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꿈. 만들다

한선현展 / HANSUN HYUN / 韓先鉉 / sculpture   2010_0416 ▶ 2010_0523 / 월요일 휴관

한선현_잘 건너자!_멀바우_55×48×1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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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41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샘터갤러리_SAMTOH GALLERY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82.2.3675.3737 www.isamtoh.com

유년시절 나는 매일같이, 해질 무렵 거대한 숲을 지나 아무의 손도 닿지 않은 듯 한 외딴곳에 있는 큰 성에 도착하는 상상을 하지 않고서는 잠들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그 성에 들어가 나만의 세계를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그곳에는 내가 상상하는 왕자도 있었고 나만의 공주도 있었다. 또한 그곳에는 나만의 충성스런 군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참말로 진심으로 나를 믿고 따르는 충성스런 부하들이었다. 대부분 동물들로 이루어진 군대였는데 나에게 멋진 행진으로 자랑스런 모습을 선물하고는 했다. 나는 늘 군대의 힘찬 사열식査閱式과 함께 만족감이 찾아왔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 현대의 작가들은 특정한 사회, 즉 후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생활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작가들은 타자와의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이 경우 현대작가란 특정한 사회적 구성체의 일부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현대작가들이 환상적이거나 주관적인 자유만을 탐하지 않는 한, 이들의 창조적 자유는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나 다른 실재물과 무관하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예술의 사회성과 역사성의 결과를 인간 조건의 자연적인 특질로 이해하였다. 즉, 역사적인 힘과 이해의 결과를 통한 경험을 통해 다른 시대를 경험하고, 그 시대가 현재에 관해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바가 있으므로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창조적 자유란 사회 속에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회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예술의 이러한 특수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잠재되어왔던 것이다. 작가들은 이러한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보인다.

한선현_염소_멀바우_41×55×10cm_2008

목木 조각가 한선현도 역사로부터 그리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 조각을 공부하러 이태리에 갈 때 까지는 의기양양해져서 갔겠지만 그곳에서 그는 거대한 역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움 만이 현대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바르트적 사고에 눈을 뜬 것이다. 몇 년 동안 천착해온 석 조각을 일거에 내 던진 그가 손에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나무였다. 학창시절 우리가 그토록 진부하다고 느꼈던 나무를 품에 안고서 돌아왔다. 또한 진부하되 진부한 전통적 장르인 부조 relief 浮彫를 덤으로 가져왔다. 부조란 평평하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회화에 가까운 조각의 일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회화가 가지고 있는 전통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답습 한다. 부조는 환조와는 달리 어딘가에 부착하기 위해서 제작되어 왔으며, 그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서 적합한 여러 양식이 발달되어 왔지만 모더니즘의 편협성에 밀려 그 자취를 찾아보기가 힘들어 진 것이 사실이다. 한선현의 부조는 멀게는 조각의 상像과 면面과 배경이 되는 면의 2중면으로서 추상적인 조각면의 깊이를 표현한 그리스 전통을 따르며, 가깝게는 입체파들의 꼴라주의 기술적인 기법도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선현의 부조는 하우트릴리프haut-relief의 방법으로 제작된다. 흙 부조는 테크니컬한 기교를 부릴 수 있는 반면 견고한 재료인 나무는 다루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선택한 방법이고 高 부조이다. 또한 질박한 내용의 표현상 고부조가 적절한 선택으로도 보여 진다.

한선현_염소의 꿈_멀바우_54×39×10cm_2008

한선현은 1993년 「인간」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시작하여, 2000년 이태리에서의 전시 주제인 『동물』展을 시작으로 기나긴 동물과 인간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02년 「인간과 동물」展을 귀국전으로 열었고, 2003년 「한선현의 작은 작업실」에서는 그만의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일반에 공개하기도 하였다. 2005년 「외다리 위의 염소」에서는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염소라는 희화된 동물을 통하여 위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2006년에는 「흰 염소의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여 전쟁터에 나타나 동분서주하는 염소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일곱 번째 개인전으로 그가 조각을 하며 짬짬이 그려온 그림일기「염소의 꿈- 그리다」 300여점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한선현_휘익~휘익_멀바우_40×62×10cm_2008

한선현이 바라보는 대상은 왜곡되고 불편해진 우리의 현실적 모습이다. 하지만 작가는 부조리한 사회의 이미지를 더 이상 응시의 대상으로 놓기를 거부하고, 응시의 주체로서 의인화되고 각색되어진 염소의 이미지를 대상화 하였다. 즉, 작가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의 타협점이 염소라는 주인공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타자와의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낯선 대상에의 집착에서 드디어 자유로워진다.

한선현_자유_멀바우_33×36×10cm_2008

한선현이 작업에서 주체를 아우라로 에워싸는 '애정 어린 시선'은 주체를 불안함으로부터 구해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그 시선은 여러 가지 종류의 공간을 탄생시킨다. 벤야민의 이론에서 나타나는 '친근한 시선'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일견 노선을 같이하고는 있지만, 한선현의 경우에서는 주체가 거세적 응시에서 밀려난다면, 주체 주변에 잘 정돈되어 있던 공간 역시 그 응집점이 교란되고 밀려난다는 것이다. 결국 이미지와 공간의 교차점 안에 대상을 놓음으로서 시선을 정돈하고 있는 것이다.

한선현_프로당구_멀바우_33×59×10cm_2008

한선현은 유년시절부터 꿈꾸어온 계획들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실현시키는 완벽주의자이다. 또한 그의 작품 안에서는 잘 훈련된 능수능란한 조련사이면서, 히틀러식 전제주의가 연상되리만치 정확하고 절도 있게 등장인물들을 통치하는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다소 어리숙한 염소는 표면상으로는 좌충우돌 하는 캐릭터로 비추어 지지만, 집을 떠나 세상을 알아가는 염소의 모습에서 선재동자의 깊고 고요한 화엄경의 세계가 읽혀지는 듯하다.

한선현_무서워!_멀바우_29×38×10cm_2008

21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단연히 여겨왔던 많은 것들을 부정하거나 탈 정신화 시키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은 후기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오랜 세월동안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까지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었던 희망, 사랑, 추억, 친구, 동화, 동물... 한선현은 그의 꿈을 실현하는 중심에 작가자신이 아닌 타자를 위치시킴으로서 보다 교묘하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꿈꾸고 희망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 한선현은 목향木香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몇 년 전 부터는 몇 만평이나 되는 목재소에 아예 들어가서 작업하는 목재 부자 작가이다. 나무는 그의 심성이 나무를 닮은 사람한테만 그 큰 품을 내어준다. 한선현은 조각도를 통하여 대상을 조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숨겨져 있던 이미지들을 찾아가는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한선현의 그림들은 거짓 없이 착하고 진솔해 보인다. ■ 이종호

Vol.20100416i | 한선현展 / HANSUN HYUN / 韓先鉉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