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Doubt Ⅱ

양대원展 / YANGDAEWON / 梁大原 / painting   2010_0414 ▶ 2010_0430

양대원_의심-숲Ⅳ(위장)12019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146×114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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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41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일,공휴일 11:00am~05:00pm

동산방화랑 DONGSANBANG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93번지 Tel. +82.2.733.5877

의심, 그 두 번째 이야기_의심의 심연에서 찾은 평정 ● 원색의 화면, 날렵하고 정확한 필선, 동글동글한 인물표현. 이 세 가지가 양대원의 회화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려지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여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 하나를 덧붙여보고자 한다. 바로 그의 그림은 세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탐색을 통해 인간본연의 복잡한 심리를 통찰력 있게 그려내고, 이것을 가장 간결한 상징과 구성으로 압축시켜 보여준다는 것이다. 2년 전 그가 '의심'이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그의 그림은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시선에서 탈피하여 보다 강렬한 색채와 세속적인 내용을 함의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자세로 돌아왔음을 암시한 바 있다. 그에게 의심이란, 세상에 대한 사유의 한 형태를 반영하는데 이번 14번째 개인전에서는 이러한 의심이라는 행위가 엮어낸 긴장된 상황의 정점,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자신의 선택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양대원_의심-노란 계단50109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150×149cm_2009
양대원_의심-노란 계단(영역)20209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 62.5×149.5cm_2009

공간을 통해 구축되는 심리 ● 양대원의 회화는 색면이 주는 시각적 효과로 인해 지극히 평면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그가 그려내는 이미지들, 가령 공간을 가로지르는 벽이나 하늘로 치솟는 기둥 이미지 혹은 가느다랗게 화면에 보일 듯 말듯 숨겨져 있는 실선들로 인해 무한한 공간감을 가져다준다. 그가 지난 전시에서 의심의 대상으로서 세상의 제도나 인습,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상징하는 붉고, 푸른색의 벽을 화면에 담았다면, 이번에 그가 새롭게 선택한 오브제는 바로 계단과 커튼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전의 「의심-푸른 벽」, 「의심-붉은 벽」 연작에서는 '벽'이라는 물체가 의심의 대상(타자, 세상, 세상의 제도, 인습과 편견 모두를 상징)이면서 화면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조형요소였지만, 계단과 커튼은 그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의심의 심리가 응축되어 탄생한 가상의 공간이자 의심으로 유발되는 복잡한 심리를 화면 전반에 거쳐 전달하는 오브제로 작용한다. 즉, 지극히 평평했던 화면은 어디론가의 방향성을 지닌 계단과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커튼의 등장에 의해 앞, 뒤, 양옆, 대각선 방향으로 이리저리 재단되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결국 이것은 의심으로 인한 불안정하고 긴장된 심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 「의심-노란 계단 501090」은 이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핏빛으로 물든 붉은 공간을 노란 계단이 오른쪽 귀퉁이에서 쏟아져 나와 화면을 가르고 위를 향해 치솟는다.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간으로 묘사된 듯 보이지만 눈으로 계단을 한 층씩 따라 올라보면 대략 5-6개의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단의 수평면에 약간의 각도변화를 주면 공간은 기묘한 형태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인물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동글인은 숨죽이며 타자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양대원의 그림 속 인물로 자리한 동글인은 탐욕에 가득 찬 인간을 상징하는데, 여기서 계단은 이러한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삶에 대한 기대와 욕심, 탐욕과 경쟁에 의한 시기와 질투로 얼룩진 우리의 심리를 대변한다. 사실 계단이라는 오브제는 그의 10회 개인전 『푸른 섬』에서도 등장했다. 그때 역시 계단은 마치 바벨탑처럼 세상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관념의 산물로 그려졌는데, 그는 이것이 단숨에 파도에 휩쓸리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했다.

양대원_의심-노란 커튼03118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112×150cm_2008

또한 「의심-노란 커튼 031180」에서 커튼은 의심으로 인한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감추는 위장의 도구로 기능한다. 선택과 물음의 연속인 세상 속에서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인간의 본성을 역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림의 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길게 늘어진 장막 뒤로 동글인은 언제 어디서 공격을 가할지 모르는 순간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자신마저 의심으로 인한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심리가 계단과 커튼이라는 형태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커튼과 계단은 의심이라는 상황에 의해 위장된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 여기서 단순히 인물의 표정으로 심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재단하여 심리적 긴장을 유발한다는 점은 건축적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감각적 사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업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자 들락거렸던 그의 작업실 곳곳에서도 공간에 대한 작가 특유의 미감을 엿볼 수 있는데, 지독한 단순함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곳에 꼭 있어야만할 것 같은 창문의 위치, 작업공간과 생활공간을 적절하면서도 독특하게 나누고 있는 공간구획 등은 그의 회화에서 이미지 간의 구성력, 탁월한 공간배치를 일궈내는 감각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양대원_의심-숲Ⅵ(雨)21219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116.5×99.7cm_2009

색으로 예고된 심리적 징후 ● 양대원의 회화에서 색(色)은 단순히 그림의 조형적 요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의심이라는 심리적 범주 안에 포함되는 불편한 감정들을 전달하는 일종의 촉매제와 같다. 황토색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던 이전의 작업들과달리, '의심'이라는 주제로 일컬어지는 작업들에서는 강렬한 원색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붉은 색은 더욱 진한 핏빛으로 물들고, 노란색은 더욱 농도가 짙어지면서 색이 전달하는 의미를 보다 강화시켜나간다. 그의 그림에서 빨강이 인간 간의 질투, 투쟁, 경계의 심리를 반영하고 노랑이 욕망과 집착, 불안한 심리를 내포하는 색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계단과 커튼이 의심하는 상황에 의해 위장된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면, 이와 같은 색은 거의 필연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하겠다. 한편 붉은 색 계열의 작품들과 보색을 이루면서 짙은 녹색으로 일관하는 작업이 눈에 띈다. 이것은 '의심'의 첫 번째 전시였던 2008년 개인전에서 식물의 한 종류인 산세베리아를 작품의 모티프로 처음 등장시킨 것에서 한 걸음 더 진전시켜 나간 작업이다. 작가는 산세베리아를 숲으로 가정하고, 이것을 유일한 삶의 안식처이자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은둔처로 그려냈다. 실제로 색채심리학에 있어서도 녹색이 유발하는 심리적 안정과 평화라는 감정은 그것이 식물색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식물은 인간에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상징색인 녹색이 자연스레 평화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이 같은 맥락에서 작가가 피난처로서 그려낸 녹색의 숲은 배경으로까지 확장되기에 이른다. 붉은 색을 배경으로 숲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그려왔던 이전 작업들과 비교해본다면, 이와 같은 선택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작가의 심리를 더욱 강하게 나타낸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숲의 한 복판으로 숨어들어간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결코 평온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숲속에서도 여전히 의심으로 얼룩진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함은 떨쳐버릴 수 없고 결국 이러한 심리가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 치달으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눠 영원한 안식을 갈구하게 된다. 결국엔 인간이 자연이 되는 것이다.

양대원_의심-숲Ⅲ(이국 풍경)209090_ 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62.3×146cm_2009

침묵과 회귀, 그리고 평정 ● 인간이 자연이 된다는 것. 어쩌면 양대원이 의심 끝에 선택한 결정은 결국 스스로가 자연이 되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자연에 복종하여 순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 자연으로 묘사되어 있는 풀의 이미지는 세상으로부터의 안식처를 상징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이것은 곧 동글인의 몸에서 자생하기에 이른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생물의 보호색처럼, 동글인은 몸에서 자라나는 풀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에 이르는 것이다. 「의심-자화상(숲) 012001」과 「의심-숲Ⅳ(위장) 120190」은 자연으로의 회귀하기 시작한 인간의 모습이자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가는 가면을 쓰고 있는 얼굴 눈 밑으로 주름선을 위트 있게 그려 넣어 40대 중반을 맞이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시 근래의 전시에서 다룬 내용을 짤막하게나마 살펴보자면, 작가는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독과 같은 세상 속으로 몸을 던져 그 안을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를 관찰하기 위해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작가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서로에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절망감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결국 이러한 세상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던 숲으로 몸을 피하지만, 결국 그 역시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내기에는 부족한 나머지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자연에 몸을 맡기고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은 「의심-숲Ⅴ(잠) 511190」이다. 얼핏 보면 최소한의 색채와 형태로 표현되어 단조로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작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첫째, 이 작품이 이번 전시의 가장 최근작인 동시에 앞서 언급한 주제의 전개과정을 고려해 볼 때, 주제적인 면에서 결론을 향한 예고 내지 징후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특히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고 있는 '어항'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양대원의 그림에서 어항은 세상의 유한함을 비유한 상징이다. 어항의 상징적 의미는 동일한 오브제를 모티브로 사용했던 이전 작업들과의 관계를 통해 한층 두터워진다. 작가는 망망대해라는 착각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은 결국 어항 속에 담긴 물처럼 한정된 시간 속에 잠시 머무는 하나의 자취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냈고, 빠져나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세상의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이야기했으며, 그 안에 갇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끝에 결국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음을 표현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연결성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단계적으로 주제를 심화시켜나간 결과, 자연스럽게 획득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 둘째, 이것은 인물표현에 대한 작가의 고심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작업으로서, 2000년 이후 작가의 작품을 말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다뤄지는 동글인에 대한 형식적 탐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전반에 걸쳐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어항의 밑바닥에 풀숲과의 경계면에서 둥글둥글한 형체를 이루고 있는 덩어리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양대원 회화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등장하는 동글인이다. 동글인은 가히 여타의 회화작업들과 양대원의 회화를 구별짓는 중요한 조형요소라 할 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가에게 있어 이러한 사실은 항상 조형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았을 것이다. 동글인이 그 자체로 강력한 각인효과를 주는 이미지라는 점은 역으로 생각하면 인물표현의 변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과 같다. 하지만 작가는 자연스럽게 주제를 담으면서, 조형적으로도 동글인을 새롭게 표현하는 시도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시도는 2006년의 개인전 『푸른 섬』에서 세상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재치있게 풀어낸 문자그림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푸른 바다(18놈) 814060」에서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세상에 비유하면서 줄무늬로 물결을 단순화하고, 여기에 푸른색과 흰색의 경계지점에 색을 교대로 칠해가면서 '18놈'이라는 글자를 은근슬쩍 집어넣었다. 「의심-숲Ⅴ(잠) 511190」에서도 유리 어항과 숲, 물의 표면과 숲이 만나는 경계면, 동글인이 숲과의 경계면 사이에 숨어있듯이 그려 넣은 것도 작가의 탁월한 조형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 마지막으로 이것은 단지 하나의 작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현재의 작가심리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양대원은 이 그림에서세상을 의심한 끝에 깨달은 절망과 자연에서 안식을 찾고자 했던 희망이 공존하는 심리적 평정(平靜)의 상태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봤을 때, 작가는 침묵을 지키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듯하다. 침묵과 자연 속에 녹아듦과 같이 소리 내지 않음과 보이지 않은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터득해낸 것이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이치라는 점은 양대원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세상의 덧없음을 재차 일깨우는 대목이기도 하다.

양대원_의심-숲Ⅴ(잠)51119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린시드유_146×96.5cm_2009

손에 든 붓을 놓지 않고 화폭을 통해 세상과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눠온 작가 양대원은 어느새 불혹이라는 세월의 들판 한 가운데에 서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불혹의 나이처럼, 그는 성실한 삶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가장 현명하게 세상에 임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 인간사의 온갖 불편한 감정들이 녹아있는 세상 속에 몸을 내던져 이제는 어떠한 감정의 기류 속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자신을 가다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그의 작업과 마주하고 있으니, 그가 입버릇처럼 인생은 결국 허망하고 덧없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새삼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 황정인

Vol.20100414c | 양대원展 / YANGDAEWON / 梁大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