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열展 / LIMDONGYEOL / 林同烈 / sculpture   2010_0120 ▶ 2010_0128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Bones & entrails_레진, 스티로폼, 라텍스, 철프레임_120×240×14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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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12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KEPCO PLAZA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튜닝 놀이: 닮은 것과 비슷한 것 ● 첫 개인전 이후 임동열의 작업을 일별해 보면 나는 어쩐지 이 작가가 개개 요소들보다는 요소들이 이루는 관계를 보다 중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작가는 내가 보기에 그냥 '컵'을 보기보다는 '갈색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검은 쟁반 위에 있는 컵'을 보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재료와 대상을 세련되게 배열, 재구성함으로써 얻어지는 심미적 만족을 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 상이해 보이는 양자로부터 유사성을 찾아내 이 양자를 의미론적으로 연결하는데 몰두한다. 임동열이 2006년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들을 보자. 이 작품들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전제는 "전자 제품을 분해했을 때 눈으로 확인 가능한 크고 작은 전선들의 관계가 유기체의 핏줄들-동맥과 정맥들이 이루는 관계들과 닮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전제를 발전시켜 "디지털 기계들도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우리처럼 생명을 지닌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이는 크리스탈 레진으로 형상한 일렉트릭 기타나 마우스, 시계, 전화기 등의 투명한 형태 속에 핏줄(을 연상시키는 에나멜선들의 얽힘)을 넣는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이제 핏줄을 매개로 일견 무관해보였던 각각의 사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정립됐다. 이렇게 관계를 정립하는 일을 이 작가는 'tune-in'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주파수를 동조하여 채널을 맞추는 일" 또는 "악기를 조율하는 일"처럼 관계들, 비례들을 알맞게 조절하여 불일치하는 것들을 일치로 이끄는 일이다.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Bones & entrails_레진, 스티로폼, 라텍스, 철프레임_ 120×240×140cm_2009_부분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Bones & entrails_레진, 스티로폼, 라텍스, 철프레임_ 120×240×140cm_2009_부분

2008년 두 번째 개인전 『Machinimal』에서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핏줄-같은) 형식적 관계들의 유사성을 매개로 한 기계→유기체의 의미 변환이 기계→동물의 의미변환으로 구체화, 특화됐다. 여기서 작가의 관심을 끈 것은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특정 기계들의 전체적인 모양새나 엔진 운동의 양태가 포유동물의 그것과 '닮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임동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운송기계로부터 동물을 보았다. 예컨대 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기관차는 두 개의 발을 갖고 있었으며 또 말처럼 두 개의 발을 번갈아 올렸다 내렸다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에게 이것은 새로운 생산수단이 낡은 형식에 지배받는 유감스러운 사태로 보였지만, 임동열에게 그것은 낡은 인식틀을 비틀어 새로운 세계를 여는 긍정적 비전으로 간주됐다. 예전에 핏줄을 매개로 일렉트릭 기타가 유기체로 변환됐듯, 이제 핏줄을 매개로 오토바이가 동물로 변환된다. 이렇게 기계이면서 동시에 동물인 'Machinimal'이 탄생했다. ● 그러나 'Machinimal'은 '관계'를 중시하는 작가에게 아직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단순한 '컵'보다는 '갈색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검은 쟁반 위에 있는 컵'을 보는 사람에게는 핏줄이 단지 핏줄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골격이나 내장기관과 더불어 있는 핏줄로 보이는 까닭이다. 이제 보다 복합적인 수준에서 관계들이 재정립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가 바로 세 번째 개인전 『Brutale』다. 여기서는 전선들이 핏줄로 변환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토바이의 각 기관과 기관들의 연결부가 골격이나 내장기관들로 변환된다(예컨대 기름탱크는 위(胃)로, 머플러는 쭈글쭈글한 대장(大腸)으로 변환된다). 그 결과로 우리 눈앞에 제시된 뉴타입 'Machinimal'에서는 이제 기계의 흔적들, 이를테면 금속성을 찾아볼 수 없다. 이로써 처음에 그렇게 달라 보였던 기계와 동물은 합치되고 거의 완벽한 동조가 달성됐다.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blood vessel_알루미늄사, 철프레임_100×150×150cm_ 2009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skins_투명레진, 철프레임_240×160×150cm_2009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drawing_크레프트지에 콩테, ohp필름에 출력_110×162cm_2009

『Brutale』에서 주목을 요하는 것은 『machinimal(machine+animal)』에서 기계와 동물의 위계, 또는 긴장관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machinimal』에서는 아직 "기계가 동물을 닮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다. 전선의 얽힘은 핏줄의 얽힘을 닮았다는 것. 그런데 '닮다'는 타동사다. 닮음 관계에서는 주종이 명확하다. 'A가 B를 닮았다'고 할 때 B는 원본(主)이고 A는 복사본(從)이다. "기계가 동물을 닮았다"는 명제에서 '동물'은 원본이며 '기계'는 그 복사본이라는 것이다. 닮음을 매개로 하여 연결되는 것들은 항상 배후에 원본에 대한 강박을 깔고 있다. 이는 '동물이 기계를 닮았다"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 지금 'Brutale'로 명명된 것을 우리는 동물과 '닮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은 동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우리는 오토바이와 닮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오토바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비슷하다'는 형용사다. 'A가 B와 비슷하다'고 할 때 A와 B에는 주종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원본에 대한 강박이 없다. 이것이 '다리 세 개인 포유동물-Brutale'가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다. 푸코의 말처럼 "비슷한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퍼져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이렇게 계열선을 따라 새롭게 등장한 種에 임동열은 『Brutal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날것'으로서 특정 오토바이의 상품명이다. 그러니까 이 단어가 안팎으로 지시하는 것은 적어도 다음 네 가지다. 1)형용사: 잔혹한, 무자비한, 2)명사: 가공하지 않은 날 것, 3)명사: mv 아구스타의 오토바이 모델명, 4)명사: 임동열의 전시에 등장하는 신종 생명체. 이 네 가지 의미는 서로 관련되어 있으면서 서로 다른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이렇게 『Brutale』에서 의미작용은 다원화됐다.

임동열_MACHINIMAL Brutale drawing_크레프트지에 콩테, ohp필름에 출력_가변설치_2009

요컨대 지금 임동열은 의미요소들로 이루어진 의미의 그물망을 만들고 있다. 여기서는 어떤 유일한 기본적 의미의 지속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들의 겹침이 중요하다. 실의 튼튼함은 어떤 하나의 실이 길게 관통해가는 것에 있지 않고 많은 실들이 서로 엉켜 있는데 있다. 이것이 바로 오랜 기간 갖가지 재료로 '핏줄'의 이미지를 구현하면서 임동열이 얻은 깨달음이 아닐까? 그러나 관계의 조율을 중시하는 심미적인 조각가는 그것을 그냥 엉켜있는 채로 내던져두지 않는다. 'tune-in'. "주파수를 동조하여 채널을 맞추는 일" 또는 "악기를 조율하는 일"처럼 관계들, 비례들은 다시 알맞게 조절되어 협화음으로 이끌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임동열의 작업은 일치와 불일치의 양 극단을 왕복 운동한다. 이 왕복운동에 튜닝놀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 홍지석

Vol.20100118d | 임동열展 / LIMDONGYEOL / 林同烈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