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사생 萬有寫生 Depiction of the Universe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   2010_0417 ▶ 2010_0523 / 월요일 휴관

유근택_세상의시작_종이에 수묵채색_180×179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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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홈페이지_www.geuntaek.com  인스타그램_@yoogeuntaek

초대일시 / 2010_0417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베이징 GALLERY ARTSIDE Beijing Dashanzi Art District, 4Jiu Xianqiao Road, Chaoyang District, Beijing, China Tel. +86.10.5978.9196 www.artside.org

유근택은 준법이나 임모의 단계를 넘어 한국화의 현대적 해석을 완수한 대표적 화가다. 그의 제목처럼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유근택의 우주, 즉 만유이며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독자적 화풍으로 담아내는 것을 '만유사생'이라 일컫는다. 이때 유근택의 독특한 화풍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유근택은 먹이 퍼지는 발묵뿐만 아니라 과슈와 호분을 이용한 채색의 구성에서 발군의 차별성을 확보한다. 유근택의 화면은 서구의 원근법과 동양의 사생, 유근택 개인의 육체적 경험이라는 삼단계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변환자재(protean)로 짓이겨지며 흘려지고 묘사되는 일차적 뒷배경의 화면과 앞으로 전진된 채색의 꽃과 식물(자라는 실내, 피는 실내 시리즈) 등의 시리즈는 유근택 회화의 현대적 속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전반적인 화면의 느낌은 유근택 예술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일 뿐이다. 유근택 회화는 해석의 다변적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는다. 누구나 공유하는 단순한 일상(everyday life)의 소재가 개인적 만유(universe)로 확대 성장하기까지 어떠한 철학적 배경과 생의 성찰이 있었는가 진지하게 추적하는 것이 유근택 예술세계를 감상하는 방법이다.

유근택_어떤만찬_종이에 수묵채색_240×489cm_2009
유근택_자라는실내_종이에 수묵채색_240×200cm_2008
유근택_파도2_종이에 수묵채색_65×81cm_2010

유근택은 언제나 "시간에 대한 저항"이라는 테제를 수립시킨다. 한 인격의 개체인 개인은 시대와 역사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헤겔이 "시대의 어린이(child of the time)"라고 말한 점이나, 니체가 명석한 우리로 하여금 "시대 의식에 있어서 만큼은 동물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 점을 상기시킨다면 그 시대를 증명해주는 대리인은 일반 여타 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일 수 밖에 없다. 유근택은 시대에 맞물려서 벗어날 수 없는 구속성 자체가 우리 존재(being)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회화라는 장르의 예술은 분명히 "육체적 부딪힘의 미학"이다. 사진이나 영상, 여타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고 새 시대가 옴에 따라 과거의 영역에 추락하게 된다. 그러나 회화는 작가의 노동력의 부딪힘에 따라 새 시대에도 맞서는 힘을 발산한다. 이러한 면이 유근택이 견지하는 첫 번째 회화의 존재론이다.

유근택_피는실내_종이에수묵채색_160×130cm_2010
유근택_A Scene_종이에 수묵채색_81×65cm_2008

둘째 유근택은 해석의 열린 가능성으로서의 회화의 힘에 대해 견지한다. 유근택의 대표적 시리즈 '만찬(A Supper)'의 경우를 보자. 만찬은 물고 물리는 사람과 음식의 관계 속에서 시간이 흐른 이후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또한 관객은 넘어지고 흘리고 바스러진 음식이나 와인의 혼돈 속의 결과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오고 간 움직임의 주체들은 무엇이고 그 주체들의 생각과 대화는 무엇인가? 열린 해석으로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존재론적 사색이야말로 유근택 회화가 제시하는 현대성의 발로이다.

유근택_A Scene_종이에 수묵채색_81×65cm_2010

'세상의 시작(Beginning of the World)'은 우주 변화의 원리에 대한 유근택의 상상력을 볼 수 있는 작품 시리즈이다. 사막의 소용돌이를 연상시키는 화면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만유 존재자들은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역으로 보면 반대로 흘러나온다. 침대, 나무, 의자, 자동차, 화장대, 비행기 등 온갖 일상의 대상들은 '세상의 시작' 화면에서 지대한 운동성을 갖고 중심을 향해 단일한 방향으로 빨려 들어간다. 붓질의 속도감이 연출해낸 승리다. 그러나 이 붓질의 운동성은 위에서 아래로 편향한 운동성인지 좌에서 우로 편향한 운동성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상호 방향적 운동성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보기에 따라서 소용돌이의 핵으로 빨려 들어감과 소용돌이의 핵으로부터 비집고 나옴을 동시에 연상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거꾸로 인생을 죽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 '세상의 시작'에서 발휘되는 힘은 삶과 죽음이 동시에 연동되는 우주의 본질을 하나의 화면에 깨우치는 탁월한 기상(奇想)에 있다. 또 한가지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유근택 예술의 독특성은 '본다'는 지각작용의 육체적 변용에 있다. 통상 우리는 본다는 행위에 대해 시각 주체와 대상과 철저히 분리된 행동양식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객관적이며 성찰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는 화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해서 화폭에 옮길 때에는 양자간에 유리되었던 육감적 교류가 회복될 수 있다. 이 점은 여타 이미지와 차별되는 회화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유근택은 이러한 회화의 승리 방정식에 대해 환호하며 깊은 공감을 보낸다. 분수, 아파트와 같은 인위적 풍경, 실내풍경, 바다, 파도 등의 자연풍경, '만찬'이나 '세상의 시작'과 같은 화가 자신의 본유적 철학 풍경은 모두 이 육감의 회복을 원칙으로 그려낸 하나의 광경(spectacle)이다. 따라서 유근택 회화가 가진 '스펙터클의 미학'은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자기의 보는 감각과 떨리듯 펼쳐지는 손의 노동력, 즉 촉감적 육감의 합일을 빌어 시간의 유영에 밀리고 마는 이미지 전반의 일시성(impermanence)과 나약함(vulnerability)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임에 틀림없다. ■ 이진명

Vol.20100418f |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