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용지

GRAPHIC DESIGN EXHIBITION   2010_0123 ▶ 2010_0131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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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123_토요일_05:00pm

전시기획_유혜인

참여작가 강구룡_김경태_김의래_서동주_stereo-type(석재원_최혜미) company / programmer(신동혁_신해옥)_정소미

관람시간 / 10:00am~10: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9-8번지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지난 해 4월, 대학을 막 졸업한, 혹은 전업 디자이너로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홍대 부근 한 카페에 모였다. 2007년 가을 서교동에서 열린 『A4놀다』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를 준비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활자와 이미지를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친숙한 소재들 중 하나인 A4용지를 주제로 한 지난 전시에서는 제목이 말해주듯, 네 명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전시에 대한 반성과 새 전시의 방향 모색을 위해 각각 배경과 출신이 다른, 지난 전시 디자이너 두 명을 포함한 열 명 내외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두 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가졌고,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갔다. 너무도 일상적인 사물 A4용지 한 장을 주제로 전개된 아이디어가 몇 번씩 얼굴을 바꾸는 동안 어떤 이들은 학교를 졸업했고, 어떤 이들은 취업을 했으며, 어떤 이들은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이들의 10개월은 A4용지가 소모되는 속도만큼이나 급속도로 흘러갔다. 해가 바뀌고 이들 중 9명의 디자이너가 작업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번 전시에서 참여 디자이너들은 오늘날 만국 공통의 종이규격이 된 A4용지가 대변하는 '규격화', '대량생산'과 같은 특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거나, 혹은 이 종이가 담고 있는 콘텐츠와 그것에 반영된 우리 사회의 일면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 참여 디자이너들 각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적절한 시각언어로 형상화한 그래픽 디자인 결과물을 선보이고자 하는 전시이지만, 이를 위해 대중이라는 익명의 관객을 상대로 작업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클라이언트를 앞에 둔 실무 디자인 작업 못지않게 심적 부담이 큰 일이었다. 오직 자기만족을 위한 작업의 결과물은 좋은 디자인으로서 평가받을 수 없음을, 어떤 디자인도 소통 불가능한 것이라면 영향력을 지닐 수 없음을 지난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배워 온 터였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사진 복제술의 발명 이후, 새로운 매체의 힘을 빌리게 된 예술의 혁명적 힘은 작품을 향한 관조나 몰입이 아닌, 산만하고도 비평적인 대중의 관람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의 정치화를, 부패한 사회에 대한 전복성의 씨앗을 발견하고자 했다. 벤야민의 예견 이후 80년가량 지나온 오늘날, 이곳에서 기술생산과 복제의 메커니즘을 토대로 작업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예술 혹은 디자인의 정치화를 시도한다. 다소 작은 목소리로, 지극히 평범한 ! 종이 몇 장에 담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거나 사소하게만 볼 것인가. 천편일률적인 미술 전시회가 범람하는 오늘날, 디자이너들이 선보이는 그래픽 실험과 아카이빙 작업은 우리에게 답을 제공하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과연 지금, 여기서, 문자를, 이미지를, 삶을 디자인하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해 비평하고 토론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감성적 혹은 비판적으로 해석한 디자인 결과물들을 통해 후세대 그래픽디자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동주_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에이포_인쇄, 설치_2009~10_포스터 부분

실험 영상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친숙한 서동주는 A4용지가 지닌 소비의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규격화, 대량생산, 획일화된 소비로 이어지는 사슬을 하나로 묶는 것은 다름 아닌,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덕목일 것이다. 무엇이나 똑같은 사이즈, 한정된 소재의 종이에 담을 수 있다는 평등성과 보편성, 유토피아적 가치를 지닌 A4용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담기는 내용에 따라 액자와 쓰레기통을 오갈 수 있는 이 사소한 종이는 마치 오늘날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비슷한 방식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

김의래_국가 권력과 A4_인쇄, 설치_2009~10_포스터 부분

김의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권위적인 장소들에서 사용된 A4용지에 담긴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에 담긴 텍스트의 권력, 혹은 그 허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흔히 실체가 없는 것이라 일컬어지는 법과 정치권력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 삶은 이미 일종의 환상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A4용지에 인쇄된 법정의 판결문, 정치 연설문 등을 수집하여 다양한 디자인 양식을 동원해 공들여 디자인한다. 제도적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우회적으로 표현된 이 작업을 통해 그는 권력구조라는 환상으로 점철된 삶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

강구룡_A4 LETTERS-대량생산되는 글자_인쇄_2009~10_포스터 부분

시각디자인학과 재학 시절, '식자공'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던 강구룡은 활자에 관한 오랜 관심을 반영한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A4용지를 가지고 글꼴을 디자인한다. 황금비율이라 자주 인용되는 A4의 규격, 그리고 만지고, 접고, 찢고, 색을 입힐 수 있는 종이가 지닌 물질성이 글꼴 디자인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다양성이 도출되는지 탐색한다. 그리하여 일정한 비율로 반복, 생산되고 소비되는 A4용지처럼 대량생산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제품으로서의 글자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는 문자를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분에 충실하여 자신이 지닌 관심, 글꼴 디자인에 대한 애착을 지속한다.

정소미_Office Artist_책, 설치_2009~10_포스터 부분

독일에 거주 중인 정소미는 A4용지의 정형화된 규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건조한 기계가 재생산하는 이미지에 대한 실험에까지 나아간다. 무한히 반복하여 재생산할 수 있는 복사기라는 기계가 뱉어놓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기계적'이거나 '규칙적'이지 않다. 그녀는 이번 작업에서 기계적 생산물의 불규칙성하고 예측 불가능한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기계를 통과하여 흔적을 남기는 듯이 보이는 '복사하기'라는 '신체적 행위'를 통해, 그녀는 기계적 반복이 낳는 차이를 실험한다.

신동혁, 신해옥_프랑켄슈타인_책, 설치_2009~10_포스터 부분

디자이너 듀오인 신동혁, 신해옥은 막 대학을 졸업한 신진 디자이너들이다. 그럼에도 학부시절 동료들과 결성한 디자인 공방에서 활동하며 각종 그래픽 실험을 활발히 진행해 온 이들이 지닌 강점은 관심사를 즉시 소통 가능한 표현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남다른 실천력일 것이다.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평소 흥미롭게 여겨졌던 신종 텍스트 생산도구인 '인터넷 번역기'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만국 공통의 판형인 A4사이즈,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이들 모두에게 자유로운 텍스트 이해를 가능케하는 번역기는 오늘날의 글로벌화를 표상하는 특징적인 도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외국어이든 자유자재로 번역 가능해 보이는 번역기의 실질적인 한계가 탄생시킨 '돌연변이 텍스트'를 책으로 묶어낸다.

석재원, 최혜미_일반적인 사회화_드로잉, 복합재료_2009~10_포스터 부분

석재원, 최혜미 두 사람은 A4용지의 규격이 지닌 규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보기에 "규격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 가운데 가장 구속력 없는 약속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규범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 실험하는 것이 이들의 작업 목표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연령별 사회 구성원을 무작위로 선별, 접근하여 전체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표본을 만들었다. 흔히 어떤 형상이나 사물을 그리거나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인식되고 있는 '디자이너'의 위치를 과감히 포기 내지 유보한 이들의 작업은, 한편으로 사회학적 리서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디자인 과정을 보여준다. 외적으로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작은 종이의 규격에 사람이 심리적으로 종속되는 정도는 그 또는 그녀의 사회화의 정도에 따라 명확한 차이를 지닐 것이라는 그 평범한 예견은 과연 적중할 것인가?

김경태_A4(10절)_인쇄, 설치_2009~10_포스터 부분

방안에 출몰하는 곤충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공사장의 폐허를 놀이터로 삼아 사진을 찍기도 하는 김경태는 평범한, 나아가 비속하기까지 한 사물과 환경을 작은 경이로 바라본다. 그는 의외의 장소에서 사용되는 A4용지의 규격을 발견한다. 액자 사이에 끼워져 있는 각종 표창장, 인증서, 자격증 등은 '10절'이라는 새로운 종이규격 명칭으로 돌변하여 통용되고 있다. 학창 시절 자랑스레 들고 사진을 찍었던 상장, 졸업장이 액자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는 모습을 그는 어떤 정치적이거나 비판적인 입장도 내세우지 않은 채 보여준다. 그런 그의 작업 앞에서 어떤 심리적 효과가 발생할지, 어떤 메시지가 읽힐지는 관객의 해석에 달려있다. ■ 유혜인

Vol.20100123a | A4용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