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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_김수희_배윤미展   2010_0413 ▶ 2010_0422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_2010_0413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_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karts.ac.kr/gallery175 club.cyworld.com/gallery175

선언하지 못하는 우리와 지금 ● 여기서 우리는 작게는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김대현, 배윤미, 김수희 그리고 나이며 나아가서는 동시대에 예술을 고민하는 젊은이, 20대 또는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를 뜻함을 밝힌다. '우리'가 타자에서 분화된 나를 전제로 하는 공동체를 지칭 할 때, 지금을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것처럼 보인다. 낭만을 거세당한 대학생, 푸르름을 잃어버린 청년, 어떤 커다란 가능성도 우울도 없이 흘러가는 청춘의 시간 앞에서 동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현실인식은 왜소하거나 왜곡되어있고 거의 대부분 무관심으로 점철되어진다.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한척하는 우리는 쿨하고 시크하며 엣지 있다. 알 수 없는 열패감과 세상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희화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미술이 사회의 가장 첨단에 서있는 예민한 것을 건드리는 작업이라고 할 때, 작가는 동시대의 젊은 작가는 이러한 열패감과 우울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혹은 훨씬 더, 상품세계 안에 살고 있는 미술가는 스펙을 강요받고 이제 막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현실은 미술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자본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으며 이상을 향한 동경으로써의 예술은 그만큼 확대되거나 축소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젊은 미술가들의 태도이거나 관점일 것이다.

김대현_Alter_세라믹_90×60×45cm
김대현_Pilot_혼합재료_45×27×20cm

배윤미의 작업은 고도의 추상성 위에서 미술이 가지는 노동의 가치를 드러낸다. 강요되지 않은 노동의 반복은 작가가 세상으로부터의 나를 잊는 방식이며 이를 통해 언어화 되거나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경험으로써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단조로운 흰 종이 위에 새겨진 무수한 연필선의 반복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내면적 풍경의 심상을 드러낸다. 심상은 역사적인 맥락으로부터 개별성을 획득하여 개별적 주체의 보편성을 향해 나아간다. 배윤미의 작업 속에서 드러나거나 요구되어지는 작가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 작품의 시선은 그러므로 항상 관조하는 태도를 취한다. 관조는 직관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대상은 추상의 형태를 통해 보여 지며 이는 곧 '이미지를 지우는'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배윤미 스스로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김수희_Q_cube_190×125×90cm
김수희_T_세라믹_45×190×45cm

김대현은 자신이 가지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것을 만들어 내는 '행복한' 작가이다. 성정체성을 드러내거나 긍정하는 작업은 수없이 많이 있어 왔지만 김대현의 작업이 개별성을 획득하는 건 그러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 스스로의 시선이 대상화 되어있거나 정형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빛나고 이상적인 몸을 갖고 있는 그들의 성기는 항상 똑바로 서 있기를 요구받고, 감정이 제거 된 듯이 보이는 그들의 표정보다는, 각자의 코스튬을 통해 그들 스스로는 객체성을 획득한다. 작가가 밝히듯이 '나만의 제단'위에 세워질 그들 각자는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희생되거나 희생되어질 '남성성'+'게이'라는 제물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남성성은 근대 이후 산업사회를 이끌어 온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그것은 주입된 여성성과 마찬가지로 편협하거나 왜곡되어 있다. 소비가 강조되어지는 현대에 와서 남성성은 게이의 이미지와 묘하게 중첩되어진다. 매혹적이고 부드러우면서도 '남성적인' 아름다운 몸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소비 대상으로써의 환타지로 물신화되는 것이다. 희생양의 제의를 통해 공동체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했던 그리스에서처럼 한국 사회에서 소비되어지는 게이의 이미지는 증오와 매혹의 양가적인 것이다. 김대현은 그 자신 스스로가 타자화된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따라서 김대현이 만들어내는 피규어들은 인간과 인형사이 어디엔가 놓여 있으며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호성을 드러낸다. 어딘가 존재할 것 같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피규어들의 성난 성기는 그러므로 더욱 더 예민하며 피곤하다.

배윤미_종이에 연필_150×150cm
배윤미_종이에 연필_150×227cm

저기 마주 보이는 아파트 안에 작은 소녀가 서있다. 복잡하게 정형화된 아파트의 차갑고 날카로운 선들 속에 갇혀 있는 소녀는 왜소하며 둥글다. 김수희는 초기 작업을 통해 불가결하게 주어져 있는 도시공간과 그 속에서 소외되는 '소녀'라는 가장 여린 심상의 대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소녀가 갇혀 있는 아파트라는 공간은 다시 정형화된 대상에서 벗어나 소녀를 둘러싸고 따듯하거나 환멸적으로 재조립됨으로써 이러한 대립은 막연히 적대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대상과 주체의 심적 동일시로 주어지게 된다. 아파트는 지금의 서울 또는 거의 모든 도시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주거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친숙함familiar은 그러나 구획 화 된 도시 안에서의 아파트처럼 정형화 된 공간 위에 기반 한 것이기에 그 안에 사는 현대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하나로 합치될 수 없는 불 균질성과 불안을 내포하게 된다. 이러한 불안이 불현듯이 표면화 되는 순간 주체는 자신을 둘러싼 대상을 통해 친밀한 것에서의 공포와 낯섦을 경험uncanny하게 되는데, 김수희의 작업은 아파트와 건축물 같은 현대 도시공간을 둘러싼 대상이 그러한 기묘한 순간을 통해 자신 안에서 재구성되고, 재배치됨으로써 자신만의 것으로 각인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최근 작업에서 김수희는 건축물이라는 대상을 평면 안에서 재구성하거나 다시 입체화 시키면서 순수하게 조형적인 놀이를 시도한다. 구조 안에 갇혀 있던 소녀는 구조 밖으로 나와 다시 구조를 재배치하면서, 구조에 새로운 색깔을 입힘으로써 대상은 환멸과 환희가 뒤섞여 있는 주체와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 여기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술 판'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세 명의 젊은이가 있다. 작업의 색깔이나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조형예술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구하고자하는 삶과 작업에 대한 태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할 것이다. 작가로써 이들은 동시대와 마주하게 된다. 한해에도 수없이 많은 미술 전공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중에서 미술 판 안에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실험하며 작업을 하게 될 이는 한정되어 있다. 김대현, 배윤미, 김수희의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들이 조형예술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어떤 말을 쏟아낼지는 다른 모든 작업을 하는 젊은이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 오늘 우리는 여기에 발표를 준비했다. 그것이 '발언'이 아니라 '발표'인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져있지 않으며, 우리의 작업이 한목소리로는 발언되지 못하는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작업은 개별적인 것이 되고, 우리는 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현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느끼고 조우하며 감내하고 반응한다.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열패감이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우리는 스스로 반성하고 성숙하며 청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우리의 작업은 이제 막 자기 안에서의 실험을 시작했기에 우리의 발표는 작업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태도에 관한 것이며, 스스로 싸우며 마주하게 될 시간에 관한 것일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선언하지 못함을 선언한다. ■ 윤상정

Vol.20100413b | We-ll-김대현_김수희_배윤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