들을 보여준다.

서평주_미키 마우스가 되고 싶어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6cm_2010

이렇게 회화로 복귀한 서사들 또한 정치적인 장면을 담아낸다. 물론 캔버스에 그린 그림들도 신문이 유포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재해석해서 그려진 작업들이다. 이는 그가 신문작업에서 간헐적으로 조작했던 이미지들이 좀 더 커다란 서사를 구성하면서 생산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회화 작업에는 텍스트가 부재하기 때문일까. 즉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미지 보다는 은유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는 신문 연작에서 보이는 날카로움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캔버스 작업에서도 특유의 유쾌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는 한낱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놀음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비웃을 수 있는 통찰력을 곳곳에 깔고 있다. 결코 변화하지 않을 권력의 놀음들은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서평주_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0

서평주는 신문이라는 매체가 조작이나 왜곡을 통해 그것을 복제하고 유포하고 있다는 것을 반발이라도 하듯 일인 미디어로서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모든 예술가들의 작업이 일인 미디어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의 신문작업들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현실을 마구 짜깁기 하면서 만들어낸 해학적인 이미지들, 또는 톡 쏘는 댓글처럼 현실 사회의 기득권들이 유포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에 딴지를 걸 듯 작품을 생산해 왔다. 그가 생산한 '작품들'은 단순히 예술가의 창작이나 고통을 반영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잘 익지 않았음에도 날이 서 있으며, 뻔할수도 있지만 예술―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라 문화정치학을 행하는 개인으로, 혹은 몽타주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한 명의 운동가는 아닐까. ■ 신양희

Vol.20100115c | 서평주展 / SEOPYEUNGJOO / 徐平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