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못 할 나라

정도윤_조송주_최선영展   2010_0403 ▶ 2010_0501

작가와의 대화_2010_0403_토요일_07:00pm

기획_작은공간 이소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작은공간 이소 대구 남구 대명3동 1891-3번지 B1 Tel. +82.10.2232.4674 cafe.naver.com/withiso

이번 전시는 현재,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개인의 내면적 상황을 비판하고 문제 제기한다. 문제들의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상식을 벗어난 상황들은 실없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러한 현실을 여과 없이 포착하거나 농과 냉소로 넘겨 버림으로써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모습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우스운 것인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 작은공간 이소

최선영_미래_디지털 프린트_60×40cm_2010
최선영_실화_디지털 프린트_60×40cm_2010

웃지 못 할 나라 ● 웃음이 나올 만큼 황당하지만 웃지 못 할 만큼 심각한 나라. 나라를 들먹이니 내가 뭐라도 되는 냥 민망하고, 거창한 짓이라도 할 것인 냥 부담스럽고, 나만 쏙 빼놓고 이야기 하는 냥 웃기니, 그냥 우리라고 하자. ● 우리네 모습이 참 웃기다. 개콘 보다 웃긴 정치판, 말 한마디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정보화 시대, 쌍욕을 맛깔나게 하던 아이들과 금지된 빵꾸똥꾸, 어느 때보다도 돈을 밝히는데 어느 때보다도 부족한 돈, 돈은 없는데 잘도 들어가는 니코틴과 알코올,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던 주정뱅이 개그, 인기 있는 뇌물품목 미술, 백수에게 남겨진 등록금 대출, 치솟는 실업률과 남아도는 삽질, 발버둥 쳐도 안변할건 알고, 불만은 많은데 너나 잘 하세요란 말에 벙어리 되고,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이 글이 걱정되고... 우리, 참 웃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있다. ● '웃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감정이라는 것이 애민하고 복잡한 뉘앙스를 가진다고 한다면 그것을 드러내는 웃음도 '웃음'이라는 포괄적인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뉘앙스에 따라 웃음은 즐거움과 기쁨뿐만 아니라 때론 슬픔, 허탈함, 비꼼과 같은 역설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웃음의 역설적인 모습은 특정 감정에 걸맞는 일반적인 표정이나 행위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 ● 개그와 풍자는 사회적 '웃음'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그 둘은 우리네 모습들을 과장하거나 연출하며 웃음을 생산한다. 웃음이 생산되는 지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과정이 단순히 과장과 연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불특정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분명 사회적 맥락이 작용하고 있으며,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상식을 벗어난 어떤 것을 조롱하고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비판이 존재하기도 한다. 상식을 벗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그릇된 뭔가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미 공감과 설득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조송주_밥&법_종이에 연필_21×15cm_2008
조송주_팔렸음_캔버스에 유채_45.5×65.1cm_2006

얼마 전 모TV방송에서 아나운서가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던 중 웃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인터넷을 떠돌며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생방송이라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 정치적 내용의 진지함이라는 웃어서는 안 될 상황이 오히려 참을 수 없는 웃음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빵꾸똥꾸' 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는 우스움과 그 단어가 정치적인 맥락 속에 보도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상황, 그 내용을 진지하게 읊어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긴장감과 진지함이 개그로 돌변하는 순간을 감지했을 것이다. 아나운서의 웃음은 사건에 대한 어떤 논리적인 비판보다도 상식적이지 않은 현실을 강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더 웃긴 것은 그것이 개그나 풍자가 보여주는 과장과 연출이 아니라 실화라는데 있다. ● 사회적 발언이라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그 발언이 결국 어떠한 판단과 입장을 전제로 한 의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불특정 다수가 접할 수 있는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의도는 의도를 넘어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거나 정당화하기위한 사적인 발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때론 그 발언들이 진심을 바탕으로 이루지기보다 파급효과와 전략 그 자체를 위해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발언과 발언자에 대해서 진실여부와 자격을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은 어떠한 발언을 하기에 앞서 피곤한 책임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래서 발언과 행동을 선뜻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상황이 대립적인 진영이나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많은 전략과 복잡한 맥락, 주장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제각기 추측을 난무하거나 자신의 욕망에 치우치고 이익을 계산하거나 조롱과 비꼼만을 난사할 뿐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나 판단은 갈수록 흐려져만 간다. 결국 우리는 발언을 보류하고 행동하지 않는 무책임함과 발언 이면의 전략과 자격을 헐뜯는 비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도윤_News Paradox #1_디지털 프린트_25×35cm_2009
정도윤_염원프로젝트_C 프린트_각 101.1×68.58cm_2008

예술가는 어떠한 발언에 대해 사회적 책임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 행동에 대한 진정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언과 행동을 회피하거나 다소 소극적인 경향이 있고, 사회적으로 엮여있는 위치라는 게 그다지 없기 때문에 발언과 행동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발언에 있어서 이익이 결부되지 않은 소신이, 거리를 두고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직관이 존재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그 발언과 행동이 주목받기 위한 전략으로 치부되어 버릴 수 있다는 또 다른 걱정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이 전시가 소신과 직관을 가진 발언이라고 내입으로 말하긴 뭐하고, 너희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하면 그다지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 해본다. 믿을 수 없는 발언이 난무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다지만 발언의 무대 자체가 없어지고 있는 현실은 정말이지 상식적이지 않다. 어쨌든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게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희망이라면 희망일 테고... 알고 있으니 이제는 발언할 차례다. ■ 작은공간 이소

Vol.20100406d | 웃지 못 할 나라-정도윤_조송주_최선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