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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국展 / JEONGYONGKOOK / 鄭容國 / painting   2010_0419 ▶ 2010_0515 / 일요일 휴관

정용국_파란만장_한지에 채색_190×254.5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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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419_월요일_06:00pm

현대미술 자아성찰 3부작 : 어! 이것 장난 아닌데? Wow! This Is Not A Joke, It's Art?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_Gallery Bundo 대구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희극과 비극을 극명하게 구별했지만, 희극과 비극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 자체는 희극이자 비극이다. 정용국의 이번 전시는 '낙서의 유희'에 가깝다. 캔버스에 불규칙적으로 흩뿌려진 채색인 「파란만장」, 이미지를 무작위로 중첩해 구축한 「떠도는 풍경」, 김호득의 작품의 형태를 따라 오랜 시간 동안 방(倣)한 「방김호득풍경도」, 두 가지 색을 서로 다른 채색 방법으로 쌓아올린 「잃어버린 형제」, 누군가가 그린 내 모습을 다시 그린 「자․화상」, 갤러리에서 도면 대신 보낸 이미지와 그 위의 낙서(숫자)를 그대로 남겨둔 「옮겨진 풍경」, 말끔하게 도색된 강판을 일정하게 줄여가는 「질주」 등 그의 작업은 저잣거리 낙서처럼 때로는 장황하고,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비논리적으로 '거대하다고 여겨왔던' 미술의 언어를 유희한다. 그렇다면 정용국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희극의 차원에 그치는 것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생자체가 희극이자 비극인데 말이다.

정용국_떠도는 이미지_한지에 피그먼트 라이너_254.5×190cm_2010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기웃'거리다 ● 인쇄술의 발달 그리고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의 시지각을 자극하는 총량을 증폭시켰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수용해야 한다. 브라우저(brower)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인터넷 사용자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터넷의 바다를 향해하면서 조금씩 '기웃'거린다. 즉, 하나의 정보에 집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셈이다. 아무리 자극적인 이미지라 할지라도 그것이 제공하는 정보에 다다르기 전에 또 다른 정보로 이동한다. 이 지속된 미끄러짐에서 어지러움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과도한 이미지의 자극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이미지 자체의 완결성에 주목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이 자아내는 텍스트의 결(texture)에 주목해야 한다.

정용국_방김호득풍경도_한지에 채색_190×254.5cm_2010
정용국_잃어버린 형제_한지에 채색_55×40cm×2_2010

정용국은 하나의 이미지를 강압적이고, 규격화한 정보의 틀로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떠도는 풍경」는 자신의 시지각을 자극했던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축했다. 명확했던 이미지의 총합이 구축한 풍경은 혼돈으로 가득하다. 어느 하나 정갈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의 시작점이 되고, 그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의 연장선에 놓인다. 이런 과정에서 본래 이미지의 정보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용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이미지들은 단순히 혼돈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화면에 다가가 이미지의 레이어를 하나씩 걷어내면 혼돈 이전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발견된 이미지는 정용국이 어지러움에 시달리며 연결시킨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에게 작가가 제시하지 않은 새로운 의미가 생산된다. 즉, 이미지의 창작자가 강압적으로 제시한 의미를 수용해야만 했던 관객은 이미지의 링크를 따라 자신만의 의미를 구축하게 된다. 비극으로 보였던 것이 희극으로 연결 될 수도 있고, 희극으로 보였던 것이 비극으로 연결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정용국_자·화상_한지에 수묵_55×40cm_2010

파란만장 연대기 ● 「파란만장」은 어딘가로 튈지 모르는 강렬한 물감의 흔적이 캔버스에 가득하다.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의 표현은 일견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닮아있다. 그러나 흔적의 부분을 따로 떼어 살펴보면, 강렬하고 폭발적인 흔적대신 차분하고 균일한 물감의 표면을 볼 수 있다. 이 양가적 감정을 내포한 「파란만장」은 한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을 바탕으로 한다. 「파란만장」의 이면에 놓인 이야기는 「파란만장」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데 유효하다.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 한국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힘겹다. 그(탈북자)는 어떻게든 이 땅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원양어선을 타기로 결심한다. 원양어선을 타기 전 찾아간 술집에서 주인과 술을 마신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술집 주인이 혼자 살겠다고 가족을 버린 탈북자를 나무라면서 시비가 붙었고, 결국 술집 주인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는 원양어선을 못 탔다. 그 탈북자의 문제는 스스로 자신이 어디에 왜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서 사는 삶이다. 체계가 구축한 삶, 그러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어떤 삶에서 그 체계에 벗어나는 어떠한 행위도 거절당했던 삶. 술집 주인은 이러한 탈북자에게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기제이다.

정용국_옮겨진 이미지_잉크젯 프린트_21.3×29.8cm×12_2010
정용국_질주111-115_스틸강판에 도색_52.2×91.5cm_2010

그러나 「파란만장」에는 이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단지 제목에서 누군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대변한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하다. 물감의 흩어짐으로 표현되는 비극적인 격한 감정, 그리고 정갈한 채색으로 표현되는 삶의 희극적 요소가 융합되어 있을 뿐이다. 비극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삶이 희극과 비극의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정용국은 이번 전시에서 이미지에서 의미를 탈각시켜 낯설거나 혹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이미지를 관객이 직면하게 한다. 잔혹하거나 과장된 이미지 그것은 저 너머의 세계에 있는 우연 혹은 환상의 산물이 아니라 비극과 희극 그 어딘가에 놓인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닐까? ■ 이대범

Vol.20100419d | 정용국展 / JEONGYONGKOOK / 鄭容國 / painting