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ELERANDO

김지아나展 / KIMJIANA / 金志我懦 / ceramic   2010_0403 ▶ 2010_0427 / 일요일 휴관

김지아나_Have a nice day ! 그리고 2010_고령토_각 지름 9cm, 가변크기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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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403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인더박스 갤러리 GALLERY IN THE BOX 서울 강남구 신사동 657번지 B1 Tel. +82.2.540.2017 www.galleryinthebox.com

빠른 템포의 현악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빠르게 움직이는 현악기 소리와 전시장 벽을 가득채운 볼(Bowl)들이 걸어가는 움직임에 따라 변화한다. Accelerando(아첼레란도_음악에서 쓰이는 점점 빠르게) 전시장이다. 작가 또한 참 오랜만에 만나는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만의 그림 물감인 도자기(Bowl)로 공간을 그린다. 작가에게 공간이 화판이며 도구이다. 공간에 따라 볼(Bowl)은 다시 태어난다. 마치 가마속에서 다시 빚어 구운 도자기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듯이... 작가에게는 볼(Bowl) 하나하나가 캐릭터가 된다. 작가가 그 캐릭터를 따라가고 그 캐릭터가 작가를 닮아간다. 인위적으로 만든 볼이기는 하나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예쁘게 다듬어진 볼 뿐만아니라 못나게 찌그러진 볼 모두가 작가에게는 소중하고 필요하다. 그 볼들로 작가는 다시한번 거대한 덩어리를 만든다. 과거 작가의 볼(Bowl) 작업이 토네이도와 같은 뜨거운 열정이었다면 오늘의 작업에는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가 된 토네이도, 즉 작가의 잔잔하고 편안한 정서가 그대로 전달된다. 우연히 걸어다가 흘러오는, 옛과거를 아련하게 떠올려주는 음악 한소절 같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작은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어보자. ■ 이혜진

김지아나_ACCELERANDO_점점 빠르게_가변설치_각 지름 9cm_2010
김지아나_ Accelerando 점점빠르게_가변설치_각 지름 9cm_2010
김지아나_Red Moon 개기일식_세라믹, LED, 조광기_90×90×7cm_2010

김지아나의 그림은 작은 빛의 조각들로부터 시작한다. 투과성을 지닌 얇은 도편 위에 담긴 빛은 서로 어우러져 커다란 빛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각각의 빛의 조각들은 조형적인 요소로서 빛의 시작을 의미하며 그곳에 담긴 빛의 색은 우리의 생각, 시간, 기억, 추억 등을 경험적으로 인지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빛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빛의 공간은 우리를 같은 시공간 속으로 이끌어준다. 다양한 소재인 Ceramic-Bowl, Crystal, 투광성을 지닌 얇은 도편 등을 사용하여 마치 화가가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듯이 LED의 빛과 DIMMER의 연출을 통해 빛의 산란과 반사, 흡수의 이미지 시퀀스(Sequence)를 제시하는 작가는 삶의 쉼 없는 변화 속에 생성되고 소멸해 가는 특별한 사건들, 기억 등을 붙잡아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조형적 해석을 가하면서 가시화한다. 우주적 비전이 열어 보이는 존재의 유비 ● 김지아나의 작업은 세라믹 조형작업으로 범주화된다. 그러면서도 세라믹을 소재로 한 여타의 작업들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세라믹 소재 작업과 관련한 유형화된 경우를, 그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서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일련의 볼(bowl) 작업에서 하나의 몰드에서 주조된 다른 형태들이 필연성과 우연성을, 자기복제성과 차이를 결합시키고,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조화를 일궈낸다. 그리고 그 유닛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토네이도를 만든다. 이와 함께 공간 바닥에 늘어선 유닛들은 시간을 조형화한다. 창을 통해 투사된 빛의 강도와 기울기가 만들어낸 궤적 그대로를 유닛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낱낱이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흡사 종이로 만든 케이크 받침대처럼 생긴 세라믹 틀 속에서 고개를 내민 호박이나 가지 같은 유기적인 형태(작가는 이 형태를 사랑의 계기로 보는데, 사실상 그 의미가 생명의 계기와도 통하는)의 시리즈 작업이 필연성과 우연성과의 관계를 또 다른 형태로 변주해낸다. 기하학적 틀로써 상형된 인위적인(인공적인) 질서와 유기적인 형태로써 상형된 자연(혹은 생명)이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유닛들 하나하나는 추상적인 형태들이지만, 이것들이 어우러져서 구상적인 대상을 연상시키고 재현적인 성질을 획득한다. 이를테면 토네이도와 시간, 인위적인 질서와 유기적인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특히 흑과 백의 대비로 나타난 명과 암, 음과 양의 존재론적 상징과 같은. 이처럼 추상적인 단위구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재현적인 성질을 환기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순수) 형식논리와 현실성(혹은 현실감) 사이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이며, 그 경향은 근작에서 또 다른 형태로 변주되고 심화된다. ● 근작에서 작가는 조형적인 요소를 위해 빛을 도입한다. 그 세부를 보면, 세라믹 소재의 얇은 막(피막)으로 된 자잘한 조각들을 한자리에 조합한 연후에, 여기에 LED와 같은 조명을 장착해 일종의 라이트박스 형태로 재구성한다. 이때 세라믹의 원 재료인 흙은 불투명하지만, 이를 소성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투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소성 과정을 통해 흙에 함유된 불순물이 녹아내리는(산화하는?) 것과 함께, 흙의 조직이 균일해지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런 투명성과 함께 세라믹 특유의 강도 역시 소성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흙이 불을 만나 그 성질이 변질되는 일종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 자체를 물질과 물질이 만나 고유한 성질이 변질되는 연금술적 과정에 비유할 수 있겠다. 더불어 물질의 변용을 통해 한갓 물질로부터 의미를 캐낸다는 점에서는 물질적 상상력(그 이면에 일종의 비의를, 어떤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하튼, 작가의 작업에서처럼 소재의 두께가 현저하게 얇을 경우에 투명성은 더 강조되기 마련이다. 이런 연유로 세라믹 막과 그 막을 투과한 빛이 어우러져서 은근하고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의 빛의 질감을 자아낸다. 여기에 빛의 밝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조광기(디머)를 장착한 조형물이 그저 빛을 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조형물 내부로 빛을 흡수해 들이는 것 같은 특유의 느낌과 인상을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마치 빛이 조형물의 고유한 성질처럼 보이고, 세라믹 소재 본래의 성질(그 내부에 빛을 머금고 있는 소재?)인 양 느껴진다. 비록 빛 자체는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비물질적이고 관념적인 빛(빛의 추상? 빛의 도상? 빛의 기호?)을 접하는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에 감싸이게 한다. ● 이와 함께 조형물 내부에 장착된 조명이 갖는 고유의 형태(대개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감(대개는 청색과 적색 그리고 녹색 계열의)이 일정한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점 역시 주목해 볼 부분이다. 이를테면 대개는 원형의 형상이 일반적인데, 주지하다시피 원형은 여타의 기하학적인 형태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형상에 속하며, 이로써 완전한 존재를, 순수 관념적 존재를 상징한다. 그리고 닫힌 형태(체계)가 자기 완결적 존재를 암시하며,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모든 지점에서 임의적으로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무한순환의 (절대) 경지를 암시한다. 혹은 생과 사가 반복 순환하는 자연의 위대한 원리를 떠올리게도 한다(이를테면 윤회의 바퀴에서 그 상징적 도상을 확인해볼 수 있는). 이로써 기하학적인 형태 자체가 일종의 도상으로, 일종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기호로서의 의미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호에 내재된 관념적인 성질이 색채의 감각적인 성질과 어우러져서 어떤 재현적인 요소 내지는 성질로 확장된다. 이를테면 적색의 조형물이 태양을 떠올리게 하고, 청색 계열의 조형물이 달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호수에 비치는 달」, 「빛 이야기」, 「개기일식」과 같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부친 일련의 제목들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재현적인 성질은 조형물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세라믹 파편들이 중첩되면서, 그리고 여기에 빛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비정형의 그림자(음영)가 마치 태양의 흑점을 닮았다거나, 달 표면의 얼룩이나 자국을 떠올려주는 것에서 더 강조된다. 특히 청색 계열의 조형물은 달 고유의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의미와 함께(달 신화와 관련된 널리 알려진 예로는 달이 여성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어떤 서정적인 느낌(달의 질감에 연유한 멜랑콜리?)에 감싸이게 한다. 그런가하면 여러 개의 달이 동시에 떠 있는, 상식적으론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해 본 작업이 이를테면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달의 정경을 노래한 월인천강지곡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달은 말할 것도 없이 실제 하는 달이기보다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달, 비록 그 대상은 하나지만 저마다의 마음속에서만큼은 다른 달들(마치 하나의 몰드에서 유래한 다른 형태들처럼), 그런 달을 품는 마음의 어떤 경지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해와 달 같은 다소간 도상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현실적 요소 내지는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를테면 지평선이나 공지선(주로 직선으로 표현된) 위로 떠오른 달을 형상한 작업에서 (상징적이고 도상적인) 재현은 풍경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비록 빛도, 기하학적인 형태도, 색채도 하나같이 추상이지만, 정작 이런 추상적인 계기 내지는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현실적인 존재(이를테면 해와 달이 어우러진 풍경), 관념의 어떤 경지(이를테면 생과 사가, 생성과 소멸이 무한순환하고 반복되는 존재의 비의와 같은), 감각적인 성질(이를테면 서정적인 느낌)과 같은 상징적이고 재현적인 차원을 일궈내는 것이다.

김지아나_창_물_61.5× 61.5×8cm_2009
김지아나 Accelerando_가변설치_각 지름 9cm_2010

이외에도 공간 바닥에 설치한, 내부로부터 빛을 발하는 무슨 관 형태의 조형물 등 작가의 작업은 평면과 입체, 그리고 공간설치를 아우른다. 그림처럼 벽면에 걸리는가 하면, 조각처럼 공간을 점유한다. 더욱이 평면이나 입체 할 것 없이 조형물의 내부로부터 발해지는 빛이 표현의 영역과 범주를 조형물의 경계를 넘어 공간에로까지 확장시키며, 공간을 어떤 에너지의 장으로 탈바꿈시켜 놓는다. 하나의 몰드로부터 떠낸 다른 형태의 유닛들이나, 종이만큼이나 얇은 세라믹 파편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그 자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유비적 표현이기도 한)를 표현하는 작가의 작업은 현대도예의 양상과는 또 다른 지점을 예시해준다. 말하자면 대개는 흙을 빗어 형태를 만들기 마련인데 비해, 작가는 세라믹 자체의 본성으로부터, 질료 자체의 본성에 주목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풀어내는 편이다. 작가의 작업이 세라믹이면서도 어떤 기능이나 형태(매스?)보다는 빛과 질료가 어우러진 조형적 성과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이러한 사실의 인식과 무관하지가 않다. 세라믹의 본성을 이해하고 극대화하는 것, 이를 변주하고 심화시키는 것에서 작업이 가능한 또 다른 지점을 탐색하고 발굴해내는 것이다. 그 탐색의 과정에서 소재의 피막, 껍질, 피부와 같은, 그 존재감이 박약하고 미소한 것들과 관련한 미학적이고 감각적인 어떤 지점이 설핏 예감되는데, 향후 작업에서 어떤 형태로 풀어질지 자못 기대가 된다. ■ 고충환

Vol.20100407i | 김지아나展 / KIMJIANA / 金志我懦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