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CONCERT 'LOVE'

고병오_김일권_이수진_채진숙展   2010_0120 ▶ 2010_0126

고병오_Media Ensemble Op.029_인터렉티브 비디오 프로젝션_2009

초대일시_2010_0120_수요일_06:30pm

Concert1_2010_0120_수요일_06:30pm Concert2_2010_0123_토요일_06:3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_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1관 Tel. +82.2.734.7555

MEDIA CONCERT "LOVE" ● "미디어"란 무엇인가? 미디어란 사람들 사이의 생각이나 느낌, 뜻을 전달하는 수단, 곧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뉴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며 확산하고 제공해주는 새로운 통신 기술이다. 컴퓨터는 "on-off"의 이분법에 의해 처리하는 디지털(digital) 방식을 이용한다. 흔히 멀티미디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 역시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간의 통합적인 교류가 가능한 것은 정보 처리 기술의 디지털화가 가져다 준 편익 중 하나이다. 게다가 통신 위성을 이용한 대륙간의 전파 중계 기술과 광섬유를 이용한 광통신은 대륙간 초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하였다. 바야흐로 다채널, 다미디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디지털화 되면서 우리의 생활도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 통신을 이용하여 대화를 하고 인터넷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나아가 영상까지 전해주는 비디오 메일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통신 뿐 아니라 산업의 정보화와 사이버 경제화가 발달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으며 그 형태도 여러 가지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했을 때 사랑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최초의 타자는 어머니(M-other)이다.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익혀나가게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랑"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체계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사회가 첨단화되어 갈수록 감성이 메말라가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풍요로운 환경을 가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면 디지털 사회에서의 현실이란 무엇인가? 일상 생활 속에서 물건을 보거나 맛을 보거나 향기를 맡는 등 자신의 오감에 감지되는 세계를 우리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은 우리의 지각이 생산해낸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 일례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를 들 수 있다. 보드리야르에게 가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실재이다. 그리고 현실보다 더 실재적인 가상의 세계가 "하이퍼 리얼리티"이다. 미디어는 사실과 사건을 존재하게 한다. 미디어가 비로소 사실을 사실로, 사건을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매스미디어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현상에 주목한다. 일례로 영화 속에서 가상의 현실이 펼쳐지는데, 이는 우리 곁의 현실로 존재하는 하이퍼리얼리티인 것이다. 또 하나의 현실인 "미디어 콘서트 '러브'" 역시 미디어를 수용한 전시 공연이다. "미디어 콘서트 '러브'"는 디지털 아트로 공간성을 포함하는 시간 예술이다. 따라서 영상, 회화, 조각의 공간 예술의 특성에 시간 예술인 공연 예술의 특성까지 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예술 형태의 "미디어 콘서트 '러브'"전은 관객과의 상호소통의 특성을 갖기에,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일방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상호소통하는 형식으로 관객이 전시의 중심이 되어 참여하는 것이다. ● 이러한 예에 고병오의 "미디어 앙상블 Op.029"가 있다. 이 작품은 미디어 아트로서, "상호작용"에 의한 작품이다. 그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 뿐 아니라, 관객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과 컴퓨터 사운드 간의 상호작용, 함께 전시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하고자 한다. 고병오는 관객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된다. 즉 작가가 작품의 주제로서 행위를 하면, 객체인 관객이 이에 반응하고 수용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주체와 객체간의 쌍방향 소통의 주고 받는 대화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과 예술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그에게 비디오, 컴퓨터는 붓이나 목탄만큼이나 친숙한 제작도구가 되어 과학과 예술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이는 맥루한(M. McLuhan)의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것으로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리얼리티를 생산하는 담론이라 할 수 있겠다. 고병오의 또 다른 작품, "대금과 전자음악에 의한 '컴퓨터 사막'"은 약 6분 길이의 라이브 전자음악으로, 한국전통악기인 대금과 컴퓨터 음악의 협연이다. 연주회의 배경에는 영상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과 건조한 모래바람이다. 여기서 '사막'은 무미건조한 기계, 즉 컴퓨터에 비유된다. 모래 바람이 이동하며 새로운 모래언덕을 만들듯, 컴퓨터의 전자 합성음은 새로운 음군과 음색으로 전이되고 생성된다. 거대한 모래언덕과 모래바람 위를 대금선율이 무거운 발을 내딛는다. 고병오는 21세기를 점점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진단한다. 사람은 정(情)을 그리워하고 사랑에 메말라 있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러한 관계의 목마름은 네트워크를 통해 해소하며, 이제는 사람과 컴퓨터, 컴퓨터와 컴퓨터의 상호관계로 발전되어 간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그는 인간관계가 더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니기를 희망하며 맞이하고자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빛의 속도(Speed)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이며 이로 인해 안식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빛나는 사랑이 담겨 있길 바란다.

김일권_2009-2010 Story of Season_LED. CONTROLER_설치, 60×50cm×5_2009

김일권은 오늘날 차세대 빛의 재료인 Led에, 부호화된 칩과 전자회로의 전류소통을 통해, 관객과의 새로운 매체적 감성을 접하게 하고자 시도한다. 그는 다다(Dada) 이후 오브제의 재발견에 힘입어, 그러나 과거의 형식언어를 뛰어넘는 표현오브제의 매체와 그리고 미디어를 활용한 질료의 감성적 발견과 접촉하는 새로운 가치의 완성을 통해 창조적으로 작업한다. 여기에서 그는 대기감으로서의 빛의 표현을 시도하였고, 천지의 함축성과 명상성, 나아가 새로운 본질의 숭고한 가치성까지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예술가의 본질에 대해 늘 고민해 왔는데, 그에게 예술가란 예술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듯이, 자신의 존재에 항상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이 거듭나야 하는 존재이다. 김일권의 영상 예술의 특성은 전자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지각 체험과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영상 이미지는 작품을 감상하는 주체인 관객의 지각을 변화시킨다. 관객은 움직이는 전자 이미지를 마주하는 동안 끊임없이 감각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여 이해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들은 이때 끊임없이 움직이는 전자 이미지를 보며 몸의 감각을 재구성하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상호작용으로 인터랙티브 아트라 할 수 있다.

이수진_self-portrait_흑백영상, 사운드_2010

이수진의 "자화상"은 약 5분 가량의 오디오 비쥬얼로 흑백의 영상과 사운드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작품에서 불규칙한 이미지를 통해 느껴지는 혼란스러움은 텍스트에 등장하면서 차츰 익숙해지며 텍스트의 배열을 통해 관객들은 다음 텍스트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정확한 의미를 가지지만, 이것은 중복된 의미를 상상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이상의 다른 의미를 상상하게 할 수도 있다. 텍스트는 고유의 의미와 또 다른 상상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며 사운드와 영상의 결합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하도록 한다. 인간은 때로는 과장된 몸짓과 때로는 과장된 표정으로 사람들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작가는 나르시즘적인 자기애를 갖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가의 모습은 때때로 과장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이수진의 "첼로와 전자음향을 위한 '소통'"은 약 7분 가량의 연주곡이다. 일상생활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규칙성을 가질 때, 그 소리들은 리듬을 가진 음악이 된다. 이수진은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단지 음악만이 아니라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가지기를 희망했다. 이수진은 단순히 음악과 관객의 소통이 아닌 일상의 흩뿌려진 모든 사소한 것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인간은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살아간다. 이 작품에서는 단순히 첼로음만이 아닌 의도적인 제스쳐를 음악에 투영시켰다. 첼리스트는 첼로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며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연주자의 세세한 움직임을 악보에 기보하며 지시했다. 관객들은 연주자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계획되어 있는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음악이 진행됨에 따라 그것 또한 작품의 일부임을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수진의 예술은 라이브 퍼포먼스로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라 할 수 있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사소한 행동 하나도 그리고 사소한 음색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예민하게 포착하고 이를 유희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관객이 감지하기를 유도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들은 이를 감각의 확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채진숙+Christopher H. Zamora_Take Over_혼합재료, 사운드 인터렉티브 비디오 설치_2010

채진숙크리스토퍼 자모라의 "Take-over"는 커다란 파브리아노 종이 위에 절규하는 사람의 얼굴을 아주 크게, 가득 그린다. 그리고 배경에 사람들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 각종 이미지들을 꼴라쥬나 스텐실로 그린다. 이때 이미지들은 전화방, 키스방, 명품 가방 (뤼비통, 샤넬 등), 잡지의 보석, 각종 상업성 광고, 찌라시, 남성용 잡지 속 여성의 나체 이미지 등으로 구성된다. 그림이 완성되면 벽에 인스톨한다. 그리고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눈, 코, 입 그리고 귀에서 연기가 나듯 영상이 프로젝션된다. 이때 연기들은 사운드에 따라 반응하도록 제작된다. 이번 전시회에서 채진숙은 자모라와 공동 작업을 하게 되는데,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와 작가적 성향이 공동 작업에 영향을 끼쳐 새로운 작업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채진숙은 Lust와 Love에 대해 논한다. Lust란 강한 욕망, 흥미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널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소유에 관한 말이다. 욕망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Lust와 Love를 때때로 혼동한다고 채진숙은 말한다. 또한 자모라는 Love를 Lust로 Take over(대체)한다고 말한다. Love보다 Lust를 중시여기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간(空間)이란 서구어의 "Space"를 번역한 한자어이다. 공간은 보통 3차원적인 구획에 의한 "일정한 범위를 지닌 공(空)"을 뜻한다. 채진숙과 자모라의 영상 스크린은 세계를 향한 가상 공간이다. 그 가상 공간은 그 자체가 현실이며, 가상과 현실이 상호 침투하는 관계로, 분리되지도 합쳐지지도 않고 경계선상에서 경험되는 것이다. 온갖 이미지를 조합한 채진숙과 자모라의 영상은 또 하나의 리얼리즘으로 작품에 일상의 사회와 자연을 반영하며 관객에게 이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와 문화는 변화해 간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화를 통한 교류 또는 예술을 통한 교감이 아닐까? 그리고 그 바닥에는 사랑이 흐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본연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진단한다면, 디지털 시대는 기술과 합리성, 과학과 예술의 단절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 시대는 복제의 시대이자 참여의 시대이다. 일과 놀이의 구분이 흐려지고 창조적 취미가 중요한 시대가 열릴 것이다. 또한 소수의 전문가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 다수의 대중민주화 사회로의 전이를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대중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발상이며 우리 사회가 유토피아로 향하는 것이다. 대중은 문화예술의 후원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자, 그리고 모두를 사랑하자. ■ 김효선

Vol.20100122c | MEDIA CONCERT 'LOV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