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일생

이해기展 / LEEHAEGEE / 李海琦 / painting   2010_0514 ▶ 2010_0530 / 월요일 휴관

이해기_수지타의 우유죽 공양_감지에 금니선묘_160×146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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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심여화랑_Simyo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37-1번지 Tel. +82.2.739.7517 www.simyogallery.com

파격이 이루어낸 현대성, 이해기의 회화 ● 혹자는 말한다, 전통을 극복하는 일이 전통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고. 그런 점에서 수 천 년을 이어온 회화의 전통을 가진 우리의 작가들은 그렇지 않은 문화권의 작가들보다 한층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들의 소명은 전통을 이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을 발전시켜야 할 책무까지 포함하게 된다는 명제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나는 전통은 반드시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으로만 작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통을 하나의 충실한 텍스트(text)로 접근한다면 무궁무진한 재해석의 여지가 있고, 그것은 온전히 작가의 자산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기_화엄대법_감지에 금니선묘_146×160cm_2007

이해기의 불화(佛畵)는 우선 재료적으로는 쪽물을 들인 종이인 감지(紺紙)에 금분을 개어 그리는 선묘화 전통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렇기는 해도 '재료적'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대로 이해기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까지 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고려 후기에 제작된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이 감지금니기법(紺紙金泥技法)은 이해기의 공력으로 다시 고고하고 화사한 매력을 발산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전통 불화와 은근한 조우를 하는 동시에, 그만의 도상과 내용으로 새로운 해석을 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 이해기 회화의 미덕이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즉 그의 회화는 '종교회화'라는 범주 안에서만 논의될 수 있으리라 보이지만, 확장된 회화 개념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 본디 우리의 전통에서 석가여래의 생애를 표현하는 그림을 불전도(佛典圖)라고 하는데, 석가여래의 일생 자체가 불교의 교리와 그 유래를 설명해 준다고 믿었으므로 많이 그려지게 된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대승불교에서는 보통 여덟 가지의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이처럼 석가여래의 생애를 극적인 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그림을 팔상도(八相圖)라고 한다. 그러나 이해기가 주로 다루는 석가여래의 생애는 이 전통적 범주 짓기를 넘어선다. 그는 마치 드로잉을 하듯이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도는 종이 위에 자유로운 금빛 선묘로 다섯 명의 석가족 청년을 그리기도 하고, 석가여래의 7년만의 목욕을 풀어 놓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그의 관찰자적 시선을 엿볼 수 있는데, 전통에만 집착했다면 좀체 나오기 어려운 소재와 방법일 것이다. 부언하자면 이해기는 전통이라는 텍스트를 자신이 지닌 감성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고 볼 수 있다. ● 이는 어쩌면 그가 애초에 대학에서 서양회화를 전공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듯하나, 보다 큰 틀에서 보자면 회화를, 혹은 예술에 접근하는 그의 안목과 식견 덕택이라 보인다. 간혹 정통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즐기듯이 학문과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발견하곤 하는데, 이해기의 불교회화가 그렇지 않을까 한다. 틀에 매인 불화의 형식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불교회화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해기는 탄탄한 소묘와 선묘 능력으로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 또한 그의 초기 이력이 주는 크나큰 장점이라 보인다.

이해기_성등전각_감지에 금니선묘_146×160cm_2007

이해기는 한 사람의 불교신자로서 사력을 다 해 세필(細筆)로 석가여래의 생애를 재현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하고자 한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이해기를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종교미술이 갖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감동을 동반하여 신심(信心)을 일깨우는 데에 있는 바, 그런 면에서 이해기를 현대적 의미의 화승(畵僧)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의 선묘화에서는 선 하나하나가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고, 이는 결국 불심을 일깨우는 궁극의 묘(妙)를 향해 집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침내 이해기가 택한 시간과 수고로운 품이 많이 드는 수공적인 방식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명확해진다. 그는 그 고단한 방식으로 석가여래와 만나고, 자신과 만나고, 세상 사람들과 만난다. 이해기의 작품을 대하면서 갖게 될 무한한 공력에 대한 경이로움은 소통의 끈이 되어 나와 너를 묶는다.

이해기_수하탄생_감지에 금니선묘_146×160cm_2007

이제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이해기의 회화를 관찰하도록 하겠다. 이처럼 넓게 보아 심리적 차원에서의 소통을 의도하는 그의 불화는 전통적 이미지(석가여래의 도상)를 시각적 대상에서 나아가 의식의 차원으로 다루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지적은 전통 불화와 관련해서는 맥락이 닿지 않는 표현 같지만, 그의 작품을 회화라는 큰 관점으로 파악할 때에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미지를 시각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전통적인 미술의 재현 방식(전형적인 석가여래의 도상이나 팔상도의 경우가 그러하다)이라면, 이와 달리 이해기는 관객이 그들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서 또 다른 실재를 볼 수 있도록 작업한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전통의 변형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가 그려낸 석가여래를 비롯한 인물들의 도상을 보자면 우리나라, 인도, 중국 등의 도상형식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전통의 변형을 시도함과 동시에 문화적 변용을 꾀하는 그의 대승적인 시도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서로 다른 도상들을 기계적으로 병치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화면 안에서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도록 하는 예리한 예술적 식견을 보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면은 이해기의 작품이 전통에 그 뿌리를 두면서 동시에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탐색하는 데에 가치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 이해기의 작품 속에서 석가여래는 보통 사람의 신체를 지닌 인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는 그것을 자유롭게 드로잉과 같은 표현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결국 그가 표현해내고자 의도하는 것은 교조적 차원의 석가여래가 아니라 모두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불심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인본주의적이라고 하겠다.

이해기_유성출가_감지에 금니선묘_146×160cm_2007

전통을 막연한 부담을 주는 존재가 아닌,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실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해기의 회화는 대단히 현대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종교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형식에 갇히지 않는 이해기의 작품은 전통이 어떻게 현대성과 만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인 것이다. 파격을 거듭하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박석태

Vol.20100418h | 이해기展 / LEEHAEGEE / 李海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