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sciousness 자의식

공수정展 / GONGSUEJUNG / 孔秀貞 / photography   2010_0406 ▶ 2010_0418 / 월요일 휴관

공수정_self Consciousness #1_디지털 프린트_20×24inch_2000

초대일시_2010_0406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pm~06:0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_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 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갇혀있는 틀을 인식하는 순간, 내 자신이 영위해오던 세계는 무너지고 그 틀은 벗어나고픈 한계와 고난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인식했을,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 또한 인식하고 있는 틀. 서로의 인식범위는 달랐을지 모르나,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한 행보가 과거부터 있어왔다. 이 작업은 이러한 행보에 보태는 한걸음 한걸음이다. 성이라는 틀을 하얗게 지우고, 숭고한 제의를 치르는 듯 자신을 세우기도 하고 누이기도 하며 자연 속에 하나의 생명으로 자신을 담는다. 틀을 벗어던지고 자연을 새로운 세계 삼아 (가만히 눈을 감고) 담담히 그 속에 나를 담는 것이다. ■ 공수정

공수정_self Consciousness #2_디지털 프린트_20×24inch_2001

주체의 탄생 ● 대상을 겨냥하여 쏘는(shooting) 행위가 닮아서 사진을 사격에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인물사진을 찍는 작가를 수잔 존탁은 "부드러운 살인자"로 부르기도 한다. 기계적인 형식과 결과만 놓고 보면 사진은 분명 총이다. 이미지로 포착되는 순간 피사체는 '내 것'으로 소유된다는 점에서 사진은 전리품(戰利品)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진을 찍는 주체의 의식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존탁은 사진의 구조론에 갇혀 의미론을 간과하고 있다. '작품'으로서 사진의 생명은 의미상 죽은 자 혹은 죽을 자를 살리기도 한다는 데 있다.

공수정_self Consciousness #3_디지털 프린트_20×24inch_2002

이러한 사정을 이번 공수정의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존탁의 말대로 사진은 대상을 기계적으로는 '소유'하거나 '약탈'하나, 의미상으로는 '해방'시킬 수 있다. 공수정의 작품에서는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얗게 칠한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이 작가 자신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캐릭터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초점이다. 배경은 숲, 늪, 무덤, 산, 갯벌, 강 등의 자연이며, 인물은 서있거나 누워있거나 엎드려있거나 웅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작품의 주제를 알리는 결정적인 단서는 관(棺)처럼 보이는 흑구덩이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작품 그리고 무덤 위로 상반신을 드러낸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전시작 전체가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공수정_self Consciousness #4_디지털 프린트_20×48inch_2009

작품 속 인물의 신체윤곽에서 여성임을 알 수 있지만 그건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그러할 뿐 인물은 전신에 흰색 칠을 하고 있어서 여성성은 거의 은폐되고 있다. 신체의 자연적 속성을 '지움'으로써 외형의 '죽임'으로 다가선다. '하얀 인물'은 무표정하게 중성화(中性化)되어 다소 섬뜩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중성'으로서의 인간은 본래 이렇게 타자(他者)적인 법이다. 이 타자성은 모든 인간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여성'에게서 '생리적인 속성'을 제거함으로써 중성적인 '인간'을 지향한다.

공수정_self Consciousness #5_디지털 프린트_20×48inch_2010

공수정은 이번 전시작품에서 자신을 차갑게 죽이고 있다. 하지만 또한 살려내고 있다. 자신을 무덤과 관에서 끌어내어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다. 자기를 확실히 죽이지 않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토마스 만의 표현을 빌면,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자는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니체의 표현을 빌면, "인간은 극복되어야 만 할 어떤 것이다."에 상응하는 작업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지금 자기의 죽음을 통한 자기의 극복에 참여하고 있다. '주어진 여성(性)'을 '만들어가는 인간(人間)'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래서 '자기 초월(超越)'이다. 작품은 이렇게 '초월'의 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에 지나지 않던 '여성'은 작품행위를 통하여 '인간'으로 승화/탄생되고 있다. ■ 유헌식

Vol.20100406a | 공수정展 / GONGSUEJUNG / 孔秀貞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