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st of strayer

김순임展 / KIMSOONIM / 金順任 / installation   2010_0403 ▶ 2010_0509 / 월요일 휴관

김순임_길 잃은 나무의 숲 ; The Space 27-기장_ 11.8×12m의 방에 가변설치, 기장의 가로수 전지한 나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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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_2010_0410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오픈스페이스 배_OPENSPACE BAE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297-1번지 Tel. +82.51.724.5201 spacebae.com

개인적 기억과 회상의 의미 확장 ● 눈 앞에, 가지치기로 버려진 은행나무와 버드나무의 가지들이 숲을 이룬 오솔길이 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 안에 들어 온 듯하고,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아바타'가 된 듯 하다. 6840여개의 흑경이 깔린 길을 걸으며, 기장군의 가로수에서 잘려진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메마른 냄새와 흑경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흙냄새가 묘하게 뒤섞인다. 약간은 불편하게 약간은 호기심을 갖고 길을 따라 조심스레 걷는다. 그렇게 가다 좁은 직사각형의 환한 공간 앞에 다다른다. 대성당 회랑을 거쳐 십자가 앞에 도달하듯, 양 옆의 3개 그리고 가운데 하나. 광목천으로 쌓인 7개의 프레임이 벽면에 걸려 있다. 대성당이었다면, 거기에는 구약이나 신약의 이야기나, 유명한 후원자와 귀족의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을 테지만, 무심하게 걸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린 거기에 누군가의 기억과 회상을 만난다.

김순임_길 잃은 나무의 숲 ; The Space 27-기장_ 11.8×12m의 방에 가변설치, 기장의 가로수 전지한 나뭇가지

김순임의 이번 전시 제목은 『길 잃은 나무의 숲 : Space 27- 기장』으로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진행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 보고전과 연결된다. 이전 작업이 돌멩이나 바늘, 솜, 천 등의 사용과 개인적 기억과 회상에 대한 시선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좀 더 공간적 현전과 함께, 개인적 기억과 회상에 대한 의미 확장을 시도했다. 솔직히, 전시장 입구에서 마른 나뭇가지 오솔길의 공간을 지나, 광목천 프레임이 걸린 공간까지, 전시장엔 일정 부분 제의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전시 공간을 단 한 뼘도 허투루 쓰지 않고 신실하게 설치했을, 작가의 작업은 그렇게 2개의 공간이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그것은 소재(나무, 흙/광목), 공간 조형(유선형,비정형/직선), 냄새(자연적/인공적), 밝기(어두움/ 밝음), 체험(적극적/소극적) 등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을 이항대립 관계로 설정하기보다, 우리가 시시각각 마주하는 삶의 모호한 양면성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일 경험과 기억에 대한 다층적 스펙트럼을 상정하기도 한다.

김순임_길 잃은 나무의 숲 ; The Space 27-기장_ 11.8×12m의 방에 가변설치, 기장의 가로수 전지한 나뭇가지

이전까지 작업에서 작가 개인의 심미적 경험이 작업 내용의 서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앞서 설명했듯이, 돌멩이 솜, 바늘, 천 등 작가가 주요한 매체로 사용했던 소재는 일정 부분 '여성적' 예술로 해석될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여성주의 예술이 가부장제 사회에 대해 예술 창작과 감상에서 여성 주의적 태도의 정치학적 개입을 시도했다면, 여성적 예술은 여성으로서 인간의 신체적 경험과 기억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 형상화 된다. 따라서 김순임의 작업이 가진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소재만을 연결해 단선적으로 읽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 대한 의미 확장이 없다면, 작가는 비정주적 휴머니즘과 자연주의에 맞닿은 따스하고 성실한 작가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김순임_The Forest of strayer ; The space 28_ 7개의 100×200cm  이불, cotton, cotton cloth, wood frame_2010
김순임_The Forest of strayer ; The space 28_ 7개의 100×200cm  이불, cotton, cotton cloth, wood frame_2010

전시에 대한 스포일러(Spoiler)일 듯 해 설명을 망설였는데, 두 번째 공간 한 구석에 있는 광목 프레임에 희미하게 드러난 존재는 작가의 친할머니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는 친할머니는 없다. 오래전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할머니 형상을 '소심하게' 드러냈고, 우리는 희미한 무엇인가의 존재감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상상한다. 개인적 회상의 형상은 공공의 다양한 형상으로 시공간적 위치로 현전된다. 베르그송은 집단적이고 역사적 기억은 사실 수집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개인적 전유에 의한 회상이 좀 더 주관적으로 보았고, 마우리우스 알브바슈는 개인적 회상의 형상은 '오직 불충분하고 조각난 집단적 표상'으로 간주했다. 이렇듯 개인적 기억과 회상은 양면적이게 사적이고 멜랑콜리한 정서로 규정할 수 없다.

김순임_The Space 22- Jeju cotton, cotton threads, stone from Jeju_가변설치_제주도립미술관_2009
김순임_The Space 26 - Jala Island cotton threads, stone from Jala Island_가변설치_자라섬 국제바깥미술전_2010

따라서, 우리가 작가의 개인적 기억과 회상에 관한 작업에 대해 읽기를 시도할 때, 기억과 회상에 대해 좀 더 면밀한 결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집단적인 문화적 기억은 관습적 코드화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과거를 개인적으로 사유화하고 활성화한다. 헤겔의 말처럼 기호적 단계에서 고양된 회상으로써의 기억은 시대성을 특징하기 보다, 경향을 드러낼 뿐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개인적 기억과 회상이란 의미의 충돌을 공간적 양면성과 함께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할머니의 존재가 관람자에게 인식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의 형상은 존재한다. 관람자는 공간의 이동과 경험을 통해 무수한 개인적 기억과 회상과 마주한다. 현대의 습관적 기억과 대비되는 개인적 전유에 의한 회상은 그렇게 의미를 갖는다. ● 한 달 전까진 3I(아이폰, 아바타, 아이돌)를 모르면 신세대가 아니라는 말이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소셜 네트워킹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음에 동참할 것을 재촉하는 경제 기사를 읽었다. 현대 기술매체의 발달은 인간의 기억과 회상을 돕는 방법론으로 진행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기억과 회상의 상실로 돌아왔고 오늘날엔 정형화되고 상업적인 기억과 회상의 사용만 가득하다. 현대미술에서의 개인적 기억과 회상이 작동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작가 김순임이 이번 전시를 통해 개인적 기억과 회상과 공간의 장소성에 대한 의미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반갑다. 3여 년 동안 느슨하게 만난 작가는 일부 젊은 작가들의 스타일과 태도와 달리, 신실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러한 '기본적' 태도가 앞으로 개인적 기억과 회상의 의미 확장과 다른 장소성의 조우의 귀한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채은영

Vol.20100416d | 김순임展 / KIMSOONIM / 金順任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