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gering Moment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painting   2010_0402 ▶ 2010_0422 / 4월 4일 휴관

정철규-lingering moment 19_나무, 캔버스에 유채_지름 50cm_2010

초대일시_2010_040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30pm / 4월 4일 휴관

송은갤러리_SONGEUN GALLERY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527.6282 www.songeun.or.kr

누구에게나 기억 속에서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 또한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시기가 있다. 나의 작업 또한 그러한 시기에 겪었던 불안함과 아련함 속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우연히 만난 길가의 볼록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볼록거울의 모습에서 작가와의 심리적 동일시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시작한 Lingering Moment 시리즈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뇌리에 맺혀질 수 있는 기억의 시간, 장소 등의 상황을 볼록거울을 대변해 볼록거울의 원형과 닮은 모습의 캔버스에 담아냄으로써 잊혀 지지 않거나, 잊으려 하지 않은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기억에 관한 기록으로써의 작품을 진행한다. 많은 경험을 하는 현대인은 누구나가 간직하고 싶거나 간직하지 않으려 해도 간직되는 상황이 있다. 그러한 상황은 무의식의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마치 좋았던 꿈을 잊지 않으려는 습성처럼 말이다. 이렇게 Lingering Moment 시리즈의 작품에 나타나는 볼록거울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를 즉, 현대인을 여과 없이 비추어 주는 대상이다. ■ 정철규

정철규-lingering moment 13_캔버스에 유채_지름 100cm_2009
정철규-lingering moment 15_캔버스에 유채, 나무_지름 100cm_2010
정철규-lingering moment 16_캔버스에 유채, 나무_지름 100cm_2010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제일 쓸쓸했었니? ● 볼록거울은 외진 곳, 후미진 도로 가에 있다. 볼록거울에 비친 세상은 실제보다 작고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볼록거울은 운전자에게, 보행자에게 가시거리 너머에 있는 것을 '미리' 알려준다. 볼록거울 속 세상이 여느 세상과 다른 모습인 것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까지 끌어들여 함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공간을 먼저 훔치는 공간, 그래서 비틀리고 비대해진. 볼록거울은 사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곳이 이곳임을 알려주는 위험표지판이다. 볼록거울이 있는 자리는 볼록거울이 없다면 사건이 일어날 자리이다. 볼록거울은 사실 현장을 가리키면서 감추는 지표이다. 볼록거울이 서 있는 곳이 예외적인 공간이듯이 볼록거울 안 세상 역시 여기랑 비슷하면서도 낯선 공간이다. 우리는 그런 공간을 물리적으로는 살아낼 수 없겠지만 우리 마음이 살아가는 공간은 어쩌면 그런 모습일지 모른다. 마음은 늘 이미 일어난 사건, 곧 일어날 사건을 밝고, 사건 위에 서 있다. 마음이 마음인 것을 드러낼 때, 마음의 무게를 알게 될 때 마음은 이미 제자리에 없다. 마음을 잃는다 마음이 나갔다. 마음은 아파야 마음이 된다, 아니 아파야 마음이다. 마음은 내가 하나가 아닌 여럿인 동네인 자리이다. 마음이 아플 때 비로소 나는 둘, 아니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이 된다. 그때의 나와 너, 지금에서 사라진 너와 제자리를 맴도는 나, 이 모든 것을 보는 나... 부재와 결핍, 회한이 증명하는 인간의 복수성, 타자성. 나는 내가 아니며 오직 사라진 너의 냄새, 소리, 흔적을 좇는, 더듬는 유령일 것이다. 나는 이제 오직 너를 가리키는 화살표이고, 다리가 없는 병신 볼록거울이고, 읽을 수 없는 검은 페이지이고, 들어주는 이 없이도 지껄이는 입이고, 현상되지 못하는 음화이고, 깨진 벽 사이에 숨겨진 소문이고, 내가 사라진 나이다. 이제 너를 배고 헛배가 불러오는 나는 귀도 없는 너에게 사람은 사라진 풍경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가 내리지 않은 기차, 네가 나타나지 않은 거리, 네가 참석하지 않은 잔치, 네가 함께 가지 않은 가로등 아래 거기. 사실 나는 그때 기차역에 마중 나가 나에게로 걸어오는 너를 환호했고, 너와 그 거리를 함께 걸었고, 케이크의 불을 함께 밝혔고, 그때 그 어두운 시골 거리를 함께 걸었었다. 사실 그때 그 기차역, 거리, 잔치, 가로등 밑 거기에 우리가 함께 있었던 것은 헤어지기 위해서였다 추억을 갖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불안해하면서 행복해했다. 아니 그때 그 기차역, 거리, 잔치, 가로등 불빛이 진짜였는지, 혹시 많아진 우리 때문에 황망한 내 환각, 환청, 환시가 만들어낸 거짓말인지 모르겠다 정말 우리는 그때 함께 했었던가, 그게 정말 나였고 너였는가, 그때 우린 정말 둘이었는가, 당신은 확신을 갖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둘은 과연 둘인가 그때 이미 너는 나하고 달리 여럿이었으므로 우리는 둘 말고 더였는가 너는 언제 마음에서 나를 몰아내려고 했고 네 마음에서 쫒겨난 나는 언제 현장에 남겨져 볼록거울에서 문득 나를 알아보고 세상이 비틀어져 엉망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가.

정철규-lingering moment 19_캔버스에 유채, 나무_지름 50cm×5_2010
정철규-lingering moment 20_캔버스에 유채, 나무_지름 50cm×5_2010

이제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무 것', '하찮은 것', '사물'이 된다. 나는 퍼드덕 날아가는 새들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는 곧 떨어지는 옥상의 화분이고, 네트에 모가지가 걸린 검은 새이고, 농구장이 바라보이는 철조망 너머 누가 매달아 놓고 사라진 검은 풍선이고, 누가 버리고 사라진 늘 깨진 화분이고, 낙하하지 못하는 낙하산이고, 심지어 볼록거울이다. 나는 이야기에나 나오는 그림, 물건, 비유법이므로 죽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이야기 속을 헤매이는 유령, 헛것, 누구나 아는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 없는 풍경, 너를 차마 거주시키지 못하는 마음, 무인지대. 너는 볼록거울이 된 내가 딛고 있는 그때, 거기를 나만큼 앓았을까. 그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실수인가, 잘못 써내려간 서사인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읽을 수 없는 삶이었던가. 이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그러므로 계속 반복되어야할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아직도 현장에 있으므로 이 참극을 살고 관통하기 위해 계속 이야기를 지어낼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우리가 우연히 어느 자리에서 만난다고 해도, 그것은 실패가 전부인 시절과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마음 없이 바삐 걷다가 옷깃이 스친 사소한 인연도 아닌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 들려지겠지만, 언젠가 더 이상 말이 없으면 이야기가 끝날 시간이 오겠지만, 마음이 드디어 제자리로 들어와 숨는 날이 오겠지만, 흉터에 대해 자랑할 날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사람의 삶을 베낀 이야기다. 이것은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진부한 멜로 영화같은 이야기 혹은 그림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진부한 실패에 대한 후일담이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말로 옮기는 나나 작가의 그림을 읽고 나의 말을 보는 당신들 모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일 것이기에, 사실은 이 모든 세상에서 딱 한 번씩만 일어나는 유일한 삶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기록이고, 사실 주위를 배회하는 똑같은 꿈/악몽이고, 사랑을 숭배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아직 사랑을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애도의 노래이다.

정철규展_lingering moment_송은갤러리_2010

볼록거울은 우리를 위험에서 지켜주기 위해 그곳에 있지만, 위험은 오직 겪은 뒤에만 위험이 된다. 그것이 나를 보고 물어온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으니 이제 쓸쓸해도 되겠니? 폐허 위에서 한바탕 꿈을 꾸었으니 이제 폐허를 노래할 시간이다. 실패한 사람들은 오직 과거를 읊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기도 한다. 아직 실패까지 오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서, 영원히 실패할 삶을 위해. 이것은 비평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을 죽일 때까지 시간과 싸우는 마음이 마을인 사람들을 베낀 이야기에 불과하다. ■ 양효실

Vol.20100405c |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