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tterfly

문수만展 / MOONSOOMAN / 文水萬 / painting   2010_0407 ▶ 2010_0413

문수만_Le Papillon-76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53×45.5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문수만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순간의 지연 속에 재구성된 실험의지-믹시움(mixium)을 통한 문수만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1. 수공적인 측면이 강한 묘사주체가 리얼리티를 수반한 채 고스란히 화면에 안착되어 있으나 그 주체성은 다른 무엇과 오버랩 된 듯한 느낌과 인식을 전달한다. 그의 오랜 주제인 '나비'의 펄럭거림과 지연성은 언제나처럼 역설적 자유로움을 상징하고 현실과 비현실, 허구와 실존 사이를 날아다니지만 표면상으론 보다 세련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도록 만든다. 특히 좌우대칭의 구조를 한 채 작지만 정교하면서도 다채로운 색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나비에 의한 시각적 환영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각 개체마다 드리워져 있는, 예리할 정도로 매끈해진 실루엣은 확실히 일전의 수동적인 상태를 만족스럽지 못하도록 만든다.

문수만_Ter Butterfly-16_믹시움, 디아섹(싸이텍)_65×65cm_2010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비 본래의 생태적 측면의 희석은 없다. 아름다움이나 자유로의 동경,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자연 이미지인 나비의 특성과 전통적으로 장수에 대한 염원 등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기에 텁텁하게 스치듯 지나간 '손맛'의 여운이 가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분열되고 모아지며, 인지와 비인지를 근간으로 한 실제와 허구의 융합이 '나비'라는 공통분모에 의해 여전히 동일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음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 허나 전에는 알 수 없던 미묘한 차이는 유효하다. 캔버스를 이탈해 평평한 판형에 사뿐히 거처하고 있는 나비의 배열도 그렇고, 가시적으로 확연해진 그 나비의 형상성과 더불어 착시를 유발하는 마블링효과 역시 전에 비해 뛰어난 발색을 뿜어내고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차이가 발생한 원인을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매체 간 혼합'아래 잉태된 '효과' 덕분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이상의 매체 간 혼합이란 '사진의 형식을 빌려 손으로 그린 회화'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손으로 정밀하게 그린 그림을 재구성하여 전혀 다른 차원의 타블로로 치환하는, 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기법을 말한다. 그것을 굳이 용어로 정의하자면 '믹시움(mixium)'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혼성을 나타내는 하이브리드(hybrid) 개념과 흡사한 것으로 보면 된다.

문수만_Ter Butterfly-18_믹시움, 디아섹(싸이텍)_25×80cm_2010

2. '믹시움(mixium)'이란 복수 이상을 섞어서 만든 '혼합물'을 뜻하거나 '혼합'을 지시하는 믹스추어(mixture)'와 예술 표현 수단의 하나로 그 수단자체이거나 표현에 사용되는 소재(素材)나 도구'를 의미하는 미디엄(medium)의 합성어이다. 이는 용제를 뜻하기도 하지만 예술적 표현을 위해 사용되는 혼재된 수단이나 도구를 지칭하며, 단순히 재료가 아닌 기법, 분별없는 완전한 섞임과 작품의 질, 그 수법(행위)을 핵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료적 측면의 외피적 교합에 중심을 두는 나타내는 믹스미디어(mix media), 즉 혼합재료와는 엄밀하게 구분된다.

문수만_Ter Butterfly-23_믹시움, 디아섹(싸이텍)_35×50cm_2010

작가가 새롭게 펼쳐 보인 '믹시움(mixium)' 방식은 이번 문수만 작품전에 선보이는 작가의 실험의지를 담보하는 용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르와 성징을 서로 달리하는 수단이 하나의 형질 아래 융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법적으로도 잘 배합되어진 양상을 엿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The Butterfly-17」(2010년 작)은 투명 아크릴판에 매개를 압착함으로써 유리를 끼웠을 때처럼 어른거리지 않아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이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덕분에 나비는 더욱 생동감 있게, 생태적 이미지마저 훨씬 깊게 여울져 다가온다. 16마리의 나비가 동심원을 형성하고 있는 「The Butterfly-16」(2010년 작)나 37마리의 나비가 군락을 이룬 「The Butterfly-25」(2010년 작)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소 초현실주의적인 여운을 심어주는 이 작품들은 '믹시움(mixium)' 방식으로 인해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현실과 꿈을 잇는 나비를 통해 미지로 향한 심상과 꿈이 배가되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문수만_Ter Butterfly-24_믹시움, 디아섹(싸이텍)_90×180cm_2010

그러나 알고 보면 주제가 되는 나비는 작가가 일일이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을 재구성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사진과는 다른 성격을 지님을 알 수 있다. 보통의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아트가 사진이나 컴퓨터상에서 작업된 그림을 출력하여 그 위에 덧씌우는 방법으로 결과물을 얻는다면 그의 작업은 반대로 캔버스에 그려진 주제(나비)들을 모니터에서 자유롭게 또는 부자유스러운 배열로 배치함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구성력을 갖춘다. 이를 사진의 관점에서 서술하면, 메이크(make), 즉 찍는(take) 사진에서 벗어나 만들어진 사진이지만 정확하게는 위에서도 언급했던 '사진의 형식을 빌려 손으로 그린 회화'라는 게 옳다.

문수만_Ter Butterfly-25_믹시움, 디아섹(싸이텍)_90×90cm_2010

3. 문수만이 이러한 작업을 시도한 이유는 새로움에 대한 의지 탓이 크다. 그동안 유지해 왔던 고유한 작업형식(극히 세심한 주의력과 인내를 요구하는)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장르를 개척하려는 욕망의 결과물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이전 작업들이 지녀온 특성을 이탈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기술했듯, 혹독한 인내와 세심함, 치밀함을 요구하는 묘사 대상의 주체가 변화한 것은 더더욱 아니며, 돋보기를 들여다봐야만 작업할 수 있는 리얼리티적 요소들은 물론 형태와 색감까지도 여전히 풍족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개인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각적으로 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가는 선, 그 선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면의 치밀한 조우, 극한의 정교함에 보는 이들을 놀라움과 감탄에 젖게 하는 것까지 닮아 있다.(이 부분은 이전 전시비평에서도 누차 언급한 것으로, 문수만이 만들어가는 조형세계의 핵심적인 일부이기 때문이다.) 허나 사실적인 재현을 거쳐 '채움'을 강조하되, 형상성을 가미한 조화(遭禍)를 새롭게 추구함으로써 되레 비움의 역설을 은유하는 방식 역시 변하지 않은 특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점에선 오히려 작업의 자율성이 극대화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혹자는 변화에 대한 약간의 실험의식이 투영되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주제의 율동은 고착상태를 현저히 배제하며 재현의 방식에서 논리의 방식은 두드러짐은 '믹시움(mixium)' 아래에서만이 강화된 설명을 갖는다.

문수만_Ter Butterfly-29_믹시움, 디아섹(싸이텍)_49.5×110cm_2010

해당 방식 덕택에 한정성에 갇혀있던 나비는 스케일이 큰 마당에 놓이게 되었고 정적인 상황에서 동적인 상황으로의 변모 또한 시공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멈춤에 놓여 있던 박제들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분방하게 산란시켰던 2009년 개인전 당시보다 진일보했다. 이는 작업의 큰 주제인 "자유롭지 못한 나비의 배열을 통해 역설적으로 강열한 자유의지를 표현하려 한다."는 작가의 신념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이번 일곱 번째 개인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남다른 의의는 무엇보다 그가 관념상태에 머무르지 않은 채 이행의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에 있다. '믹시움(mixium)'이 내재한 효과가 적던 크던 그것과는 관계없이 무언가 다른 발상, 그에 따른 실제 전환과 대입은 창작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겐 매우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7년 이후 서서히 틀을 깨고 역동하려는 몸짓이 주제인 나비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서부터 발현되고 있음은 긍정적이다. 2009년 전시에서 선보였던 속박을 함의하던 핀의 제거, 율동이 감지되는 띠의 확대, 군무에 가까운 나비들의 형상이 변화를 예고했다면, 이제는 '믹시움(mixium)'이라는 이름으로 가늠의 형국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바로 그것에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 홍경한

Vol.20100407c | 문수만展 / MOONSOOMAN / 文水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